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어버이날은 내게 있어 유난한 생각이 들게하는 날이었다. 

 예년 같으면 어버이날에 맞춰 광주에 다녀오곤 했는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한 큰  아쉬움이 나를 더욱 유난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비단 나만 그렇지는 않았을게다. 
아내 역시 표현은 안했어도 마음속으로는 작년에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 생각으로 나와 마찬가지 심정이었을게다.

그나마 우리는 아이들이 준비한 떡케익으로 어버이날을 맞이했는데, 난 어머니께 전화만 넣어드린 그날 아침이었다.

항암 치료를 진행하면서 행사나 중요한 일정에 선뜻 약속을 잡을수가 없다.

항암 일정에 대해 내 스스로 장담을 할 수 없어서이다.  그 이유는 항암 주사 일정이 매주 진행되고 항암 주사를 맞은 후 보통 3-4일째가 좀 힘들어지기에 연이은 항암 주사로 이틀 정도만 심적 여유가 있게된다. 따라서 이삼일 소요되는 장거리 일정은 부담스러워져 선뜻 시간내기가 부담스러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잡기에 가장 부담이 적은 기간은 두번째 항암주사를 맞고 한주간 쉬게 되는 그 주간이다.  이 주간에는 전 주중부터 몸상태가 정상 수준이기에 일정 잡기에 가장 부담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번 주간은 스탠트로 인한(권장사용기간이 두배 이상 지나서) 급작스런 고열 발생 등 긴급 사항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긴 여행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만사 제껴두고 꼭 다녀와야 할 곳이기에 이번 주말, 광주 어머니 댁에 조용히 다녀왔다.

 
항암에 따라 어버이날임에도 어머니께 쉽사리 언제 내려간다는 약속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지난 화요일 오후부터 몸 상태가 일상으로 회복되어서 주말에 광주를 다녀온 것이다.
전화로 모임을 확인하니 아들 기다린다고 내려가는 날 예정된 친목모임도 취소하셨다고 했다. 도착시간을 감안하여 그 모임에 참석하시라고 부탁을 드리기도 했다.

 전보다 훨씬 밝아진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고 덕분에 나도 덩달아 좋았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 산소에 들려 아내랑 인사를 드렸다. 당신이 심으셨던 산소 주위의 나무들은 여전히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는데 어느새 철쭉꽃은 지고 있었다. 다만 봄볕에 웃자란 풀들이 봉분과 주위에 무성해 있었다.
가까운 시일내에 한번 제초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내모습이 안타까웠다

얼마만에 들렸을까?

생각해보니 작년에 아픈 이후로 처음 아버지 산소에 들렸다. 광주에 두세번 들렸음에도 들리지 마음과 달리 들리지 못했었다

잠시 인사를 드리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내려오면서 만난 길가의 돌단풍꽃들이 반가웠다. 아버지랑 함께 이 성묘길을 오르내리면서 나눴던 얘기와 그 때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나둘씩 연이어 떠올랐다

집에 도착해 보니 아버지께서 심으셨던 화단의 하얀 돌단풍 꽃들이 나를 반겨준다.  마치 아버지께서 그 꽃으로  나를 맞아주시는듯 했다. 

어머니와 함께 밖에서 저녁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광주 본가에 가면 내가 하는 첫번째 일은 늘 변함없이 집안 청소와 정리정돈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발을 삔 후로 여러모로 불편해하시는게 늘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지난번 보다 차도가 있어 다행이다.

 용돈을 따로 드리는데 극구 사양하신다.  "아픈 아들에게 내가 주어야하는데..."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어머니 볼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아니라고 말을  전하면서 다시 한번 입을 맞추었다.

 가슴이 찡했다.
아내가 특별히 내게 준 선물이다.

하룻밤을 자고 어머니께서 바리바리 싸주신 것들과 함께 다시 대산 산책에 들려 몇가지 짐을 챙긴 후 머물지 않고  곧장 서울로 왔다.

오는 길에  아내가 묻는다
" 이제 마음이 놓이냐?" 고
난 미소로 화답을 했다.


[어버이 날]
날    짜 : 5월 8일
시행일 : 1973년 3월 30일
주관처 : 보건복지부
분    류 : 법정기념일, 비공휴일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고, 효 사상의 미덕을 함양하기 위해 지정된 법정기념일. 한국에서는 1956년부터 기념해온 '어머니날' 행사가 확대되어, 1973년부터 '어버이날'로 제정되었다. 한편, 본래 '어버이날'의 유래는 미국에서 시작된 '어머니날'이었으며,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는 '어머니날' 혹은 '마더링 선데이' 등으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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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아들과 함께 외식을 했다.

