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231 광주 무등산>

 

일 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갑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자신 나이의 앞자리 숫자와 같이

그 숫자의 햇수가 일년처럼 지나간다더니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나간 일년을 반성하면서

문득 아래 영화 주인공 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참 많이 부족한 한해였습니다.

내년에는 주인공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살려고 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따른 구체적인인 실행계획을 세워서

꼭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간절함을 담아서.

 

내일 회사는 종무식을 합니다.

모레는 광주 본가에 가는 김에 무등산을 오를까 합니다.

예년 첨 몇가지 목표를 세우고 내려오려고 합니다.

아이들도 광주 할머니 댁에 왔다가  여수 들러 서울가는 일정에

조금은 마음이 설레입니다.

            

                     <091229> 

 

 

2000년 1월 10일의 글에서


우리 아이들은 맵다고 박하사탕을 싫어합니다.
최근들어 다소 누그러졌지만 여전합니다.

작년 12월 초 부터
새천년이 되면 꼭 박하사탕을 심야영화로
아내랑 보고싶었는데 도통 광주 갈 기회가 없습니다.
여수서도 하는 가는 모르지만..

저지난 주엔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맞질 않았답니다.

 

주인공이 사십대 연기를 위해서
한달간 매일 소주 한병반을 마셨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잘 아실겁니다.
과음하면 그 다음날 얼굴이 ...

우리 설씨 아저씨는 삼십대 초반인데
극중 주인공 나이를 실감있게 표현하기위해.

 

여담입니다.
예전에 '아마데우스'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이 베를린 필 하모니와 그영화를 찍었답니다.
첫 연주 촬영장 얘기입니다.
그 자존심 강한 연주자들이 대중영화를 찍는 것에 불만인데다
새파란 주인공의 지휘를 받으니 ...
당연히 성의 없는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주인공이 연주를 중단시키고
성의없이 연주한 바이올린의 틀린 음을 정확히 지적했답니다.
그 때부터 촬영은 일사천리로.
그 주인공은 일년반 동안 오로지 그 영화에 연주될
곡만 최소 200 번 이상 반복해 들었다 하더군요.

 

얘기가 길어 졌습니다.

이번주에는 가능할련지...

참고로 다음글을 보니 박하사탕 영화를 보았었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어제는 모처럼 집에서 PC 로 영화 두변을 보았다.

 

그 중 하나가 "완득이"였다,. 

영화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나를 사로 잡은 것은 내용보다는 한 장면이였다.

 

완득이가 술에 취한 아버지를 업고 가는 장면이었는데

난 아버지를 업어 본 기억이 없다.

그 대목에서 나를 이끈 내 기억은  아버지와 함께 동네 목욕탕에서

아버지를 씻겨드리고

 (수증기와 함께 욕탕 천장에물방울이 맺혀 있는게 내겐 다행이었다)

다음에 다시 오자는 말에 " 다음에"라고 뒤로 미루셨는데

악화된 건강으로 끝내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나이들면 감정이 쉬 복받히나 보다 .

요즈음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샌치해지곤 한다.

책을 읽다가도 어느 한 대목에 길게 머무르다가는 끝내... ...

 

요즘 내가 그렇다.

 

늦게 본 영화지만 역시 가족 영화가 좋다.

이 역시 나이든 징후의 하나가 아닐까!

 

              <120722>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2005년 글인데 다음 블러그에서 옮겨옵니다.

 

 

시사회에서 편히 보는 재미 (물론 공짜가 주는 기쁨은 두배다.)를 이 달 들어 두번째다.

아내는 한가하느냐고 물어본다. 일년에 함께 볼 영화를 다 본 셈이라며 (함께보는 영화는 일년에 두세편 정도이기에) 웃는다. 먼저 근처 식당을 골랐다. 사십년 된다는 설렁탕집을 선택하고 두그릇을 주문하니 깍두기 김치국물을 별도로 준다. 설렁탕국물에 깍두기김치국을 넣어 먹어야 시원하고 감칠맛이 나면서 느끼한 맛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오랫만에 맛있게 먹은 저녁에 길거리에서 고구마튀킴 한봉지를 더한다.

 

딸아이는 무섭다고 오빠 검도가는 것도 잡아두고 오빠는 6년동안 거의  빠지지않은 운동하루 쉬는 것에 선선히 허락을 했단다. 어린 것 같아도 둘만 잇으면 역시 오빠 노륵을 톡톡히 한다. 

 

영화를 다보고 지하철에 회사 주차장...아이들은 거실에서 함께 잠을 자고있었다

영화 내내 이렇게 " 사교 춤도 멋있구나 " 하는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시사회 이벤트가 있으면 잘 활용해 볼 것을 권합니다. 

 

 

Shall We Dance ? 
  
 
오리지널 <쉘 위 댄스>(일본제목: Dansu Wo Shimasho Ka>는 일본의 마사유키 수오作. 
 

