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5RfxPYV7kmk

여보당신 사랑해요 바로듣기.

여보당신 사랑해요
노래  김준하
작사  김준하
작곡  김준하

당신을 처음만나 어느덧 반평생
깊은한숨도 웃음꽃도 피웠지 부족한 날만나
한때는 자식땜에 한때는 정으로
그저그렇게 재미없이 살았지 무심한 날만나
(후렴)
무던히도 꾹참고 견뎌준 당신
사랑해요 정말 보라빛 튤립같이
이제 남은인생 당신위해 살아가겠소
이생이 다할때까지 여보당신 사랑해요

(나래이션)
모든것이 부족한 저에게 사랑으로 감싸준당신
철없는 나날을 이해와배려 믿음으로 살아준당신
우리서로 언제까지나 사랑하며살아요
여보당신 사랑해요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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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도를 마다하실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걸 당연히 믿으며 몸과 마음이 편찮거나 아프시고, 특히 환우 가족들에게 공유하여 치유의 은혜를 함께 나누시길 기대합니다.

..................

세계 성령대회(지도자 워크샵)에 참석한 세계적인 치유자인 Robert Canton Ministries께서 참석자에게 나누어 주신 영문 '치유의 기도'를 한글로 번역한 것을 아래와 같이 올립니다.

이 기도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기적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치유의 기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를사랑하시어 저를 구원하시고 해방시키고자 당신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저를 지키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당신의 권능과 은총에 의탁하나이다.

자애로우신 아버지,
당신 치유의 손으로 지금 저를 만져주소서.
당신은 제 마음과 몸, 영혼과 정신의 쾌유를 원하신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당신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보배로운 성혈로 저를 감싸 주소서.
제 안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을 모두 없애 주소서.
해롭고 비정상적인 세포는 뿌리채 뽑아내 주시고 건강한 세포가 많아지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불길이 저의 온 몸을 관통하여 치유하게 하시고, 제 몸의 아픈 부위가 당신이 창조하신 그 기능대로 작동하도록 새롭게 만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고귀한 성령의 힘으로 모든 염증을 없애시고, 감염된 부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
제 의식과 감정, 그리고 제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만져주소서.

제 존재 전체를 당신의 현존, 사랑, 기쁨, 평화로 가득 채워주시고,
삶의 매 순간 제가 당신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소서.

아버지, 당신의 성령으로 저를 가득 채우시어 제가 당신의 일을 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삶이 당신의 거룩한 이름에 영광과 기쁨이 되게 하소서.
이 기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이 기도를 매일 바치고 주님께서 당신을 어루만지시어 치유받으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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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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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명절에는 광주 본가에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 속에 상상만으로도 스스로 내려가는 그림을 자주 그리곤 했다. 아니 늘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주 주말에 서울에 두 딸이 살고있어 그나마 서울에 자주 올라오게되는 세째 여동생이 어머니의 반 성화(?)에 못이기는 척 겸사겸사 KTX 편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사실 어머니를 뵐 기쁨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야윌때로 야윈 내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는 보여줘도 어머니에게만큼은 보여주기 싫었다.
내 모습을 보시고 실망할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늘 눈물이 났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몇달만에 어머니를 직접 뵈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마치 오랫만에 만난 연인처럼 나를 꼬옥 안고서 어쩔줄 몰라하셨다. 그래도 난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의 눈길을 애써 피했다.
어머니 역시 내 맘을 아시는 지 예전과 달리 내 얼굴을 만지시기만 하고 계셨다.
기특하게도 조카들도 주말임에도 함께 해주었다.
집근처의 바다라는 식당에서 아구찜과 해물탕을 시켜서 푸짐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해물텅이 좀 빈약했지만 가성비 대비로 보면 그래도 솔솔하다

저녁에 아내랑 어머니는 와인 한잔.
좋아하시는 피자는 어머니도 과식으로 뒤로 미뤘다.

저녁에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얘기중에 갑자기 내 눈물보가 터졌다
소리를 죽이려 이를 악물었음에도 엉엉 소리가 잇몸새로 새어나왔다.
어머니도 결국 우셨다. 아내도 옆에서 운다.
그리곤 지나가듯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어머니 오시면 어머니 품에서 엉엉 울고 싶었대요"

어머니께서 갓 부화한 새끼를 품에 안듯 나를 꼬옥 안으시면서 이제 우리 그만 울자. 아들 눈물 흘리지 않도록 서로 노력하자고 하셨다.

 

다음날 너무 좋지않은 미세 먼지로 강화도로 가려던 일정을 뒤로 미루고 집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차한잔 나누신 후 아내가 용산역까지 모셔다 드리고 다시 광주로 향하신다.

1박2일 어머니의 아들집 방문이 끝났다.

이제 여윌대로 여윈 내 모습을 보셨으니 체력이 허락하는 한 광주에 자주 다녀올 생각이다.

