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한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
한해를 행복하려면 새 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 하려면 정직하여라.

           [좋은글, 영국속담]

 

 

머리가 좀 길었다.
지난 주에 이발을 하려다가 미루었는데
아내가 자주가는 집 근처의 단골 미용실에 예약을 했단다.

오전 열시반 원장 예약.

아파트 신호등 건너이기에 보행신호 대기중에 아내가 말한다. 저기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분이 원장님이라고...
일단 달라보였다.
직원 한명만 더 있어도 사장티를 내는 모습이 아니라서

입구에 들어서자 모두들 반갑게 맞이해준다.
원장은 젊은 나이에 목소리까지 시원시원하다.

상의를 벗고 권해준 의자에 앉았다.
특별히 부탁해서일까?
머리카락를 자르기 전에 먼저 내 머리 형태를 일차 살핀 후에 자세히 손가락으로 내 두상을 만지면서 특이사항을 체크하는 듯 했다.

일단 신선하다.

왜냐면 사람마다 두상이 다르고 나의 경우에는 뒷꼭지가 좀 남다르게 튀어나와서 머리를 깍을 때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려고 하면 좀 난감해하며 자연히 신경이 곤두서는 듯 어려워하는 이용원 직원들이 많았다. 요즘들어 머리를 깍을 때 대부분 편리한 바리깡(? 전기 이발기)을 이용하여 속전속결로 머리를 다듬는데 억지로 익숙해졌다.

특별한 부탁이고 내가 이곳에는 처음이라 그런지 가위로만 머리를 자르고 다듬었다. 빠르다는 건 무언가 희생 하나를 동반하듯 그렇게 바리깡으로 깍거나 다듬은 머리는 처음 보기좋은 형태에서 일주일만 지나도 제멋대로 자라 금방 티를 내곤 한다

지금까지 이용원, 미장원 그러다 다시 이용원을 다녔다. 나이에 따른 선혿일까?

서울 집에서는 저렴한 플랜차이즈 이용원을 이용했는데 직원도 자주 바뀌고 주로 속전형 바리깡 이발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성비로 위로를 하곤 했다. 그럼에도 지난번 머리를 깍은 이후 유난히 머리가 마음에 안든다고 했더니 아내가 이곳(가재울 미용실)에 예약을 했는데...

괜찮았다.

원장선생님이 마무리로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를 하면서 아내에게 내 머리결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관리 비결도 전해준다.
오랜 항암과정에서 머리숱도 줄고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가늘어지면서 힘이 없어지다보니 머리가 죽어보인다. 다시 머리카락에 힘을 준다

돌아보면 내게도 인상에 남는 이용원(미장원)이 몇군데 있다.

늘 아버지가 다니시던 이용원만 다니다가 (어렸을 땐 의자난간에 깔판을 대고서 그 위에 앉아 머리를 깍았었다 ) 대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다니시던 미장원엘 처음 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들힌 미장원의 내부의 낯설음과 어색함은 그 시절 그 나이의 내게는 더군다나 어머니와 함께여서 쑥스럽기까지 했다.

몇번 들리면서 미장원 분위기 그것도 동네 미장원의 수다스러움에 익숙해지면서 동네의 모든 소문의 발현지이자 중계지인걸 알게 되었다. 대학생 그것도 젊은 사내이자 친구 아들인 내가 있어도 그 뒷얘기들은 (차마 글로 옮길 수도 없는) 내 귀로 자연스레 흘러들었다.

아마 이발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이용원으로 아내랑 단둘이 운여을 하셨다. 25년전 그 당시에 일흔이 다되신 사장님은 이용부문 세계대회에서 기능장을 수상하셨다는데 첫 손질부터 마무리까지 오로지 가위손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가위손으로만 자르고 다듬으면 걸리는 시간은 배인데도 그래야 다음 머리 깍을 때 까지 처음 형태가 살아있다고 가위손만 고집하셨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내 머리가 제대로 살려 있었을까?

중국에서 근무할 때 중국식 이발 도 해보고
(거의 머리를 자르지 않고 가위로 쏙아내는 형태의 이발.... 처음엔 어색한데 시간이 지날수륙 자연스러워지는 머리형이 된다)

또 다른 이발소는 아침 일찍 전직원이 가게 앞에 모여 구호도 외치고 춤도 추며 청소와 함께 하루 일과를 시작한 특이한 곳도 있었다.