존 클라크(리처드 기어 ; 아내는 열렬한 팬이다. 사실 남자인내가 봐도 그 눈빛, 은은한 미소는 매력 그자체라는 걸 인정한다.)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커다란 계기가 되는데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댄스 교사(폴리나_제니퍼 로페즈)의 모습을 존 클라크가 발견한 것이다.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폴리나의 눈길에 사로잡힌 존은 매일 밤마다 댄스 스쿨 앞을 지나칠 때면 유리창 너머로 그녀의 모습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은 마침내 전철에서 내려서 볼룸댄스 초급반에 등록한다. 첫 레슨이 있는 날, 존은 댄스 플로어를 미끄러지며 춤을 추기보다는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레슨 시간을 다 허비해버린다. 첫 레슨을 받은 뒤 창피하기도 하고, 수줍기도 한 존은 춤을 그만 둘까도 생각해보지만 자신이 댄스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스포츠 중독자인줄 알았던 직장동료(스탠리 투치)가 볼룸댄스에 미쳐있었다는 비밀도 알게 된다.

 하지만 존은 아내(비벌리_수잔 서랜든)에게 댄스를 배운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만약 아내가 알면 존이 그들의 결혼생활에서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해석할까봐, 그래서 뜻하지 않게 아내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숨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게다가 존은 미모에다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폴리나에게 가슴 설레는 애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존은 폴리나의 각별한 권유로 시카고 최고의 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한다. 남편의 의심스러운 변화에 위기감을 느낀 비벌리는 급기야 사립탐정에게 의뢰하여 남편한테 여자가 생긴 건 아닌지 알아봐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는데... 바람난줄 알았던 남편의 춤바람..  그걸 놓고.. 왜 남편이 춤바람이 났는지.. 고민할때 사립탐정은 이렇게 말한다. ......
 
" 남편은 무력감!.... 무력감을 댄스스쿨에서 삶에 대한 신선한 의망과 활력으로 바꿨노라고.." 


 실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이러한 감정에 사뢉힐 경우가 있다.
 
나중에, 리차드 기어가 부인과 딸에게, 자신의 춤바람을 들켰을때 곤욕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말한다.
 
" 나라는 사람은 부족한것 없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사소한 부분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거라고,,, 그래서 그런 자신의 욕심에 대해서..창피함을 느낀다고.."

 

쉘위댄스.... 삶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중년의 시기..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보게 되면서.. 참모습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로맨스 코메디.... 쉘위 댄스. 

아내에게 고백한다.

 

"19 년 동안 내곁에서 행복해 하는 아내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는데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과 무력감을 말하므로써 아내의 그 행복을 깨트리는게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고 ...

 

춤을 그만두게 된 어느날 아내는 춤복을 선물하지만 끝내 춤을 추거나 함게춤추자는 말을 못한다.

 

하지만, 결국 아내에게 춤을 신청하게 되고 아내 역시 남편을 이해하고 그 신청을 받으면서 직장 동료들 앞에서 (매장)에서 춤을 춘다. 


로맨스 코메디의 결말은 모두다 기대하는 것처럼 해피앤딩.........
 
                나의 댄스 파트너는 당신이야... 영원히~!!

 

 

 

[일본 원작]

1996년 일본의 앨터미러 픽처스(Altamira Pictures Inc.)가 극장용 영화 제1호로 제작한 작품이다. 수오 마사유키]가 각본과 감독을 맡고, 야쿠쇼 고지[], 구사가리 다미요[], 다케나카 나오토[] 등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 136분이다.

 

단란한 가정과 안정된 직장을 가졌으나 왠지 모를 공허감을 느끼던 40대 샐러리맨이 우연한 계기로 사교댄스를 배우면서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40대에 접어든 스기야마 쇼헤이(야쿠쇼 고지)는 일본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가정에서는 모범적인 가장이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올랐으며 교외에 2층집까지 마련하여 어찌 보면 성공적이랄 수도 있는 삶이지만, 그는 그다지 신나지가 않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통근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는 우연히 차창을 통해 건물 창가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 마이(구사가리 다미요)를 보고 호기심을 느낀다.

며칠 후, 그녀가 강사로 있는 댄스교습소를 찾은 스기야마는 얼떨결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고, 그날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사교댄스를 배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마이를 만날 목적이었으나, 그는 어느새 교습소에서 만난 직장동료 아오키와 회사 화장실에서 춤을 연습할 정도로 사교댄스의 매력에 빠져든다.  

