언제적 글인지 가물가물 하다.

 

일단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 후라는 제목은 최소한 만 팔년전 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내랑 이른 아침 같이 산행(북한산)을 다녀 오겠다는 내용을 추측컨데

서울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반증을 보여준다.

 

예전 글은 내게도 늘 새롭다.

이제는 아버지께서 안계시니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후로 바뀐 글 하나 올릴 때이다.

그리고 아래 소망중 하나인 삼대가 함께 오르는 산행은 어쩔 수 없이 접었다

아버지께서 안 계시고 어머니께서는 관절이 아프셔서 산행은 금기이니...

 

중국에 온 후 어머니께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어머니는  동생들에게 서울에 있을 때보다 오빠가 더 자주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매일 들으시니 그나마 좋단다.

(난 애써 당신이 그리 위안을 삼으신거라 이해하고 있다)

 

늦은 밤 전화를 하면 지금도 여전하시다.

단지 예전보다 다른 점은 며느리나 손녀 또는 손주가 전화를 언제 했다는 말을 더하시고 

그러나 단답형 대화는 여전하다.

이국 땅에 있다보니 아침 밥은 잘 챙겨 먹냐, 건강 해야한다. 라는 말도 덧 붙히셨다. 

당신의 마지막 말씀은 언제나 " 나 잘 있으니 걱정하지말고... , 잘 있어!"로 끝내신다.

여전히 나는 전화를 끊고 나면 한참 동안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아이들 생각하듯

당신은 그 이상으로 나를 걱정하실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131101>

 

----  이하 옛 글  ----

 

한 줄기 밝은 햇살
파아란 낮은 내겐 기쁨이다
가로수 은행잎 색깔이 노랗게 짙어줄수록
이 가을은 짙어간다.

가울이 깊을수록
가슴이 시려질수록
그리워지는 마음으로
멀리 고향의 두분께 전화를 넣는다.

전화를 끝내고 나면
두분과 나누는 얘기가 너무 단순하다고
아내는 핀잔을 준다.

그런데 당신들과 난 그게 더 익숙하다.
이제는 그런 모습에 익숙해질만도 하는데
아직도 안부전화는 시시콜콜해야 하고
길어야 한다고 믿나보다

결혼 초기엔 두 분과 전화를 마치고는
아내는 당황스럽다고 했다.
묻는 말에만 답해주시는 두 분의 전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


요즈음은 며느리의 불만을 아시는지

어머니는 이제 지극히 사소한 것 까지 물어주신다고 한다.

난 오늘도 그런다
[건강하시죠] [ 별일 없으시구요] [감기조십하시구요][그럼 또 전화드릴께요] 이고
당신들은 [응] [너도] ... 정도이시다.
그런데도 나는 할 말은 다했다고 믿는다.
언젠가 당신들도 그렇다는 확답을 받은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전화를 받는 순간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당신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멀리서이지만 당신들의 건강 상태를 바로 알게 되고

이미 난 무슨 얘기를 해야하는 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 대해 많이 여쭈시고 당신의 안부를 전해달라는 것은
이미 당신들에게는 아들 며느리보다는
당신들 손자/손녀의 목소리가 더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아들 전화는 쉬 잊는데 아이들 목소리는 몇 날을 감싸준단다 )

내일은 아내랑 가까운 산을 다녀오기로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둘만의 산행이라 남다른 기분이겠지요.
언젠가 처럼 3대가 함께하는 온가족 산행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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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들이 풀리지 않아  집에서 편하게 누워 쉬고 싶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요즘은 회사 일로 그 '간혹'이 '자주'로 바뀌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아무 일 없이 빈둥빈둥  쉬고나면 도리어 더 피곤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도리어 가볍게 어디 여행을 떠나거나,  가벼운 베낭을 짊어지고서 가까운 산에 오르고 나면

몸은 피곤한 듯한데 도리어 정신은 맑아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쉬고 싶다는 것은 몸과 마음으로 여러 신호로 스스로 보내게 됩니다.

일단 몸이 피곤하여 쉬고 싶을 때는 잠자라는 신호를 보내어 잠을 불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날은 조금 일찍 잠을 청하여  밀린 잠을 자고 나면  몸은 바로 개운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신적 피로는 좀 누워 있거나 잠을 잔다고 해서 그 피로가 쉽게 풀리지는 않습니다.

정신적 피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정화"가 필요한데 이는 게인 마다 푸는 방법이 다릅니다.

일조으이 개인만의 비법인셈이지요.

 

그러나 이 "정화"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즉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제 개인적으로 정신적 피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기도입니다.

