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4. 22:30 책 이야기
정글같은 자본주의의 민낯을 중국에서 보다 - 조정래『정글만리』
본 글은 아래 sorce에서 그대로 옮겨왔슴을 밝혀둡니다.
출처: http://ch.yes24.com/Article/View/22908
정글같은 자본주의의 민낯을 중국에서 보다 - 조정래『정글만리』
지금, 당신은 미래와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정글만리』는 여전히 뜨겁고, 묵직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설이다. 이번에 그 목소리는 우리의 이웃에 있는 중국이 곧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며, 한국에게는 그것이 둘도 없는 기회이자 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경고다.
글 | 김슬기
조정래라는 이름은 늘 어떤 기대를 품게 만든다. 그것은 『태백산맥』 『아리랑』 등을 통해 시대의 기록자로 치열하게 분투해온 원로 작가가 내리치는 묵직한 죽비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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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인 ‘깨끗한 돈, 더러운 돈’이 열리는 공간은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의 국제공항이다. 한국에서 의료사고를 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도망치듯 중국으로 건너온 성형외과 의사 서하원과 그를 돕는 상사맨 전대광을 소개하는 도입부부터 작가는 중국의 민낱을 여지없이 드러내버린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들이 얼마나 멘쯔(체면)를 중시하는 나라이며, 국제공항조차 얼마나 시끌벅적한 소음으로 가득하며, 빈부간의 격차가 까마득한 나라인지를 묘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국인들이 품어온 중국에 관한 고정관념은 하나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작가는 중국이 우리보다 더 빠른 고속철을 손수 만들어내고, 100층이 넘는 최신식 고층 빌딩을 척척 지어올리며,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나라이며 우리나라 인구보다도 많은 2억명의 중산층을 지닌 경제대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어버린다.
조정래는 소설적 상상력을 협소하게 만든다며 1인칭 소설을 비판해온 작가다. 그의 소설은 늘 3인칭이다. 게다가 단 한명의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정글만리』는 장이 바뀔때마다 다른 인물을 하나씩 비춘다. 이 방대한 소설에서는 중국의 상사맨 전대광과 김현곤, 베이징대 학생인 송재형과 연인인 리옌링, 일본 상사원인 이토 히데오와 도요토미 아라키, 동양계 미국인 사업가 왕링링과 한국인 건축가 앤디 박, 중국의 신흥부자인 리옌링의 아버지 리완싱 등이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나간다.
그러니 한두줄로 요약할 수 있는 줄거리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전대광은 중국 비즈니스를 통해 단맛과 쓴맛을 모두 맛본다. 그의 사업적 파트너인 김현곤은 한국의 철강을 중국에 팔려고 애를 쓰는 가운데 일본인들과 수출의 길목마다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그리고 한일 양국이 철강을 수출하려는 회사는 미국계 기업인 왕링링의 골드 그룹이다. 소설에서 가장 굵직하고, 향후 전개를 궁금하게하는 이야기의 축이라면 이 한중일 삼국간의 철강 비즈니스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더 흥미진진한 지점은 송재형과 중국인 연인과 만들어가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다. 재형이 경제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국적이 다른 연인과의 결혼을 추진하면서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는 모습은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작가는 날렵하게 잽을 날리듯,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능수능란하게 넘나든다. 게다가 비즈니스전쟁에서 한국이 승리하지 않을까하는 뻔한 결말에의 기대도 여지없이 배반해버린다. 소설에서 비즈니스에 얽힌 이야기는 중국의 경제구조와 비즈니스의 관례를 낱낱이 들여다보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만 작동한다.
3권 1200여 쪽에 달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기진맥진하게 된다. 중간에 멈출 수 없을 만큼 흡인력이 있는 데다 정보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80여권의 중국 관련 서적을 읽고, 90권의 수첩을 다 채울 만큼 치밀한 취재를 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오쩌둥의 대장정부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이르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꿰뚫게 되고, 비상하는 중국경제의 이면을 조감하게 된다. 책의 표현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첩첩인 세상’인 중국의 현재를 그리기 위해 작가는 베이징, 상하이, 시안, 칭다오, 홍콩 등을 종횡무진 한다. 작가는 향후 중국을 대상으로한 사업의 아이디어도 한아름 던져준다. 중국의 명품시장과 식품, 화장품, 의료 시장 등의 성장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직장인 독자들을 솔깃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은 일종의 교양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전대광은 자신의 후임으로 온 후배를 앞에두고 이렇게 교육을 시킨다. “차 좋아해요?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할 사람이 중국차를 모른다는 것은 진시황을 모르고, 당나라 문화를 모르고, 중국인의 기질을 모르고, 중국의 풍습을 모르고, 중국의 현대사와 마오쩌둥을 모르고, 개혁개방과 덩샤오핑을 모르는 것과 똑같은 약점이오. 비즈니스만 요령껏 잘하면 됐지 골치 아프게 그런 걸 왜 다 알아야 하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오. 그런 것들을 다 아는 게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는 요령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여기는 서양이 아니라 중국이오.”
소설 속 중국은 공산주의라는 외형은 유지하고 있지만, 돈을 벌기위한 욕망에 있어선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지독한 자본주의 국가와 다름없이 묘사된다. 공안을 통해 철저하게 통제와 감시를 하지만 중국의 비즈니스는 꽌시를 통해 관료와 결탁하면 안될 것이 없고, 관료와 부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첩인 얼나이를 두고 있는 두 얼굴의 나라인 것이다. 3년 전 발표한 『허수아비춤』에 이어 이 책은 ‘자본주의 연작 소설’로 읽혔다. 작가는 “삶의 문제고, 곧 생존의 문제인 경제에 관해 어떻게 작가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념의 시대를 가로질러, 자본주의의 명암을 되짚어보는 시대를 맞아 작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농민공의 이야기는 유난히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이 남자는 몸이 부서져라 공사현장에서 일하고도 우리 돈으로 40만원 남짓인 2000위안을 번다. 평생 불구가 될 큰 사고를 당하지만 그는 치료를 받기는커녕, 일터에서 내쫒기고 협박까지 당하고 만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는 이런 어두운 이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는 그런 소외된 그늘조차 세심하게 조명해준다.
돌아보면 조정래의 소설은 늘 한결 같았다.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웅숭깊은 맛이 있었다. 늘 꼿꼿한 모습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책을 통해 시대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이 발견한 답변을 들려주곤 했다. 소설이 짧고 가벼워지는 시대가 됐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타협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책장을 덮으면서 어느덧 노작가의 다음 질문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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