일주일 지나서 명절에 못내려가서 죄송하다고하고
아버지 기일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그 때 건강하게 보자고 하시면서 미처 끊지 못한 스마트폰 너머로 울음소리가 들리는듯했다 .
환청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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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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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봉사하는 활동에 시간을 내어야겠다고 뒤로 미뤄뒀는데 막상 퇴직을 하고보니 이제 현실적으로 육체적인 봉사는 어렵게 되었다. 역시 무슨일이든 마음먹으면 뒤로 미루지않고 쇠뿔도 단김에 빼듯 바로 실천해야지, 바쁘다고 뒤로 미루다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그나마 오랫동안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두어군데 소액이나마 꾸준하게 기부를 해온 단체가 있다. 엊그제 그 중 한 곳에서 안정족인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기쁜 소식지를 보내왔다.

그 내용을 읽어보다가 그 보금자리 마련 이전에 34년 동안 13번 이사를 하면서 겪었던 사연들이 적혀있었다. 이사하는 날 시설 현황을 보고 바로 방을 빼달라거나, 얘기가 잘되어 이사하려는데 계약을 물려달라는 등의 그동언 겪었던 어려움들이 묻어 있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드디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제 이사에 대한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어린시절 기억이기도 하다. 나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집없는 설움, 더 나아가 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인에게 당한 설움으로 어머니의 남몰래 숨죽여 우는 것을 몇차례 모른척하고 지켜보아야 했던, 셋방살이의 설움 그대로였다.

국민학교 입학전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광주의 변두리로 어머니, 나, 그리고 동생 둘이랑 함께 이사를 왔다. 지금 어머니께서 사시는 곳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상하다. 어디선가 첫 삶의 터를 잡으면 쉽사리 그곳을 못 떠난다. 나도 직장따라 서울에 처음 정착한 곳애서 근 15년을 셋집살이로 맴돌았으니 ) 이사온 첫날밤 방틈새로 스며든 연탄가스로 온식구가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그때 옆집의 아주머니가 주신 동치미 국물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당시 연탄가스 마시면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하는게 민간 요법이었다. 그래서 그 집을 떠나 같은 동네로 옮겼다. 아이들 셋의 영향으로 몇달 못살고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집을 얻을 때 아이는 나혼자인 것 처럼 하고 식구수를 줄여 집을 얻고서 이사를 했다. 이사 당일에 나만 함께 이사를 하고 두 여동생은 밤늦게 데려왔다.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주인댁에서 알게되어 그에 대한 잔소리를 했는데 이사가라는 말은 없었다. 주인집에도 아이들이 다섯명이나 되어서인지 이해를 해주었고 또래들이어서 조금씩 나아졌고 거기서 네째가 태어났다. 물론 아이들이 떠들면 떠든다고 주인댁에서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주인은 양반에 가까웠다.

우여곡절 끝에 두어차례 더 이사를 했고(부엌도 없던 행랑채 비슷한 곳에 수돗물도 없이 옹달샘물을 먹던 준 산골집도 거쳤다 ) 그 사이에 네째가 태어났고, 마지막으로 지금 집에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다. 그집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땀으로 지은 집이다. 산밑 산번지의 땅을 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새벽에, 일을 마친 저녁에 땅을 파서 평지로 메꾸는 작업을 했고 당신의 직업을 살려 비록 무허가지만 방세칸을 뚝딱 지었다. 이사를 마친 다음날 어머니는 그날 처음으로 발뻗고 편히 주무셨다 했다. 그 뒤로도 집 뒷편을 파내는 작업이 계속되었고 근 일년만에야 터다운 집이 되었다. 그 사이 상하방 한칸을 더 달아냈고 두어번 축대가 무너져 고생하기도 하셨다. 그래서인지 방을 세내어줄 때 아이들 많은 걸 가리지 않고 세를 내어줬고 그뷴들과 사이좋게 살았던것 같다. 지금도 우리 집을 거쳐간 분들과 왕래도 하고 애경사도 챙기고, 모임도 하는걸 보면 ....

이야기가 다소 다르게 흘렀다.

봉사 이야기를 하고싶었는데... ...
이제는 육체적 봉사는 엄두를 낼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쉽고 씁쓸하다. 은퇴를 하면 이런저런 봉사를 해야지하고 염두에 둔 봉사는 이제 물건너 간 셈일까?

아직도 난 그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년말, 성탄절이 다가오자 그 기부 단체에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어온다.

내가 드리는 기부액이야 소액이지만 그 분들에게는 큰힘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어본다.

어렸을 때 미국 한 할머니에게 매달 5달러씩 후원받은 어느 분의 이야기다. 그 분 역시 그 도움을 잊지않고 페루의 아이들을 계속 후원하고 있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그는

“중간에 후원을 멈추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많은데 일단 한 번이라도 해보길 권한다”며 “망설이면 아무것도 안 된다. 작아 보이는 5달러나 2만~3만원이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난감 기차’나 ‘만년필’처럼 작은 기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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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7. 22:19 차한잔 나누면서

하늘

하늘

다향(한글사랑)의 티스토리 한글사랑(다향) 2019. 7. 29. 10:29


사람이 죽으면
꽃상여 타고 하늘 나라 간다는데
나는 하늘이 가장 보고플 것 같다.

암병동 1004 병실
밤 열두시.
나는 잠을 자고
아내는 어미새처럼 쪼그려앉아 지켜 본다.

행여 어둠이 남편을 훔쳐갈까 봐
그렇게 지켜낸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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