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 출근해서 잠시 인터넷 서핑중에 만난 시입니다.

난 이 시인을 잘 모르지만 일단 시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후 세시"가 주는 이미지는 "나른함"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나른함을 깨려고 잠시 창가로 다가갔는데 때 마침 비가 내린다면

어느 누구나 그 내리는 비를 보면서 여러가지 회상에 잠길듯 합니다.

 

시 내용은 그런 느낌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듯합니다.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박제영

 

그리움이란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니
빗속에 누군가 그립다면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가 내린다, 그대 부디, 조심하기를
심하게 젖으면, 젖어들면, 허물어지는 법이니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마침내 무너진 당신, 견인되고 있는 당신

한때는 ‘나’이기도 했던 당신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비가 내리는 오후 세 시
나를 견인하고 있는 당신

 


■ 박제영 시인은
강원도 춘천 출생. 1990년 고대문화상 시 부문 수상.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 <소통의 월요 시 편지> <뜻밖에> 등이 있다. 현재 강원도개발공사 사업지원 팀장.

‘그리움이란’ 말은 마치 밖에 쌓아놓은 소금가마 같다. 비가 오면 여지없이 젖어 녹아 없어 져 버릴…. 젖지 않도록 옮겨야만 하는, 몸과 마음만 바빠지는, 결국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지고’마는.비가 오시는 날은 일단 그래서 마음 단속부터 할 일이다. 모든 것을 걸어 잠그고 새지 않게, 젖지 않게 하지만 ‘심하게 젖으면’ 어쩔 수 없이 ‘허물어지는 법이니’ 그 난감함은 감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될 뿐이다

비가 내리는’ 시간이 비단 ‘오후 세시’이겠는가. 저마다의 가슴에 내리고 젖는, 결국엔 무너지는 그런 때가…. 다행인 것은 그런 나를 ‘견인하고 있는 당신’이 있으므로 그나마 행복이랄까.

  <이기철 시인>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님의 침묵 만해 한용운  (0) 2013.10.16
흔들리는 꽃 도종환  (0) 2013.10.15
然後(연후에, 시간이 지나서야) 진계유  (0) 2013.10.13
인생 김광섭  (0) 2013.10.10
걷는다는 것 장옥관  (0) 2013.10.10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이 한시를 보면 마치 큰 스님이 열반에 드실 때 읊는 열반송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 시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들지 않았나 하는데 요즘처럼 바쁘고 빠른세태에

한번쯤은 되돌아보는 좋은 시가 아닐까 합니다.

 

 

    然後(시간이 지나서야)

 

                                         진계유(중국 명나라,1558-1639)

 

靜坐然後知 平日之氣浮 정좌연후지 평일지기부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소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겠네

 

守默然後知 平日之言燥 수묵연후지 평일지언조

침묵을 지킨 뒤에야 평소 지난날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겠네

 

省事然後知 平日之費閒 성사연후지 평일지비한

일을 뒤돌아 본 뒤에야 평소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겠네

 

閉戶然後知 平日之交濫 폐호연후지 평일지교람

문을 닫아 건 뒤에야 평소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겠네

 

寡慾然後知 平日之病多 과욕연후지 평일지병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평소 잘못이 많았음을 알겠네

 

近情然後知 平日之念刻 근정연후지 평일지념각

마음을 쏟은 후에야 평소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겠네

 

 

명나라 진계유(1558-1639)

 

명나라 말기 송강부(松江府) 화정(華亭) 사람. 자는 중순(仲醇)이고, 호는 미공(眉公) 또는 미공(麋公)이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고, 고아(高雅)함을 숭상했다. 젊어서 동기창(董其昌), 왕형(王衡)과 함께 명성을 나란히 했다. 『금병매(金甁梅)』를 지은 왕세정(王世貞)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9살 때 유자(儒者)의 의관을 태워 버리고 관료의 길을 포기한 뒤 소곤산(小昆山) 남쪽에 은거했다. 나중에 동사산(東佘山)에 살면서 저술에 전념했다.

 

시문에 뛰어났고, 단한소사(短翰小詞)가 모두 풍치가 있었다. 글씨는 소식(蘇軾)과 미불(米芾)을 배웠고, 그림에도 능했다. 동기창이 사관(詞館)으로 오랫동안 있으면서 서화로 천하에 오묘했지만 항상 그에 대한 칭찬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불렸지만 모두 병으로 거절했다. 82살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풍류와 자유로운 문필생활로 일생을 보냈다. 저서에 『보안당비급(寶顔堂秘笈)』과 『미공전집(眉公全集)』이 있다.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들리는 꽃 도종환  (0) 2013.10.15
비 내리는 오후 세시 박제영  (0) 2013.10.14
인생 김광섭  (0) 2013.10.10
걷는다는 것 장옥관  (0) 2013.10.10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0) 2013.10.10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예전 차 모임에서 보이차를 즐긴 다음 모임의 최 연장자께서 끝 마무리로군자차(君子茶)"를 선물했다.


