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글을 옮겼습니다.
저의 정신적 지주이신 대종사 법정스님의 글입니다.

“행복은 ‘이 다음’이 아닌 지금 순간에”
                                    법정스님

오늘은 중국에서 대체근무일이라 출근을 했습니다.

몇 가지 겹치는 일들로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었는데 제가 보관하는 자료집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잠시 스님을 다시 뵙는 기분으로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좋은 말씀이나 아름다운 글은 언제 다시 읽어도 새로이 숨을 쉬게 만들어 주는 마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내 글도 그런 마력이 조금은 묻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130428>

 

보성 동양다원


[펌글] “행복은 ‘이 다음’이 아닌 지금 순간에”

법정스님, 길상사 봄 정기법회 법문
 
법정스님이 새 봄을 맞아 불자들을 찾아왔다. 스님은 지난 16일 성북동 길상사(주지 덕조스님) 극락전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에서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순간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회에는 1200여명의 신도들이 함께했다. 법문내용을 정리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는지 못 지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 합니다. 날씨가 이렇게 화창하면 사람의 마음도 화창해집니다. 우리 몸 자체가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대 자연의 상태에 따라서 사람의 몸도 공감합니다. 온 천지간에 꽃입니다. 봄기운이 사방에 철철 넘치고 있습니다. 이런 때 마음이 여린 사람은 꽃멀미를 앓아요.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을 이룹니다. 꽃이 없는 봄을 상상해보십시오. 꽃이 없는 봄이 온다면 어두울 수밖에 없어요. 환경학자들은 미래에 이 다음 세기에 가서는 봄에 꽃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지금처럼 지구와 환경훼손이 지속되면 봄이 와도 꽃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꽃을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좋아합니다. 만약 꽃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우리들 마음에 꽃다운 요소가 깃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새삼스럽게 삶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기 때문에 꽃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꽃이 피는지 마는지, 새 잎이 돋아나는지 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은 무엇에 쫓겨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주적인 삶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다닙니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그어놓은 금과 같은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존재합니다. 특히 공동 생활에서는 그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멋대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공동체의 화합을 깨뜨립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분명 필요하고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인 시간은 그 성질이 달라요. 불안과 두려움은 이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서 부추김을 받는 거예요. 혼자 가만히 있는데, 불안해하다가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적인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서 입니다. 사람은 심리적인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타의적이에요. 외부에 의해서 정해져있습니다. 심리적인 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 있습니다. 시계가 시간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흔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세월이 약이겠지’라고 하는데, 그 말에 속지 마십시오. 시간 자체는 무슨 일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 망각이 있을 뿐이에요. 모진 맘을 먹었어도 세월이 지나가면 풀어집니다. 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초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유럽인들이 겪은 경험담입니다. 수피우화에도 실려 있습니다. 한 탐험가가 밀림을 뚫고 목적지로 향해 가고 있었는데, 짐을 운반해줄 세 사람의 원주민을 고용했어요. 짐도 많았고 길 안내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흘 동안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밀림을 뚫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합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짐꾼들은 자리에 주저앉아서 더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탐험가가 원주민에게 화를 내면서 예정된 시간에 목적지까지 꼭 도착해야 한다고 재촉을 해요. 짐꾼들은 꼼작도 하지 않습니다. 윽박지르고 달래도 보는데 짐꾼들은 도대체 요지부동이에요. 탐험가가 한 사람을 붙잡고 이유를 물어 봤습니다. “여태 잘 오다가 주저앉아 다시 길을 가려하지 않는 이유가 뭐요.” 원주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 않고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 우리 영혼이 여기까지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 이곳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쫓기듯이 사흘 동안 계속 왔기 때문에 영혼이 분리된 거예요. 그래서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탐험가의 재촉에 쫓기듯 길을 헤쳐 오느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왔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현대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속도와 효율성만 내세우다가 영혼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속도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시간에 쫓기거나 몹시 서두를 때, 재촉당할 때 스트레스를 받아요. 너무 빨리 움직이면 안정을 잃습니다. 그런 경험 다들 해보셨죠. 제한속도 시속 100km로 달려야 되는 구간을 시속 150km로 달리면 연료만 많이 소모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안정한 정서를 이루게 되요. 자기도 모르게 들뜨고 흥분되고 피곤이 가중돼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겁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고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속도라는게 그런 거예요. 속도와 효율성은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요소입니다.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신문사나 방송국 같이 마감시간이 있는 곳이 대표적입니다. 마감시간이라는 것이 아주 비인간적인겁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면서 일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감성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차분히 생각하면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계속 쫓기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맙니다. 원주민의 표현대로 무슨 일에나 영혼이 따르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삽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세상인데,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낳아 길러준 어머니를 살해하는 막된 이 세상에서, 삶의 기준을 어디다 두고 살아야하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안정감을 잃고 제정신을 잃고 바삐 쫓기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살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안정을 얻어야 합니다. 마음이 안정돼야 사람의 도리를 생각할 수 있고, 주위의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온갖 생각을 다 내려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복잡한 생각,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부려놓고 그냥 무심히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래야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이 틉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뤄야할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이 다음에 시골에 내려가 집이나 한 채 짓고 조용히 살면서 행복을 찾겠다”고 설계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이 다음에 이뤄야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것을 되돌아보세요. 행복을 누렸던 그 때는 한 순간이었어요.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있어요.