아주 오래전 개신교에서 신앙 생활에 열심일 때에는

아침 일찍 부터 저녁 늦게 까지 교회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무언가가 내게 필요하면 (특히 정신적인 가난으로 ) 기도 제목을 삼아

저녁 늦은 시간 (학교나 직장에서 집으로 귀가할 때) 교회를 들러 기도실에서 두손을 모으곤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속칭 "기도발"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면 정말 빠른 응답을 받았으니까.

나중에야 그 빠름이 가장 적당한 때의 응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기도라는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지요.

내가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내 말만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전하는 말씀을 듣는게 더 소중하기에.

그 땐 제 귀가 열려이ㅆ었는데 요즘은 좀 귀가 어두워졌나 봅니다.

 

제가 즐기는 두번째 정신적 피로를 푸는 방법은 산에 오르는 것 입니다.

혼자가 되든, 누군가와 일행으로 함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산에 서서히 오르면서 정상을 바라보는 때 보다는 스스로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볼 때가 좋습니다.

정상이 좋은 이유는 더 멀리,  더 길게 내가 지나온 길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산에 오를 때 보면 실상 내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 것들을 떠올리거나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정상에 올랐다가 산에서 내려와 생각해보면 

어느새 그 고민에서 자유스러워 있는 나를 보곤 합니다.

아마 이게 걸으면서 자연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자체가 내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 것이겠지요

그래서 나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정신적 피로가 풀린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여의고는 간혹 당신을 떠올리며 소리없이 울어볼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있고, 가장이다보니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엔 상당히 어려운 방법이긴 한데.

그래도 누군가의 고백처럼 시원스레 울고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 로 

제 스스로 자유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기에 이 말에 일부 공감합니다.

 

어떤 이는 친한 친구 또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고나면 좋아진다고도 합니다.

저는 제 성격상 위 방법을 좋아하지도 사용해 보지도 않았지만, 여성분들은 즐겨 사용하겠지요.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카타르시스, 정화 "  비결이 있을 듯 합니다.  

 

아래 에스키모인들은 혹한의 추위에서 공생하는 벙의 하나로 아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저도 걸으면서 평안이 찾아오는 지점에 막대기 하나 꽂아놓고서 되돌아 와야 겠습니다.

되돌아 온다는 것은 평안으로, 문제에서 자유스러우j졌다는 의미이기도 할테니까...

저도 간혹 이렇게 걸을 대가 있습니다. 때로는 좁은 방을 수십번 넘께 왔다갔다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걷는 것도 똑같은 효과가 있겠지요.

 

여러가지 방법 중에 일단 두 손을 모아보고, 걸어도 보고

아니 걸으면서 기도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더 빨라질 것도 같습니다. ㅎㅎㅎㅎ

 

 

                      <131101>

 

에스키모의 막대기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폼,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할 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로 견딜 만하다는 뜻이 된다.


휴식은 내 삶의 막대기를 꽂는 일이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다.

 

*휴식(休息) 의 한자적 의미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표음문자의 장점에 무릎믈 탁 하고 칠 정도로

 그의미의 정확성에 깜짝 놀래는 경우가 왕왕 있답니다.


쉴휴 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양이다.
쉴식 은 자신自의 마음心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무에 기대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휴식이다.

즉 나무에 기대어 내가 나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김정우 노는만큼 성공한다 中에서>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뒤에서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 같은 리더

 

리더는 양떼를 뒤에서 인도하는 목자처럼
조직원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조직원들이 이끌려 간다는 느낌 없이
리더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 넬슨 만델라 -

 

 

촌철활인 : 한치의 혀로 사람을 살린다!

 

멋진 표현입니다. 리더십의 핵심 개념이 다 들어있습니다.
유사한 의미를 지닌 노자의 글을 다시 보내드립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아랫 사람들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가 임무를 완성 했을 때,
백성들 입에서 “마침내 우리가 이 일을 해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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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책을 읽는 즐거움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호라'하며 마음 속에서 놀라움의 탄성을 지를 수 있게 하는
한 구절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중에서 -

 

엊그제 대학 졸업한지 삼십년 지난 동기애가 카톡으로 물었습니다.

"지금도 책 많이 봐"

예전의 제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으로 기억이 되었나 봅니다.

나의 답은

"예전 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봐" 였습니다.

 

예전의 십분지일 절도 일까요.