오늘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옛 영국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하루였다

 
마음에 들었다.
하루가 행복해진다는 말이 맞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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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최근들어 항암주사를 맞으면 차수가 길어지면서 예전과 달리 사흘째 되는 날이 가장 힘든 날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자리에서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도 항암제로 인한 백혈구감소 (호중구 수명이 3일 정도) 영향으로 사흘째 되는 날에 면역력이 가장 약해지는 날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할 때에도 항암주사 맞는 날을 고려하고,  약속이 정해지면 나름 준비를 하게되는 것은 만나는 분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그 분들에 대한 저의 기본 예절이 아닐까 합니다.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새해 복을 비는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못한게 아니라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 더 맞습니다. 연락을 전하려다가도 연락을 받는 그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되물음에 자신이 없어 연락을 한다는 게 주저되었고 그로 인해 안부조차도 여쭐 수 없었습니다. 과거 저의 경험을 빌지않더라도 상대방 역시 암환자인 제게 안부를 묻는 것 또한 쉬운 일은 더욱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은지 십여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얼마전 무료한 오전 열시경, 오전 운동을 가려는 데 스마트폰이 울리면서 대학 같은과 동기 민이 이름이 화면에 떴습니다. '지금 어디냐?'고 물으면서 '시간이 되면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본인의 정기검진 을 마친 후 다소 여유있을 점심시간에 맞춰 집 근처에서 저와 간단한 식사를 생각했나 봅니다. 실제 제가 사는 곳과 그친구의 집은 엎드리면 코닿을 거리 만큼이나 가깝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전 그것도 채 십여일도 안되는 작년 12월 말경에 급작스레 서대문구로 이사를 한 것입니다

 나름 생각했던 만날 장소가 헝크러졌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서로에게 편한 홍대 입구역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홍대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 중에  내 건강을 염려하며 궁금해 하고 지난 정기 모임에서 못본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일정을 만들어 보자고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그 일정이 앞장서 나서준 민이 덕에 어제(15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약속 장소에 십분 정도 먼저 도착했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에 나보다 더 젊어진(?) 우현형과 태환친구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우현형이 만나자 마자 나를 안아 긴 포옹을 하고 함께 잡은 손을 식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놓지않습니다.  그 꼭 잡은 손길을 통해 서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와 묵은 정이 그대로 전해져오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이 "찡"하고 울립니다. 이윽고 약속 사간이 되자 하나둘 모여 약속한 일곱 얼굴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의 근황과 삼십팔년이 지난 학창시절 옛얘기로 식사 시간이 훨 지나도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은가 봅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온 요리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모두 가볍게 맥주 한잔씩 하고 건강과 안녕을 비는 건배에 난 차로 술을 대신합니다. 식사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로 식당 영업이 마쳐지는 사건이 돠어서야 식당의 마지막 손님이 되어 일어섭니다. 식당앞에서 서로 다음을 기약하면서 포옹과 함께 인사를 합니다.

짧디 짧은 긴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에도 함께할거라고 약속을 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오는 길에 기찬 친구가 먼길 돌아가는 길임에도 집에 데려다 줍니다.  

나이 들어갈수록 
옛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많이 행복하다는 증거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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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만남,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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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8. 12. 01:37 짧은글 긴여운

착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착지’야. 체조선수들이 공중에서 다섯 바퀴, 여섯 바퀴를 돌았어도 착지를 잘 못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거야. 젊은 시절 열심히 잘 살아온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의 마무리를 잘하는 거지. 젊은이들이 시대에 속지 말고 중심을 잡고 진리의 대지에 두 발을 단단하게 고정시켜 안전하게 착지를 했으면 좋겠어.”

  「소설가 최인호.」

얼마전 작고한 작가 최인호의 자전적 고백같은 이 글을  다시 대하게 되었다.
1972년 연세대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고 재학중 고교생으로 1963년 <벽 구멍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그리고  1967년에는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일찍부터 천재작가로 불렸다.  청년시절엔 <별들의 고향> <깊고 푸른 밤> <고래사냥>. <천국의 계단> 같은 대중소설과 수많은 영화작업으로 스타급 인기를 누리던 그는 이후 교통사고와 수술 등의 고통을 겪었다.이에 세월이 흐를수록 유교과 불교 등을 주제로 깊이 있는 작품을 쓰며 2005년 환갑에는 15년을 구상한 작품 <유림>을 발표하기도 했고 당시 60년 삶을 반추하며 했던 말이다.
2013년 5월 68세의 나이로 희귀암인 침샘암으로 5년간의 투병끝에 세상을 떠났다. 요즘 나이로 보면 이른 나이이지만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미사시 일화를 보면 천주교 신자로서의 마지막 삶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글을 서울 대교구 미사 주보에서 자주 보았었다.