지금이 바로 그 시절입니다. 다른 때가 우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늘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어떤 특정한 기회에, 특정한 시간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흔히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을 행복이라고 알고 있어요.

자동차를 갖고 싶은 사람은 자동차, 5월 선거 때 한 자리 하고 싶은 마음, 자기 짝을 갖고 싶은 사람, 이런 욕망을 이루면 행복이라고 하고 욕망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것을 막상 갖고 나면 머지않아 시들해집니다. 그렇게 소중하던 물건이 시들해지고 쳐다보지도 않게 돼요.

그것은 모두 덧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늘 변할 수 있는 덧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일 수 없습니다. 부수적인 것은 상황에 따라 늘 변해요. 자동차, 가구, 권력 등 삶의 부수적인 것이지 본질이 아니에요. 부수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가치를 부여하지만 부수적인 것은 그렇게 가치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요구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선물이에요. 추구하거나 요구하게 되면 행복은 우리를 비껴갑니다. 지금 찬란한 봄날에 이 순간을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이 안에 행복은 깃들어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무엇에 쫓기듯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미쳐 따라올 수없도록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안정된 마음, 차분한 마음으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면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가꿔야 합니다. 나무들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저마다 마음껏 기량을 드러낸다면, 그 때 그곳에서 향기로운 삶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 잠재력을 묻어두지 말고 마음껏 발휘해서 세상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행복은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현재에 있다는 사실을 거듭 명심하길 바랍니다.

눈부신 봄날 활짝 문을 연 꽃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구체적으로 들으면서

 오늘 하루 이 자리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십시오.

[불교신문 2006.4.17] http://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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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만날 약속을 해놓고
기다리는 시간 내내 설레이고
약속 시간 보다 이른 시간에 만날 곳에 도착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더리던 그 행복하고 아릿했던 시간들울...

이런 가슴 설레이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겝니다.

그 누군가가 각자에게는 다 다르겠지만
그 마음만은 한결로 같았을고겁니다.

오늘 미사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강론을 마치시고
미사를 머칠 즈음에 하신 말씀이
여운처럼 내내 가슴에 남았습니다.

"미사 시간이 기다려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자는 말씀이...

당신이 신부가 되고서도 헌동안은
미사 시간이 마치 직업인 것 처럼 의무감이었는데

어느 날에서 부터 미사 시간이 기달려지더라고
그리고 그 마음에 비례헤서 미사를 봉헌할 때 더 은혜스럽더라고...

이런 고백과 함께
올해 부터는 우리 모두 이런 마음이 들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신부님도 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간절함 만큼
그 은혜는 당연히 비례할 것이라는 걸
나도 잘 알기에 은혜스러운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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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웃고 싶다.

올 한 해 2017년을 되돌아보면
내 생애 가장 웃음이 적었던
한 해였다는 생각으로...

왜 웃지 못하고
나를 가둬놓고 살았는지 
후회스럽다.
이 후회가 내내 맴돌고 있다.

다가오는  한 해  2018년은
지금 까지 살아온
그 어느 해 보다도
많이 웃는 한 해로
가장 많이 웃어야겠다.

웃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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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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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면
매일매일 관리할 때 훨씬 더 쉽다.
게으른 사람들은 뒤로 미루었다가
힌번에 처리하려고하는데
열중에 일곱여덟은 큰일을 치루게 된다.

지나가는 신입사원에게 물었다.

     "미안한데 몇살이지?"
     "스물네살입니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나를 감쌌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머문 생각은
     '내 나이 스물네살 때는'

이를 부정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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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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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와서 요즈음 며칠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기분입니다.

