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무슨 영화 제목처럼 그럴듯 하다.

그러나 실 내용은 오늘 점심 식사하면서 느낀 점을 옮겨 볼까합니다.

 

회사 구내 식당은 중찬과 한찬이 나옵니다.

물론 중찬은 중국식이고 한찬은 한국식 반찬을 의미하는데

중국 직원들도 의외로 한국식을 많이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건강식이라는 이유를 대곤 하는데

제가 봐도 건강식이 맞기는 맞는 것 같습니다.

일단 한국 식단은 기름으로 하는 요리가 드물고 짜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건강식이라는 인식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출퇴근시 운전해 주는 기사도 간혹 식사를 하면서 (어쩌다 한국 식당에 들려서 먹을 때)

한국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건강식이지 않느냐고 대답하면서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머근ㄴ 것 역시 기회식품이니 제 나라 음식만 하겠습니까?

 

얘기가 약간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는 했는데

배식을 하면서 원래 내 자신이 왼손잡이이기에 왼손으로 밥을 푸고 반찬을 덜어내는데

생각보다는 훨씬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미 오십년 동안 오른손잡이로 살아왔으니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그래도 현관 문을 여닫거나 할때는 어쩔 수 없는 왼손잡이로 많은 불편함을 느끼곤 합니다. 

오른손 위주로 문의 여닫음 방식이 되어 있기에 반대편과 서로 부딪히거나

아니면 왼손으로 열게 되면 (특히 문을 잡아당기게 되어 있을 때에) 더 심하게 불편합니다.  

물론 가위질을 하거나 칼로 무언가를 자를 때에도 역시...

중고등학교 시절에  농촌 일손 돕기 일환으로 보리베기나 벼베기 행사를 가면 저는 낫질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낫들이 오른낫이어서 왼손잡이가 낫질을 하면 베기도 힘들고 간혹 미끌려 다치기도 하기에...

이 때 낫도 오른 낫, 왼낫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어렷을 때 힘들게 배운 오른손잡이 ...

이제는 대부분 생활을 오른손으로 합니다. 글 쓰는것. 숟가락, 젓가락질등...

 

그래도 본능적인 왼손잡입니다.

무언가를 던지건 집을 때 자연스레 왼손으로 하게 되고

위험한 상황에서 먼저 방어하게 되는 손 역시 왼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전 히틀러 지배하에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잘  살다가도

위급상황에서는 유대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오기에 들켰다고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저는 전라도 광주 사람입니다.

서울에 살면서 사투리를 안쓰려 노력하고 일견 서울 사람처럼 말을 하는데도

긴급한 상황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오메"라는 말이 불숙 튀어 나오군  합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대부분 저를 아는 사람들은 굉장히 차분하고 부드럽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운전을 하거나 (그렇다고 난폭운전을 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차선을 자주 바꾸죠

물론 전제 조건은 안전하다고 여길 때에만 추월을 하는 습관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골프를 칠 때 스윙의 스피드를 보면 그야말로 전광석화라고 말합니다.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두 가지에서 성격이 엄청 급함을 알게 되어

많은 이들이 교육에 의한 "위장형 차분맨"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제 스스로 진단을 해보면 마음에 안드는 일이나 급하게 서두를러야하는 일을 만나면

상상 이상으로 급하게 반응하고 못 견뎌하는 것을 보면 정말 제 성질이 급하긴 급하나 봅니다..

사실 제 아버지도 저와 비슷하셨는데 그 분 성격 급한 걸 저만 알거든요, 후후후  

나이들어 그런 모습을 더 꽁꽁 싸메었던 당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지만

그래도 간혹 아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이시기도 하셨었는데

당신의 사람 냄새와 함께 더 아버지로 다가왔었다는 것을 이제야 말해 봅니다.

 

세상사는 것도 이러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 처럼 살다가 ...

 

아니긍정적으로 보면 깊숙히 감추어 준 숨은 실력과 진가를,,,,

어려울 때 그 사람의 본 실력과 진면목이 드러나,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듯이.

요즘이 내게 있어 그러한 때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천상 난 왼손잡이입니다.

 

             <130428>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천진으로 와서 첫번째 맞이하는 아버지 기일이었습니다.

