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발렌타인데이'이면서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우스게로 전세계 사람들이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일을 축하해준다고 말하곤 한다.

환자보다 더 힘든 환자 보호자인 아내를 위로하고자, 고민하다가 모처럼 서울을 벗어나 멀리 파주 헤이리 마을을 다녀왔다  자유로에서 예술마을 입구로 들어서기전 사거리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장단콩 두부마을에서 청국장 정식과 콩비지 정식을 먹었다. 그옆 오대천황 짬뽕집도 유명하다.  화사하고 청명한 날씨 만큼이나 마음도 가벼워진다.

주문한 청국장은 내가 좋아하는 발효된 콩이 그대로 살아 있어 마음에 들었는데  맛까지 금상첨화다. 아내가 주문한 콩비지는 고기를 갈아넣은 콩비지로 잘게 썬 고기와 김치를 넣는  일반적인 콩비지찌개와는 달랐다.
순두부와 두부가 입맛 시식용으로 나왔고 반찬은 정갈했는데 시레기무침과 특히 갓 담근 배추 김치가 맛이 있었다. 거의 십여년만에 들린 헤이리마을은 겨울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그 당시 깨끗하고 신선한 예술 마을에서 가다듬지 않아 낡고 덩치만 커져 마을의 특색이 사라지고 있었다. 딱히 함께 걸을만 한 거리도 보이지 않고 아내에게 선물할 멋진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생각했지만 아내의 제안대로 따스한 봄날로 미뤄 두었다.

오후에 안산 초록길을 운동삼아 걸었다.
요즌은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유도 없이 그냥 미소가 띄워진다.

 안산 초록길.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길을 나서 약 500미터 걸어가면 홍제천 산책길을 만나게 된다. 이제 홍제천을 따라 홍지문 방향으로 상류 북한산 방향으로 1.5 키로미터를 걷다보면 산책로 오른편에 서대문 구청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구청뒷편 안산자락길로 가려면 자연스레 허브공원을  지나게 된다. 아직은 허브들을 추위에서 보호하고자 씌워진 볏짚으로 낯설지만  봄이 되면 허브동산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허브 공원 사이사이에 놓인 벤취에는 사람들이 앚아 휴식과 함께 따사로운 겨울햇살을 즐기고 있다. 노부부들이  대부분이긴 하다.
이제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안산자락길을 자연스레 만난다.
난 요즘 안산을 걸으면 이 자락길보다는 길지 않으면서 더 숲길 냄새가 나는 초록길을 좋아한다.  안산자락길은 대부분 데크로 이루어져 있어 걷기에는 편하지만 한바퀴를 도는 전체 코스가 길어서 내게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지난번에 걸어보니 약간은 지루하기도 하다. 최근에야 지루한 길을 건너뛰는 중간 지름길을 알아 냈지만 아직은 그리 건너 뛰지는 못하였다.

 반면에 자락길 안쪽으로 다듬어진  초록길은 적당한 높낮이와 함께 대부분 오솔길로 이루어져 있어 편안하면서도 오솔길이 주는 포근함이 이 길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자작나무 숲.

아직은 겨울이라 앙상한 나무들이 대부분으로 겨울 특성의 삭막함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새봄이 되면 새로 돋는 숲을 상상망해도 보기에 좋다. 
이것은 내게도 희망이자 병마와 싸우는 내게 보이지 않는 큰힘을 준다.
작년 년말에 이사하면서 강추위에 노출되어 잎이 동상에 걸려 다 떨어진 고무나무에서 새순이 나오더니 이제는  애기손톱만한 잎이 돋아났다.  매일 아친 일어나자마자 거실 커틍을 걷어 맑은 새벽빛과 햇살을 거실로 향하게 한다.  이 해살이 지나는 곳에 놓인 고무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생명의 질김과 새잎이 주는 샐운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그리고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 속의 나를 그리면서 깊은 동질감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더 나아가 나와 대비되는 동질감으로 더 깊은 관심을 갖게되고 희망이 되어주은 것이다.
티비옆 한켠에 놓인 딸아이 친구가 선물한 행운목 역시 이제 막 새로운 잎을 터트리며 커가는 모습에 늘 딸아이의 얼굴을 겹쳐놓곤 한다.

걷는 내내 묵주기도를 바친다.

간절한 마음을 담고 하느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바쁨을 줄여내어 천천히 걷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마치 북한의 속도전처럼 빨리 걷는데 주안점을 주었는데 어느 순간 머리 속에 이게 올바른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나를 되돌아보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과 경이도 살피고
자연스레 내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내 자신의 비움과 낮아짐을 통해서
하느님이 주시는 은혜를 깨닫고 감사와 함께 내게 전하시는 말씀을 듣는  겸손히 듣는 소중한 시간으로
이 시간들이
하느님과 교감.소통의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오솔길을 걸으면서
더 겸손해지고
갈수록 감사해야할 게 너무나 많다는 걸
알게 해주신다.

걷다보니 어느새 아파트 입구다

산책겸 운동을 마치고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니 몸도 마음도 그대로 풀리는 걸 스스로 느낀다.

저녁에 아들 녀석이 식사 도중에 갑자기 제 방으로 가더니 결혼기념 축하 케이크를 식탁에 올려 놓는다.  알바를 마치고 현관을 들어설 때도 미처 보지 못했던 케익이다.
촛불까지 불을 밝혀 촛불이 질새라 사뿐사뿐 걸음까지...

식탁에 앉아 결혼기념으로 와인잔을 함께 건배는 했지만 와인을 입에 대지도 않는 나로 인해 홀로 마시는 와인에 약간은 우울해진 아내의 마음을 단숨에 풀어버리는 아들의 선물이었다.
아무리 주치의께서 술을 금하라 했지만 이런날 한모금 마시면서 분위기를 맞추어 주어야하는게 아니냐는 아내의 투정아닌 투정에 마치 꿀먹은 벙어리 마냥 있어야 했던 안타까운 내마음도 저절로 풀리는 듯 했다.
 함께하지 못한 딸아이에게 "케익옆에 네가 있어 좋단다"라고 마음을 담아 사진과 함께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발렌타인 데이' 이자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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