 

천진의 812 폭발 사고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업무상 일이라 밝힐 수 없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공장을 재가동하려고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뒤바뀌는 지침에 어떻게 일정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야할 지 난감한 상황으로  난감한 지경입니다. 더군다나 그 혼선중에서도 이달 말에 예정된 정기 연차보수를 2주일 정도 앞당겨 진행하기로 어렵사리 결정했는데 한국과 달리 작업 일정을 조금만 변경해도 원하는 협력업체를 구하기 힘들고 (한국은 여수 공장, 울산공단등 전문 보수업체가 밀집되어 있기에 쉬 수배가 가능한데 이곳은 기업은 많지만 전문 보수업체는 대기업 자체 공무업체이기에 드물고 실제 멀리 산재되어 있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어렵사리 수배하여 멀리 남쪽에서 오는 전문 업체도 천진이 위험해서 이번에는 작업 입찰을 아예 포기하기도 하고 막상 오늘 오기로 한 업체도 천진에 비가 오니 위험해서 갈 수 없다고 내알 오겠다고 하니 일정 관리도 어려워집니다. 실제 중국내에서도 보도가 통제된다 하여도 웨이신등 SNS 를 통해서 심각성을 알고 있나 봅니다.

한국에서는 는이런 사정을 잘 모르니... ...

 

어제 중국 보도를 보면 하늘을 나는 중국 국가 안전국장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과거 천진 상무 부시장으로서 이번 폭발사고의 인허가에 관련되어 책임질 일이 발생한게 아니냐고 중국 직원들 사이에서 얘기하는 게 들리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는 있나 봅니다. 얼마전 리거창 총리도 이 곳 텐진을 다녀갔고 그 전에는 시진핑 주석이 본 폭발사고 직후  812 폭발 사고 수습이 완료되면 반드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는데 이제 서서히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요즘 제 모습이 힘이 없어 보이고 얼굴 색이 않았나 봅니다.

평소의 내 모습과 많이 달랐는 지 마주치는 중국 직원들 마다 "加油 加油" 합니다.

이 "짜요짜요"는 우리말로 "힘내요" 내지는 "화이팅"과 같은데 지금은 "힘내요" 랍니다.

 

저도 나름 많은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내곤 합니다.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의 삶이란  어딜가나 위로할 일, 위로해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누군가와 가벼운 다툼, 누군가에게 상처받거나 실망할 때

그리고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실패와 낙망의 때,

저같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가슴 아픈 승진의 누락.  등등 등

그리고 젊을 때에는 취업 실패나 실연,

이런 다양한 일들로 내주변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일들이 생길 때 마다

상대의 눈치를 살피면서 내심 안절부절해 하면서도 마음을 전하는 위로를 건네곤 했지만

그 때를 되돌아 보면 내 조그마한 위로에 기대만큼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경험상 "위로는 우리에게 습관화 되지않은 칭찬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런 위로를 합니다.

"이제 다 괜찮아질 것이야"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고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실은 상대방 잘못"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앞으로는 다 잘 될거야"라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렇게 따스한 말들로 위로해 보려고 하지만,

제 경험상, 세상이 동화 속이나 소설 아니 영화 속의 세상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도  여유롭지도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위로 속에서도 그 위로 받을 일로 인하여 다가올 일들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에

실제 이런 위로들 조차 마음에 와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당사자에게는 현실이기에

긍정이나 낙관만으로는 험한 이 세상을 헤쳐 나아갈 수 없으니까...


얼마전 위로해야 해야 할 사람에게 "따스한 차 한잔"을 살며시 그 친구의 책상위에 놓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고 , 반대로 그 누군가가 내게 그리 커피 한잔을 놓고 갔을 때 비록 마실 여유가 없어 차갑게 식었어도 그 어떤 말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었음을 고백했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어떤게 가장 따스한 위로가 뭘까?"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거 내가 가장 위로 받고 싶을 때에 가장 큰 위로는 

그 위로는 바로 "어려울 때 가만히 저와 함께 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어깨를 맡기고서 맘껏 흐느껴 울수 있는 포근한 바로 그 어깨였던 것입니다.

 

벌써 몇년이 흘렀지만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대목이 생생합니다.

아들 녀석이 중3 후학기에 밤12 시 넘게 미술 입시를 준비하느라 엉덩이에 욕창이 나고 손마디에 보기 흉할 정도로 굳은 살이 박혀 가면서 입시 준비를 하더니

드디어 원하는 예고에 합격한 날 난 녀석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 내용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제 작은 산 하나를 넘었고 앞으로도 더 험한 산을 넘을 것인데 아빠는 너와 함께 그 산을 넘을 수는 없지만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 .뒤를 돌아보면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나를 보게 될 것이라" 고 ...

 

이제는 이 약속에 하나를 살짝 더 얹혀놓습니다.

물론 아들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떤 일이 너에게 있든,

 너의 곁에는 너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내가' 있을 거야" 라고

 

사람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힘든 자기와 함께하는 동반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죠.  가족은 흔를리더라도 늘 함께 해주니까요.

요즘 부자들의 가족을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같아 보이지만 ...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떠나 "나와 함께 한다" 는 그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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