서서히 직장생활의 마무리 시점이 가까워 온다. 한창 나름 잘 나가던(?) 시절에 생각했던 그러한 마무리는 아니지만, 이제는 버릴 것은 버리면서 새로운 제2의 생을 준비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매번 흔들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 준비의 결정에 다가서고 있다는 건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라스트신이 중요하듯(모든 주제가 함축되고 인상적이어야 오래 기억에 남듯) 우리 인생에서도 이렇게 마무리가 중요하다. 올림픽경기에서 체조나 스키 활강을 보면 마지막 착지가 중요하다.  아무리 멋있게 회전을 잘해도 마무리 즉 착지가 불안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이런 마무리는 운동 게임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아무리 승승장구하고 부와 명예를 누렸어도 마지막에 헛발을 딛어 쓰러지거나 허망하고 비참하게 주저 앉으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정치인들을 통해서도 자주 느낀다. 잘 쌓아오던 명예와 인기를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리는 ...) 안전하고 멋진 착지를 하려면 소설가 최인호의 말대로 중심을 잡으면서 마음을 비워야 한다. 쓸데없는 탐욕과 무지가 착지를 망치는 주범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탐욕을 마주치곤 한다. 아직도 내가 많이 무지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신호이다. 내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걸 깨닫는 하루다.

 마지막으로 서울대교구 미사 주보에 실린 작가의 글을 하나 더 더해 놓는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감사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동안  소홀했던 가족의 소중함과 행복을 더 가까히 느끼도록 해준다.

"우리들이 이 순간  행복하게 웃고있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까닭없이  울고있는  사람의 눈물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부짖고 있는 사람과 주리고 목마른 사람과 아픈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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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최인호,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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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 22:58 한글나무

조그만 행복

운동을 마치고 옛글을 보다가 그 기분으로 올겨 봅니다.

 
(이하 옛글)
회의중에 전화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나중에 걸겠다고 말하고 급히 끊었는데
집에 퇴근 한 후에야 생각이 났습니다.

토요일 !

출근해서 이것 저것 고민은 많이 했는데 진척은 없었습니다.

한국은 설 명절 후 휴일이기에 보내지는 메일도 없으니 홀가분한 하루였지만, 중국에 와서 줄어든 것들 하나가 전화와 카톡입니다.
아무래도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지고 관심도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더 애틋해지고 궁금해지고 보고싶은 것은 사랑한다는 증거요. 그러한 사람이 내게 있어 소중하다는 의미입니다.

전화를 걸면 멀리 전화기를 통해서도 그 사람의 미묘한 마음이 읽혀집니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그리 전해지는 것입니다.

엊그제인가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제 고3 수험생이 되어서 학과 공부에 열심입니다.
한 동안 방황(?)하고 엄마와 잦은 말다툼의 시기를 보내더니 작년 초부터 마음을 바로 세운 후 부터는 도리어 엄마를 위로해 주곤 합니다.
 
전화를 기쁘게 받더니 끝 즈음에 목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억지로 울음을 참아내느라 울먹임을 감추는 게 눈에 선했습니다.

"아빠 보고싶어요"하면서
끝내 울음 소리를 높였습니다.

딸아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나도 잠시 천장을 쳐다 보았습니다.

위로의 말을 보냈습니다.

오늘 들어보니 아내에겐 씩씩하게 말 하더랍니다. "아빠와 통화했다"고...
속이 깊은 아이 입니다.
 
엊그젠가 전한 기억이 있는데 저하고 전화를 하면 끝 말미에 내 목소리가 조금은 달라진다고 엄마에게 말하고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오랫만에 통화를 했습니다.

생각은 많은데도 시간이 안맞아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오늘은 다행히 놓치지 않고 반가웠습니다.
 
       <1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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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사랑,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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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글을 옮겼습니다.
저의 정신적 지주이신 대종사 법정스님의 글입니다.

“행복은 ‘이 다음’이 아닌 지금 순간에”
                                    법정스님

오늘은 중국에서 대체근무일이라 출근을 했습니다.

몇 가지 겹치는 일들로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었는데 제가 보관하는 자료집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잠시 스님을 다시 뵙는 기분으로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좋은 말씀이나 아름다운 글은 언제 다시 읽어도 새로이 숨을 쉬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내 글도 그런 마력이 조금은 묻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130428>

 

보성 동양다원


[펌글] “행복은 ‘이 다음’이 아닌 지금 순간에”

