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1. 23:07 차한잔 나누면서
에스키모의 막대기 .... 카타르시스
일들이 풀리지 않아 집에서 편하게 누워 쉬고 싶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요즘은 회사 일로 그 '간혹'이 '자주'로 바뀌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아무 일 없이 빈둥빈둥 쉬고나면 도리어 더 피곤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도리어 가볍게 어디 여행을 떠나거나, 가벼운 베낭을 짊어지고서 가까운 산에 오르고 나면
몸은 피곤한 듯한데 도리어 정신은 맑아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쉬고 싶다는 것은 몸과 마음으로 여러 신호로 스스로 보내게 됩니다.
일단 몸이 피곤하여 쉬고 싶을 때는 잠자라는 신호를 보내어 잠을 불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날은 조금 일찍 잠을 청하여 밀린 잠을 자고 나면 몸은 바로 개운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신적 피로는 좀 누워 있거나 잠을 잔다고 해서 그 피로가 쉽게 풀리지는 않습니다.
정신적 피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정화"가 필요한데 이는 게인 마다 푸는 방법이 다릅니다.
일조으이 개인만의 비법인셈이지요.
그러나 이 "정화"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즉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제 개인적으로 정신적 피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는 기도입니다.
아주 오래전 개신교에서 신앙 생활에 열심일 때에는
아침 일찍 부터 저녁 늦게 까지 교회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무언가가 내게 필요하면 (특히 정신적인 가난으로 ) 기도 제목을 삼아
저녁 늦은 시간 (학교나 직장에서 집으로 귀가할 때) 교회를 들러 기도실에서 두손을 모으곤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속칭 "기도발"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하면 정말 빠른 응답을 받았으니까.
나중에야 그 빠름이 가장 적당한 때의 응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실 기도라는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지요.
내가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내 말만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전하는 말씀을 듣는게 더 소중하기에.
그 땐 제 귀가 열려이ㅆ었는데 요즘은 좀 귀가 어두워졌나 봅니다.
제가 즐기는 두번째 정신적 피로를 푸는 방법은 산에 오르는 것 입니다.
혼자가 되든, 누군가와 일행으로 함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산에 서서히 오르면서 정상을 바라보는 때 보다는 스스로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볼 때가 좋습니다.
정상이 좋은 이유는 더 멀리, 더 길게 내가 지나온 길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산에 오를 때 보면 실상 내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 것들을 떠올리거나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정상에 올랐다가 산에서 내려와 생각해보면
어느새 그 고민에서 자유스러워 있는 나를 보곤 합니다.
아마 이게 걸으면서 자연과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자체가 내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 것이겠지요
그래서 나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정신적 피로가 풀린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여의고는 간혹 당신을 떠올리며 소리없이 울어볼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있고, 가장이다보니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엔 상당히 어려운 방법이긴 한데.
그래도 누군가의 고백처럼 시원스레 울고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 로
제 스스로 자유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기에 이 말에 일부 공감합니다.
어떤 이는 친한 친구 또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고나면 좋아진다고도 합니다.
저는 제 성격상 위 방법을 좋아하지도 사용해 보지도 않았지만, 여성분들은 즐겨 사용하겠지요.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카타르시스, 정화 " 비결이 있을 듯 합니다.
아래 에스키모인들은 혹한의 추위에서 공생하는 벙의 하나로 아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저도 걸으면서 평안이 찾아오는 지점에 막대기 하나 꽂아놓고서 되돌아 와야 겠습니다.
되돌아 온다는 것은 평안으로, 문제에서 자유스러우j졌다는 의미이기도 할테니까...
저도 간혹 이렇게 걸을 대가 있습니다. 때로는 좁은 방을 수십번 넘께 왔다갔다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걷는 것도 똑같은 효과가 있겠지요.
여러가지 방법 중에 일단 두 손을 모아보고, 걸어도 보고
아니 걸으면서 기도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더 빨라질 것도 같습니다. ㅎㅎㅎㅎ
<131101>
에스키모의 막대기
에스키모는 자기 내부의 슬폼, 걱정, 분노가 밀려올 때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되돌아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서는 바로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다.
살다가 또 화가 나 어쩔 줄 모르고 걷기 시작할 때,
이전에 꽂아둔 막대기를 발견한다면 요즘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고,
그 막대기를 볼 수 없다면 그래로 견딜 만하다는 뜻이 된다.
휴식은 내 삶의 막대기를 꽂는 일이다.
내 안의 나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움이 찾아올때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오는 일이다.
*휴식(休息) 의 한자적 의미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근무하면서 표음문자의 장점에 무릎믈 탁 하고 칠 정도로
그의미의 정확성에 깜짝 놀래는 경우가 왕왕 있답니다.
쉴휴 休 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양이다.
쉴식 息 은 자신自의 마음心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무에 기대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휴식이다.
즉 나무에 기대어 내가 나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김정우 노는만큼 성공한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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