집 근처 명지대 앞 맛집을 고르다가 결국 모래네 곱창집을 선택했다.  오늘은 웬지 점심을 밖에서 먹고 싶었고 할수만 있다면 아들 녀석과 같이 먹고 싶었다. 이곳으로 집을 옮긴 후 가족이 함께 외식한 기억이 없었는데 내심 이게 마음에 걸렸다. 아들 녀석이 할일 없이 바뻐서 시간을 내주지 않은 것도 하나의 큰 이유이다. 나름 여러군데를 검색하다가 일단 멀리 가기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명지대 근처 식당가에서 먹는다는 것으로 정했었다. 물론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하고쉽게 동의할 곳으로 전략(?)상 정한 것이다.

오늘도 아들 녀석은 처음에는 시큰둥하다가 결국 함께 외식을 하는데 동의 했다. 명지대 근처까지 십오분 정도 함께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주로 아내와 녀석의 얘기로 난 무신경한 척하면서 얘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발걸음과 달리 귀는 뒤쪽으로 향해있는 나를 본다. 

선택지는 하나, 명지대 왕십리 곱창을 먹기로 했는데 그곳은 오후 한시반경임에도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어 결국 명지대 앞 곱창집 양대산맥의  또 다른 하나인 모래네 곱창으로 발길을 향했다. 야채곱창과 붉은 알곱창을 함께 섞어 달랬고 마지막에는 볶음밥 두개를 볶아 먹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다만 양만큼은 푸짐했다. 몇몇 사람이 지적한 곱창 냄새는 별로 못느꼈는데 다먹고 일어서니 그때에는 바로 느낌이 왔다
천장 부위에서 머물던 누린내가 제법 느껴졌다. 아마도 오래된 가게로  묵은 냄새가 배여있고 환풍시설이 부족하여 나타난듯 하다. 그래도 오랫만에 함께한 외식으로 분위기는 좋았다.

아들은 약속이 있어 식사후 먼저 가고 아내와 나는 안산 자락길을 모처럼 함께 걷기로 했다.

안산 자락길로 가는 도중 홍제천에 핀 하얀 매화와 노란 영춘화가 우리를 반겼다

영춘화는 언뜻 보면 개나리꽃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대가 1-2 센티 길이로 올라와 있고 노란꽃잎이 5개이다. 영춘화를 만난 첫느낌은 마치 영낙없는 조화같아서  다시 보게된다.
자세히 보아야 한다

안산자락길을 아내랑 함께 걸었다. 곳곳마다 노랗게 핀 산수유 꽃이 우리를 반겼다.  노란 색 꽃으로 비슷하나 모양이 조금은 다른 하이리 나무 노란꽃도 마주쳤다.

간간히 이른 진달래도 몇 송이 보인다.

홍제천에서 만난 진달래꽃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십일년전 사월의 어느날 중환자실에서 집에 있는 진달래 분재의 진달래 꽃이 보고싶다고 말씀하셨다.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퇴원하시면 직접 만져보실수 있다고 했는데 끝내 직접 보시지는 못하셨다.

그래서인지 진달래꽃만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보니 식탁에  일본산  "오끼나와 후코이단" 2병이 놓여 있었다.  아마존에서 구매한 일본 우체국 택배였다.

얼마전에 백혈구가 낮아 항암치료가 연기된 후 이를 개선하고자 

백혈구 증진(면역성 활성화)에 약효가 있다는 민간 처방인 면역스프, 닭발과 미역귀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었다. (참고로 민간 처방은 효과에 대해 과학적인 검증은 없고 또 개인별로 그 약효는 천차만별이다.)

면역스프는 바로 끓여서 매일 아침 식사대용으로 꾸준하게 잘 먹고 있다.
면역력을 올려주는 면역력 스프 바로보기
 https://click4tea.tistory.com/1873

효과가 크다는 닭발 곰탕은 웬지 땡기지아서 먹는 걸 포기했다. (닭발 곰탕 만드는 법은 본 글 하단 참조)
 (닭발을 좋아한다. 생닭발을 잘게 부셔서(일명 조사서, 전라도 방언) 즐겨먹었고 뼈없는 불닭발도 줄겨먹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삶은 닭발 요리에 기겁을 했다. 중국애들은 엄청 좋아했는데 난 그렇게 먹는 닭발은 싫었다)

인터넷에서 닭발곰탕을 포장해서 파는 건강원 정보를 보긴했는데 웬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아내는 건강원의 닭발곰탕은 웬지 신뢰가 안간다며 집에서 해주겠다는 말에 내가 손사레를 쳤다. 닭발을 삶아 우려내는 과정에서 나게 될 그 특유의  역한 냄새와 막상 닭발 곰탕을 눈앞에 두고서는 못먹을 것 같은 예감에 극구 사양했던 것이다.