군자차라고 해서 특별한 차는 아니고, 맹탕으로 끓인 물을 뜻하는 말(일명 백비탕(白沸湯) 또는 백탕(白湯)을 일컫는 것인데)로 마지막 남은 향을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 맹탕이므로 맛과 향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데도 다른 맛과 향이 섞이지 않기에 신기하게 향과 맛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 차모임의 분위기와 정담 속 다담의 향기가 온전히 전해져서 사람의 마음에 느껴지는 차가 아닐까 한다. 이상하게도 우리 모임에서는 대부분 가장 나이드신 어르신이 내려 권하곤 했는데 어느 새 나도 그럴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애초 군자란  학문과 덕이 높고 행실이 바르며 품위를 갖춘 이를 뜻하는데 이 맹탕으로 끓인 물, 잡맛이 완전히 배제된 아주 순수한 물을 군자에 비유했다는 것은 군자의 성품이 그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다도(茶道)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군자차 중에 가장 맛있는 군자차는 아마도 보이차를 즐긴 다음 끝 마무리로 마시는 군자차야말로 황홀하기 이를 데 없는 차이다. 군자차를 마시는 순간 그때까지 마셨던 보이차의 참맛과 향기 그리고 기운이 고스란히 입 속에서 되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그 여운이 온몸으로 번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 와서 관공서에 들릴 일이 간혹 아주 간혹 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자리이지만 그 사무실에 들리면녹차를 내어놓거나 때로는 이 맹물 군자차를 내어 놓습니다. 얙를 나누면서 한잔 더 청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맹물을 내어놓으면 실례가 될 법도 한데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권합니다.

 

처음에 이를 접할 때에는 이런 문화가 참 이상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낯설지 않고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차가 각양각색이다보니 그 차를 다 맞추어 내어 놓을 수도 없고 또  예의를 차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아마 경제적인 이유는 덤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회사 역시 외부 손님들이 방문하면 차 또는 커피를 권하기도 하지만 중국 손님에게는 때대로 이 군자차를 내어 놓기도 합니다.

 

제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군자차는

언젠가 여수에서 주말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담소를 나누면서 딸 아이가 내린 차 맛에 취했다가 마무리로 내린 군자차 였는데....

분위기만 느껴도 이미 취해버릴 그런 날이었으니 얼마나 맛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예쁜 딸아이가 고운 손으로 ....

 

올해 말쯤에는 그 군자차 다시 맛볼 수 있기를 기다려 봅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취합니다.

 

                        <131012>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며, 눈은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나를 위한 하루 선물’  존 러스킨)

 

 
비단 날씨뿐이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환경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기회와 감사의 소재가 되고,
또 누군가에는 투정과 불만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즉, 어떤 동일한 문제도

누군가에게는 디딤돌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스스로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은 감사와 축복, 그리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2013. 10. 10. 21:46 좋아하는 시

인생 김광섭

 

 

 

몇 날 동안 늦은 퇴근이 이어집니다.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듯 한데 ..아직은 모릅니다.

오늘도 중국 직원들과 근 다섯시간동안 열띤 토론을 합니다.

의사결정을 하고 업무분장을 하고

늦은 퇴근에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습니다.

곧 좋은  결과로 얻어지기를 고대합니다.

 

김광섭 시인의 시는 담백해서 좋습니다.

그 흔한 미사여구 없이 사람을 읽어내리는 마술적 언어사입니다.

이건 제 생각이니 아니라고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이제는 아래 "칠십"이라는 단어가 바뀌어야 하겠지만.

 

다시 읽어봐도 좋은 시입니다.

내가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쏘옥 옮겨놓았습니다.

                      <131010>

 

 

 

   인생

                               - 김광섭

 

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무자비한 

칠십 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 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 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고 내 주었습니다. 

 

 

 

'성북동 비둘기'를 쓴 이산 김광섭의 시입니다.

요즘 들어 마음이 스산하니 마음에 와 닿는 시입니다.

 

운동하러 잠시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방안에 있었습니다.

그동안 미뤄 두었던 밀린 책도 한 권 진하게 읽었고

 

빨래도 하고

습기에 눅눅한 방에 보일러 불도 지펴서 습기도 제거하고 나니

제법 방바닥도 뾰송뽀송 해졌습니다.

그런 만큼 내 마음도 뽀송보송해진 기분입니다.

 

다시 책 한권 빼어 넣습니다.

오랫만에 오늘은 밤을 새워 이 책을 다 읽고 잘까 합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 전쟁처럼 죽을둥 말둥 산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치열한 삶도 아닌 것이 ... ...

살짝 나를 비웃어 봅니다.

그 비웃음이 나를 도리어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가지로 무더운 날 이었습니다.

 

          <110716>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블로그 이미지
저의 일상을 통해 사람사는 이야기와 함께, 항암 관련 투병기록 및 관련 정보 공유를 통해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한글사랑(다향)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5.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