중국에 오고나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한 오년 전 부터 인문학 책을 읽는 즐거움에 빠지기는 했지만

 

위에 인용한 책을 읽는 즐거움의 하나로 언급한 기쁨이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책을 읽거나, 아니 누군가가 전해주는 카톡의 짧은 메시지에도

"오호라" 하고 느끼는 그 느낌에 중독되어 책 여행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 오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수 시절보다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출퇴근 시간으로 하루에 꼬박 두 시간을 보내게 되니 더욱 그렇습니다.

퇴근 시간은 어렵지만 출근 시간은 나름 여러가지를 정리도 하고 기도도 하고

때로는 카톡으로 소식도 전하지만 저녁 시간은 아직도 미흡합니다.

 

시간을 낸다는 말은 없는 시간을 쪼개어 우선 순위에 올려놓는다는 말이지

남는 시간을 이용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예전 처럼 책을 읽고 블러그에 소감을 올리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시작 해볼까 합니다.

 

소소한 느낌을 !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 제목을 네이버 검색창에서 치면

김광섭 시인의 대표작 시 몇 편과 함께 동반해서 같이 검샏되는 게

유심초가 부른 대중가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와

김환기 화가의 미술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니랴" 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심초의 그 노래가

이 시에서 온 것임을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시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것 입니다.

 

유심초의 노래 가사를 옮겨 보겠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유심초>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후렴)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떠오르는 꽃한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나비와 꽃송이되어 다시만나자,,

 

뚜루뚜루뚜루 뚜루루아~~


이제 같이 검색되는 수화(樹話) 김환기님의 그림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화가 김환기는 1913년 전남 신안출생으로 1974년 작고하였는데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화단에서 추상미술의 독보적인 거장으로 활동하시다

1965년 미국 뉴욕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추상미술가로써 명성을 떨치셨다고 합니다.

올해 탄생 백주년 기념 미술전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현대 미술의 거장 김환기님은 김광섭 시인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를 토대로 해서 그린 그림으로 제목은 이 시의 말미에서 따 왔답니다.

 

 

 

 작품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조선일보 만물상 (2013.10.30 字) 에 실린 글로 그에 대한 평가를 가감없이 옮겨 봅니다.

 

 

화가 이중섭은 친구였던 시인 구상에게 입버릇처럼 자기 작품을 '가짜'라고 했다. 전람회에서 누군가 자기 그림에 빨간 딱지를 붙이는 걸 보면 "됐어, 또 한 사람 업어넹겼어(속였어)"라고 진한 평안도 사투리로 소곤거렸다. 그러곤 정색을 하고 작품 산 사람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말했다. "이거, 아직 공부가 덜 된 겁니다. 앞으로 진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면 선생님이 산 것과 꼭 바꿔드리겠습니다."

 

▶이중섭이 마흔에 일찍 죽는 바람에 이 약속은 부도(不渡)가 됐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자기 작품에 만족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한 덕에 그의 그림은 미술사에서 우뚝하다. "오늘은 죽자 사자 일했어. 거의 완성돼 가는 그림을 부숴버렸어. 자잘한 것 버리고 커다란 주제만 남겼지. 한결 좋아졌어…." 뉴욕에서 홀로 작업하던 김환기 가 서울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 한 대목이다. 돈이 없어 뉴욕타임스 신문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나무 사다 캔버스를 만들어 쓰던 시절이었다.

 

▶지금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보기 드문 '그림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수놓은 거장 57명의 작품 100점을 모은 '명화(名畵)를 만나다' 전시회다. 이중섭의 '황소'와 '가족',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산월'…. 책에서나 보던 귀한 작품들이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망국과 전쟁, 가난으로 이어진 시대의 어려움을 붓 한 자루에 의지해 넘었던 화가들의 예술혼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박수근 작품으론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같은 대표작이 나왔다. 황토색 거친 화면 위에 민초들 삶을 군더더기 없이 담은 그의 그림들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고향 같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마음속 한(恨)을 견디며 곡절 많은 삶을 살아온 화가의 자화상이자 모두의 자화상이다. 변관식은 누군가 "그림이 너무 검다"고 평하면 오기로 먹을 더 시커멓게 칠하고 "나 죽으면 (어떻게 평가받는지) 봐" 하고 맞섰던 화가다. 술병 꿰차고 금강산을 누비며 그린 넉 점이 그가 죽은 지 37년 만에 관객을 맞는다.

 

▶예술에 순위를 매길 순 없다. 그래도 사람마다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세계에서 포스터가 가장 많이 팔린 그림은 오스트리아 화가 클림트의 '키스'다. 세계적 미술관 300곳의 걸작 4만점을 올린 구글 아트 프로젝트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림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나뭇잎에 가을이 물들어 가는 덕수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화가의 그림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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