세번째 미역귀는 먹는데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 구입해 먹기로 했다. (아래 내용에 따라 후코이단으로 대체)
만일 먹다가 먹기 어려우면 미역국에 넣어서 먹거나 주전부리로 먹자고 했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미역귀를 구매했다.

이 미역귀로 무침을 하여 먹는데 쉽사리 손이 가지않았다. 마침 아들 녀석이 식탁에 놓인 미역귀 무침을 보면서 바라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미역귀 한보따리는 먹어야 하는데 하세월이라고 농아닌 농을 친다. 그러면서 효과적인  미역귀 성분을 먹는 방법으로 이 유효성분만을 추출하여 농축한 게 후코이단이라며 천연성분이라서 부작용도 없다며 후코이단 얘기를 꺼냈다.  아내도 후코이단을 알고 있다며 가격이 비싸다고 거들었다  (내가 모르는 후코이단 정보를 두사람 모두 알고 있는 걸 보니 암환자보다도 가족들이 암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아들녀석이 외국에서 올 택배 하나를 유난히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택배로 아빠께 주는 선물이 올거라면서 해외직구라 했다.

도대체 무얼까 궁금했는데 그게 이 후코이단이었다. 

알바를 하면서 고생해서 번 돈으로 돈 아까워하지 않고 아빠를 위해 크게 쏜 것이다. 지난 한달 내내,  알바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꼭 딸기를 사오곤 했다.

딸기를 사오는 이유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나와 지인이 통화중에 나도 아는 암환자 형님이 딸기를 막고 나았다는 통화를 들었었나 보다
딸기가 항암에 좋다는 말에 나를 위해서 매일 딸기를 사온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성격이라 별다른 표현을 안했지만 이렇게 녀석의 속마음을 표현해 온 것이다.  비록 내 앞에서는 우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암소식을 듣고서 남 몰래 많이 울기도 했단다. 암진단 후 매일 인터넷을 뒤져서 정보를 검색하고 엄마에게 알려주곤 했었다는 것도 아내를 통해서 들었다. 이런 일들을 떠나서 요즈음 녀석을 보면 내 마음이 저절로 든든해진다.

아이들과 아내의 남모를 눈물과 기도를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내일이 항암 14차 (7싸이클 2차) 가 예정되어 있다.

[닭발 곰탕 만들기]
준비물
 ①닭발 1kg 정도    ②마늘 6~7개
 ③생강 엄지손가락 만한 것 1개
 ④양파 1개       ⑤황기 적당량
 ⑥소주반컵
  + 월계수잎을 넣어도 됨

조리방법
1. 닭발을 소금을 넣고 빡빡 깨끗하게 씻는다.
2. 큰 냄비에 물을 여유있게 붓고 닭발과 생강, 양파, 마늘, 황기, 소주 반컵을 넣고 끓인다.
3. 팔팔 끓으면 불을 줄여준 후 (이때 불을 줄이더라도 물은 보글보글 끓을 정도) 2시간 가량 더 끓인다.
4. 다 끓인 국물을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 후 하루에 3번 정도 마신다.
(냉장고에 두면 푸딩처럼 굳는데 마실 때에는 이를 데워서 먹는다)
5. 2일 정도 마시면 효과 100% (백혈구 주사 맞고도 오르지 않는 수치가 닭발 곰탕을 먹고는 회복: 개인차 있음)
개인적으로는 닭발도 닭발이지만 함께들어가는 황기, 마늘, 생강 등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


참조. 호중구의 중요성에 대하여.
 호중구의 중요성 바로보기
 https://click4tea.tistory.com/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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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이팅 2019.06.19 2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또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토요일 아침 TV 프로에서 간암3기 암을 이겨낸 남편과 아내, 노부부가 나왔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마치 금기어 처럼 여겨졌던 '암"이란 단어가 내 몸안에 공좀하고 있어서일까?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자주 듣는건 그리 좋지 않다.

프로그램 사회자가 간병을 했던 아내분에게 묻는다.

어느 때가 가장 힘들었나요?

(이유없이) 화를 낼 때 제일 힘들고 서러다. 환자도 힘들겠지만 간병인도 힘들었기에...
더군다나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도 못하기에...

사회자가 다시 남편에게 묻는다.

왜 아내에게 화를 냈느냐?

암환자가 되다보니 이유도 없이 짜증이 나고 예민해지더라.
그러다 보니 그냥 지나칠 일에도 소리가 높아지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되었다.
돌아보면 아내에게 제일 고맙고 미안하다.