주위 사람 아무에게도 '오늘이 아버지 기일'이라고 내 마음을 털어 놓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항이 아니기에 ... .

 

어머니께 전화를 넣었습니다.

생각보다는 일찍 제사를 마쳐서 어머니와 아내하고만 통화를 했습니다.

 

돌아보니 오늘은 우리 가족 네명이 각자 홀로 자는 날입니다.

 

나는 중국 천진.

아내는 광주 본가.

아들은 부산 (군 복무).

딸은 서울 집.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를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면서

임종 순간부터 장례를 마치는 순간까지 한번도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고

남들에게 눈물 한번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군댔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를 지켜주는 보루였던 아버지 이셨는데

당신을 보내는 슬픔이 "천붕"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인데도

 

내가 눈물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첫째  아버지의 영혼이 나를 지키시는데 내가 울면 당신도 슬퍼하실까 봐서

둘째  내가 무너지면 우리 가족 다 무너질 것같아서 나라도 중심을 잡아야 하기에

        (저는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데 제가 맨 위였기에 더욱 더 책임감으로)

세번째 당신이 내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당신을 보내고 지금까지 세번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첫번째는 삼오제를 지내면서 마지막 인사를 올릴 때였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당신을 보고 싶을 때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으로 다가왔기에

내 삶의 중심이셨던 당신이 안계시는 때 감당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일로 내 가슴이 산산히 부서지는 생채기로 긴 흉터를 냈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 

 

두번째는 회사일로 여러가지 어려운 일이 겹쳐서 광주 본가가는 길에 산소에 들려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께서 아신 것입니다. 내가 산소에 들려 소리내어 울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 혼자만의 비밀이었는데

 

사실 광주 본가 갈 때 가는 도중에 산소가 있기에 자주 아버지 산소에 들렸는데 그날 만큼은 어려움으로 가슴이 아릿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왈 "무덤에서 우는 게 아니란다"라는 말씀을 새겨 그 이후에는 산소에 들러 봉분 주위를 살피고 어루만져도 울지는 않습니다.  

 

세번째는 바로 오늘입니다.

멀리 천진에서 당신을 기억하면서 괜히 울음이 났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으니 소리내어 울어도 눈치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편합니까?

 

이제 조금 안정이 되어 이렇게 반추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난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을 기릴 수 있어 그나마 행복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정말 많이 보고싶습니다.

오늘 저녁 꿈에서라도 많이 보고싶은 날입니다.

 

                  <130426>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인터넷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한평생 살면서 웃는 시간은 고작해야 일곱시간 정도라고 한다.

가장 많이 웃을 때가 갓난아이 시절이고 나이들수록 그 비율이 줄어든다고 하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예전에 기업이나 회사에서 강의를 할 때 내 단골 첫번째 Ice Break가 "1분 동안 웃기"였다.

그냥 들을 때는 아주 쉬운 주문 같지만 막상 1분 동안 웃을려면 보통 힘이드는 게 아니다.

그래 가장 잘 웃는 이에게 문화 상품권 한 장을 선물로 주고 다시 시작하면 웃음소리가 더 크고 더 길어진다.

이 때 가장 적게 웃는 사람을 벌칙으로 앞으로 나와서 웃게 한다고 하면 온 강의실이 뒤집어졋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한바탕 웃고 강의를 시작하면 강의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몰입도가 높아졌다. 

아마도 웃으면서 엔돌핀이 나와서 개개인들이 긴장을 풀다보니 강의장 분윅기가 훨씬 부드러워지고

수강자들도 얼굴 표장이 밝아지면서 강의에 대한 몰입도가 증가되는 것이다.

 

얼마전 아내와 통화중에 "개콘..개그 콘서트"를 보고있다고 말하자

유치해서 자기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예전부터 개그 콘서트(일명 개콘) 팬이다.

서울에서도 개그 콘서트 시간에는 딸아이와 함께 둘이서 보면서 키득이면

아내는 우리 두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우리 둘이는 아내를 그렇게 쳐다 보았다.

아들 녀석은 게임때문인지, 아내와 같은 생각으로 보지 않는 지는 잘 모르지만 간혹 보는 것을 보면 ...

 

난 유치해도 좋다.  내가 마음놓고 웃을 수만 있다면.