법정스님, 길상사 봄 정기법회 법문
 
법정스님이 새 봄을 맞아 불자들을 찾아왔다. 스님은 지난 16일 성북동 길상사(주지 덕조스님) 극락전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에서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순간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회에는 1200여명의 신도들이 함께했다. 법문내용을 정리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는지 못 지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 합니다. 날씨가 이렇게 화창하면 사람의 마음도 화창해집니다. 우리 몸 자체가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대 자연의 상태에 따라서 사람의 몸도 공감합니다. 온 천지간에 꽃입니다. 봄기운이 사방에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때 마음이 여린 사람은 꽃멀미를 앓아요.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을 이룹니다. 꽃이 없는 봄을 상상해보십시오. 꽃이 없는 봄이 온다면 어두울 수밖에 없어요. 환경학자들은 미래에 이 다음 세기에 가서는 봄에 꽃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지금처럼 지구와 환경훼손이 지속되면 봄이 와도 꽃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꽃을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좋아합니다. 만약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새삼스럽게 삶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기 때문에 꽃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꽃이 피는지 마는지, 새 잎이 돋아나는지 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은 무엇에 쫓겨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주적인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다닙니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그어놓은 금과 같은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존재합니다. 특히 공동 생활에서는 그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멋대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립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 필요하고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시간은 그 성질이 달라요. 불안과 두려움은 이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는 거예요. 혼자 가만히 있는데, 불안해하다가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적인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서 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인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타의적이에요. 외부에 의해서 정해져있습니다. 심리적인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 있습니다. 시계가 시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흔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세월이 약이겠지’라고 하는데, 그 말에 속지 마십시오. 시간 자체는 무슨 일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망각이 있을 뿐이에요. 모진 맘을 먹었어도 세월이 지나가면 풀어집니다. 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수피우화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로 향해 가고 있었는데, 짐을 운반해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어요. 짐도 많았고 길 안내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밀림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서 더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탐험가가 원주민에게 화를 내면서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까지 꼭 도착해야 한다고 재촉을 해요. 짐꾼들은 꼼작도 하지 않습니다. 윽박지르고 달래도 보는데 짐꾼들은 도대체 요지부동이에요. 탐험가가 한 사람을 붙잡고 이유를 물어 봤습니다. “여태 잘 오다가 주저앉아 다시 길을 가려하지 않는 이유가 뭐요.” 원주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여기까지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쫓기듯이 사흘 동안 계속 왔기 때문에 영혼이 분리된 거예요. 그래서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탐험가의 재촉에 쫓기듯 길을 헤쳐 오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왔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만 내세우다가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속도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거나 몹시 서두를 때, 재촉당할 때 스트레스를 받아요. 너무 빨리 움직이면 안정을 잃습니다. 그런 경험 다들 해보셨죠. 제한속도 시속 100km로 달려야 되는 구간을 시속 150km로 달리면 연료만 많이 소모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정한 정서를 이루게 되요. 자기도 모르게 들뜨고 흥분되고 피곤이 가중돼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겁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고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속도라는게 그런 거예요. 속도와 효율성은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요소입니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신문사나 방송국 같이 마감시간이 있는 곳이 대표적입니다. 마감시간이라는 것이 아주 비인간적인겁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면서 일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감성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면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계속 쫓기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맙니다. 원주민의 표현대로 무슨 일에나 영혼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삽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세상인데,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를 살해하는 막된 이 세상에서, 삶의 기준을 어디다 두고 살아야하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안정감을 잃고 제정신을 잃고 바삐 쫓기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살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안정을 얻어야 합니다. 마음이 안정돼야 사람의 도리를 생각할 수 있고, 주위의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온갖 생각을 다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복잡한 생각,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부려놓고 그냥 무심히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래야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틉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뤄야할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이 다음에 시골에 내려가 집이나 한 채 짓고 조용히 살면서 행복을 찾겠다”고 설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뤄야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것을 되돌아보세요. 행복을 누렸던 그 때는 한 순간이었어요.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있어요.

지금이 바로 그 시절입니다. 다른 때가 우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늘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어떤 특정한 기회에, 특정한 시간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행복이라고 알고 있어요.

자동차를 갖고 싶은 사람은 자동차, 5월 선거 때 한 자리 하고 싶은 마음, 자기 짝을 갖고 싶은 사람, 이런 욕망을 이루면 행복이라고 하고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것을 막상 갖고 나면 머지않아 시들해집니다. 그렇게 소중하던 물건이 시들해지고 쳐다보지도 않게 돼요.

그것은 모두 덧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변할 수 있는 덧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일 수 없습니다. 부수적인 것은 상황에 따라 늘 변해요. 자동차, 가구, 권력 등 삶의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이 아니에요. 부수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가치를 부여하지만 부수적인 것은 그렇게 가치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요구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선물이에요. 추구하거나 요구하게 되면 행복은 우리를 비껴갑니다. 지금 찬란한 봄날에 이 순간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이 안에 행복은 깃들어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무엇에 쫓기듯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미쳐 따라올 수없도록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안정된 마음, 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꿔야 합니다. 나무들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저마다 마음껏 기량을 드러낸다면, 그 때 그곳에서 향기로운 삶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 잠재력을 묻어두지 말고 마음껏 발휘해서 세상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현재에 있다는 사실을 거듭 명심하길 바랍니다.

눈부신 봄날 활짝 문을 연 꽃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구체적으로 들으면서

 오늘 하루 이 자리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십시오.

[불교신문 2006.4.17] http://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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