그 마음을 담아 아내에게 쓴 편지를 직접 읽어 주면서 마음을 전한다.

이윽고 남편이 아내를 꼭 안아주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아내는 눈물을 흘린다.

이 대목에서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부부의 사연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나간 어제의 아니 지금 현재의 저의 모습이자 아내의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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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건강,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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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늦은 밤 현관의 등을 켜 놓는다.
현관등의 자동 점등(On Off) 기능이 고장난 후 생긴 습관이다.
저녁 잠자리의 예민한 불빛에도 불편을 감수하고서 늘 켜놓는 것이다.
공부하느라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딸아이에 대한 사랑과 배려이다.

어린시절 밤새 늘상 켜져있던 예전 집의 마당을 밝히는 백열등이 떠올랐다.
집 구조가 일자형 세칸 방에 이어진 상하방으로 방 앞은 긴 일자형 마루로 연결되었다.
긴 마루 중간에 3개의 기둥이 지붕 서까래를 받추고 있었고 마루와 마당을 비추는 일종의 현관등 (엄밀히 말하면 마루등이라 해야 하나?)이 있었는데 이 등을 켜놓았던 것이다.

전기세에도 민감하여 아껴쓰던 그 시절에 그 등만은 늦은 밤 까지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리고 저녁 늦게 마지막으로 귀가하는 사람이 그 현관등을 끄는게 우리 집의 자연스러운 불문율이었다.

대부분 아버지와 나의 몫이었다.

어느날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왜 저 불을 맨날 늦게까지 켜 놓는거예요?"

어머니는 나즈막하게 말씀하셨다.

"누군가 대문을 들어서는데 집안의 불이 모두 꺼져 있으면 그 사람의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언젠가 밤 늦게 대문을 삐걱 하고 열었는데 집안이 깊은 어둠 속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마루 등이 꺼져있었던 것이다.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둠이 주는 불안과 공포이기도 했다.
 
마루 등의 촉이 나갔는데 미처 갈아 끼우지 못한 것이다.

그 때서야 이 마루등 하나가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또다른 표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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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등불, 배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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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난주 화요일에 광주 어머니께 다녀왔다.
그동안 동생들과 아는 친척 지인들에게는 나의 처지를 말했지만 어머니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결국 이제는 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퇴원한지 좀 시간이 흘러 몸도 좀 나아졌고 얼굴도 약간 살이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셔도 충격(?)이 좀 적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나의 상황을 더 이상 감추는게 힘들기도 했다.

전날 동생들에게 시간되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면서 어머니께는 별도로 내가 말씀드리겠다고 가족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몇몇이 지금처럼 알리지 않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마음 먹은대로 말씀드리기로 하면서 내려갔다.

먼저 집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리자 첫마디가  여윈 내 얼굴을 만지면서 "아들 고생 많았네" 랴는 말씀이었다.

간만에 동생들 부부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밖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급작스런 일정에도 오빠의 사정을 이해하고 모두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 식사 후 장소를 이동하여 차를 마시면서 오랫만에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노라니 나도 기뻤다.

시간이 되어 각자 집으로 가고
난 어머니 곁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 도중에 내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 아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내가 가 봤어야 했는데 못가 봐서 미안하다" 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 눈물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천정을 보다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쪽을 보아야 했다.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지 않도록 잠시 시간을 흘려 보낸 후 지금의내 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의외로 어머니께서는 내 말에도 담담하셨다. 과거 아버지의 경우에서 익히신 학습 효과와 저녁 식사도 잘하는 내 모습에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놓이신듯 했다. 

당신은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큰 걱정하지 않는다.
아들은 아들대로 치료에 전념하고
난 나대로 네게 걱정되지 않도록 관리할 것이니 서로를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자"

"내 좋아하는 술도
며느리 말대로 세잔을 넘기지 않을 것이고
꾸준히 운동하마."

한 침대의 옆자리에 누워 어머니와 함께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광주 본가를 나서 대산 사택으로 이동했다.

그뒤로 어머니께 전화도 자주 드리고 있다. 사실 병원에 입원한 이후 목소리에 힘이 없거나 목소리가 잠기면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화를 드리지 못해는데 이젠 거리낌없이 이틀에 한번 이상 통화를 하고 있다.

요즘도 어머니는 내게 직접 통화 보다는 아내에게 먼저 전화를 거신다. 아마도 내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셔서 혹시나 내가 불편해 할까봐 그러시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짐을 벗어서
홀가분해진 나를 본다.

엊그제 서울에 내린 눈.

세상사는 것
단순할수록 더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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