중국에서는 IPTV로 TV를 보는데 거의 TV를 안보지만 이 개콘 시간에는 시간을 내어 꼭 본다.

이 곳 중국에 와서 웃는 시간이 없다.

중국 사람들 끼리 얘기하면서 웃는데 나는 멍하니 그들의 얼굴만 맨숭맨숭 쳐다보기 일쑤다.

얼마전 그들이 말하는 것에 살짝 들려 웃으니 함께 웃고 나서 오랫만에 웃는다는 말을 했다.

이래서 언어의 외로움을 빨리 깨트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커지는 거다.

많이 웃자.

 

예전 서울 본사 근무할 때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화장실 거울 앞에서 '씨익"하고 웃었다.

거울 속 낯선 사내가 웃는다. 나도 도 웃어주었다.

그러면 나를 짓누르던 그 어려움과 힘든 일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유치해도 웃을 수 있다면 대환영이다.

 

지금 이 시간 한번 활짝 웃어보세요.
좋은일만 생기실  것입니다.


 

               <130423>

 

--* 웃으면 좋은 이유 *--
 
 웃음은 신이 인간에게만 내린 축복이라고 합니다.
 동물들은 인간에 비해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에
 이런 능력이 없다는 걸 보면은요....*
 
 우리 몸을 지배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두 가지 자율신경이 있는데
 놀람.불안.초조.짜증.등은 교감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 심장을 상하게 하고  
 반면 웃음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며 튼튼하게 해주고
 우리 몸 상태를 편안하게 해준다고 해요.
 
 스웨덴의 노먼 커즌즈 박사는 사람이 10분간 통쾌하게 웃으면
 두 시간 동안 고통 없이 편안한 잠을 잘수 있다고 밝혔답니다.
 또 미국의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나눠주는"정신건강"이라는 책자에서
 [웃음은 내적 조깅]이라는 속담을 인용해   웃음은 순환기를 깨끗히 하고
 소화기관을 자극하며 혈압을 내려 준다고도 합니다.*
 
 또 미국 스탠포드대 월리엄 프라이 박사는 사람이 한바탕 크게 웃을 때
 우리 몸속의 650개 근육 중 231개 근육이 움직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설명한 만큼

 크게 웃으면 웃을수록 상체는 물론 위장 가슴 근육 심장까지 움직이게 만들어
 상당한  운동효과가 있다는 분석에 따라 웃을때는 배꼽을 잡고 크게 웃는게  좋답니다.*

  ***********************************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어느 날 형이 어린 레오 톨스토이에게 단순한 과제를 내주었다. 구석으로 가서 백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과제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백곰을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아주 쉬워보였지만 어린 톨스토이는 몇 시간이고 구석에 처박혀 불쑥불쑥 떠오르는 백곰 생각을 지우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백곰을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백곰이 더 많이 나타나 일개 대대를 이루어 어린 톨스토이의 머릿속에 진군했다. 톨스토이는 결국 과제를 포기했다고 한다.

 

  '너브 -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힘' (테일러 클락 지음, 문희경 옮김) 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언젠가 잠이 오질 않아서 잠을 재촉할려고 일부터 세다가 밤을 고박 샌 적이 있었다.

애초에 자이 목적이었는데 잠에 들지 못하고 도리어 밤을 꼬박 샌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통제'하고 '억제'하려 할수록 더 커진다고 한다.
그래서 선승들은 화두를 붙잡고 선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 화두에서 자유로와지기 위헤서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하버드대의 심리학자인 대니얼 웨그너가 심리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5분 동안 백곰 생각이 날 때마다 종을 울리게 했지요.
한 집단은 '절대' 백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다른 집단에는 '오직' 백곰만 생각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백곰을 절대 생각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그룹이 백곰만 생각하라는 그룹보다 더 자주 종을 울렸습니다. 어린 톨스토이의 백곰 에피소드도 같은 맥락입니다. .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은 불안,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강박. 이런 자신과의 심리 싸움에서는 '마음의 덫'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차단하고 숨기려해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골프스코어가 형편없습니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서 예전 잘 될 때의 스코어를 기대한다는 게 어불성설이기는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욕심이기도 합니다.  골프 스코어가 좋은 날에는 돌아보면 내가 어지 쳤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되는 날은 안되는 이유도 많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많은 날입니다. 그립은 어떻게 하고 백스윙은 이렇게 해야지 팔로우는 어떻게 이 때 팔꿈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서 도리어 집중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잘된 날은 내 스윙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자연스러웠다는 얘기이자 마음이 덫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

 

습관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러워졌다는 점에서 보면 골프나 어떤 일이나  얽메이지 않도록 이겨내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고 심리적 문제이니 굉장히 어려운이기는 합니다.

지금 내가 빠져 있는 마음의 덫은 무엇일가요?

 

                  <130420>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80년대 말,  학교를 졸업하고 여수로 내려왔씁니다. 회사에 입사를 한 것이지요.


그 당시에는 결혼 전이라 여수에 살면서도 매주 ㅌ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자 마자  광주 본가로 바쁘게 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읽고 싶은 책이 있어 광주 충장로의 큰 서점엘 들렸는데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삼성당에서 발행한 문고판 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이제 그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주 들리던 나라 서적 (수년 전에 없어졌습니다만 광주에서 가장 비싼 땅이었고 광주 젊은이 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서 구할 수 없어 그 근처의 충장서럼까지 들렸음에도 구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지리적으로대부분 지나치는 곳이기에) "대호서림"엘 들렸습니다.
다행이 그 곳에서 그 책을 구할 수 있었는데 한 직원 찾다가 포기한 것을 다른 여직원이 2층 창고에서 어렵사리 찾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먼지와 함께 찾아낸 것을 보고 그 여직원의 상냥한 미소와 함께 힘들게 찾아준 친절에 정말 감동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정가로 삼백원이었는데..  .


그 직원의 친절함에 대한 인상으로 여수로 내려와서 며칠 뒤에 엽서로 그 서점으로 감사의 글을 보냈습니다.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우연히 그 곳에 다시 들렸는데 제가 보낸 그 엽서가  서점의 소식 게시판에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별로 잘 쓴 글씨체도 아니고  의미있는 내용도 아니었는데 속으로 놀랬습니다. ..그래서 그 엽서를 읽으면서 혼잣말로 "아 내가 보낸 엽서인데" 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직원이 듣고서 이 엽서를 보내신 분 맞냐고 그래서 빙그레 웃었더니 저를 사장님께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이 엽서를 받으신 사장님께서 그 여직원과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도 기억이 없다고 해서  혹시 엽서의 주인을 알게 되면 자신에게 안내를 해달라고 이야기 하셨나 봅니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서점 개업이래 처음 받은 감사의 글이었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엽서를 받은 날 전 직원에게 감사의 표시로 회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따스한 차 한잔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전 직원들의 친절함이 더 커지고 도서 판매량도 더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덤으로 제게는 특별히 도서 구매시 정가의 20 % 할인의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교보문고 회원이자 여수 진남서점의 우대 회원임에도 자연스레 그 서점에서 많은 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책들은 지금은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결혼하면서 제가 가진 책들을 용달차로 광주서 여수로 가져왔는 데 용달차 운전 기사분이 이렇게 별도로 책을 운반한 경우에는 처음 봤다면서 이 책을 다 읽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 후 서울로 이사오면서 그 책더미들을 다 버리게 되었습니다. (도서관 기증을 알아 보았는데 도서관에 기증할 수 있는 도서는 만 2년 이내 도서만 가능하다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서울에서도 서너번 이사하면서 줄이고 줄여서 그 많던 책들이 이제는 보기에도 단출합니다.

 

중국으로 오면서 가져온 책들도 아직 박스채로 놓여있는데 어느 정도 중국어에 익숙(?)해 지면 다시 손에 들어보려고 합니다.  내스스로도 "그리 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들지만....

갑자기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엊그제 영업사원과 얘기하다가 고객응대시 친절함이 중요하다는 얘기로 예를 들다가  생각이 난 것입니다.

 

오늘 중국 직원 (조선족) 누군가와 얘기하다가 중국어로 "삼국지 연의"를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는 내용이기에 좀 더 쉽게 접근하지 않을까하지만... 이렇게 당치도 않는 욕심을 내어보는 하루입니다.

산에 가는 날인데 출근으로 못가고 넋두리 비슷하게....

 

                   <130420>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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