한편 갑자기 스기야마의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계속 귀가가 늦어지자 외도를 의심한 스기야마의 아내는 탐정을 고용하여 뒷조사를 의뢰한다. 탐정으로부터 사실을 전해들은 아내는 반신반의하다가 스기야마가 출전한 사교댄스 경연장을 찾아 춤을 추고 있는 남편을 보고 놀라워한다. 뒤늦게 관중석에서 아내를 발견한 스기야마는 당황한 나머지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퇴장당하는데, 춤에 대한 스기야마의 열정은 슬럼프에 빠져 춤을 추는 의미를 잃어버렸던 마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일본에서 220여 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사교댄스 붐을 일으킨 작품이다. 1996년 일본 아카데미상 13개 부문을 석권하였으며, 미국 선댄스영화제를 비롯한 세계 유명 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았다. 감독 수오 마사유키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여주인공인 발레리나 구사가리 다미요와의 결혼으로 또 한번 화제를 불러모았다. 한국에서는 2000년 6월에 개봉되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다음 블러그에서 옮겨옵니다.

 

 

감독 유성엽  출연 김해숙 (엄마 역), 박진희 (지숙 역), 조영진 (지숙 부 역)

2010년 4월 개봉 . 가족영화 , 상영시간 107분

 

 

어제는 밀린 빨래도 하고 청소 겸 서랍까지 일괄 정리를 했는데

내 편한대로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것들을 다 모아서 정리를 했다.

그동안 버리면 아깝고 서운할 것 같아서 모아둔 것들을 다 버렸다.

그리고 군데 군데 쌓인 먼지도 먼지털이로 털어내고 나니 정리가 된 듯 하다.

마음까지 정리된듯 시원해진다.

 

혼자 살면 편하다 보니, 더군다나 남의 눈 의식할 필요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정리하지 않고 놔두면), 어차피 내일 그 자리에서 다시 사용할 것들이기에 그냥 놔두곤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굳이 불편함을 못느끼는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날 (대부분 주말이지만) 날을 잡아서 정리를 하지만 이내 다시 어지럽혀지긴 마찬가지이다.

 

버리는 것들 중에는 소소한 나의 일상이 담겨져 있는 것도 있었지만 크게 미련을 두지 않았다. 물론 가벼운 추억까지도 버려지기는 하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러다 보니 일년 내내 한번도 눈길 주지않는 것들은

일상생활에서 내가 갖는 생각 "미련"과 일맥상통 이다.

 

정리를 마친 후 하루가 지났는데 다시 군데군데 어지러움이 보인다.

다시 한번 재차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의 마음과도 어찌 같은지...

 

 

어제는 김해숙,박진희, 주연의   "친정 엄마" 라는 영화를 다운받아서 PC로 보았는데 눈물이 났다.

 

잔잔한 일상에서 "엄마"로써 보여주는 "김해숙"의 연기는 영낙없는 우리네 엄마였다.

 

눈에 넣어도 안아플 딸이 "췌장암 말기" 로 쉴 곳을 찾아 친정에 들려서 이를 알고 오열하는 모습에 울고

그 딸을 먼저 보낸 후 남기는 나레이션에서도 눈물이 났다.

 

영화를 다 본 후 다시 몇 군데는 되돌려 보았다.

 

중간에 딸이 아버지를 여윈 후 장례를 치루면서 하는 독백의 일부는 내 마음과 같았다.그리고 장례 후 홀로 되신 엄마에게 서울 집에 가서 살자는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가고 싶지만 딸이 혹시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 갈 곳이 있어야 하기에 남겠다"고 하면서 언제든지 오라는 말. 그 복선에 딸은 젊은 나이에 췌장암 말기가 되어 친정집에 와서 2박 3일 동안 함께 평생 처음 휴가를 보내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했다.

 

 "혼자되신 장모님께 잘하자"

 

제게도 홀로 되신 모친과 아내의 친정 엄마도 계시고

돌아가시기 전 까지는 당신 앞에서 눈물을 감추어야 했는데

도리어 갈수록 당신 생각으로 더 눈물이 나게하는 돌아가신 아버지도 ...

 

생각해보면 아버지와의 추억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시절 아버지를 가진 대부분은 나와 같을 것이다.

당신 젊으셨을 때에는 가족 여행은 꿈도 못 꿀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내게는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되돌아 보면 정말 함께한 몇 안되는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래도 심정적으로는 참 많았다는 생각이다.

 

아버지의 마지막 병상에서 했던 생각이다.

 

당신이 당하시는 고통을 생각하고, 당신을 보내드려야 할 때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보고 싶어할 때, 볼 수 없을거라는 생각만 들면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눈물 보이면 병상에 누워계신 당신의 마음이 더 상하실 것 같아 그 앞에서는 애써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가 삼오 마치는 날에 실컷 울었다.

 

이제는 사랑하는 아들 꿈에 한번 보이실 때도 되었는데도 오시질 않는다.

꿈에 오시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아들의 마음을 먼저 아실 것 같은데

 

아침에 비가 그치더니 하늘이 유난히 맑고 지저귀는 새소리까지 아름답다.

 

                        < 110522>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W-c7sGfTT58$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박수근 그림이 박완서 구원했다

명화로 읽는 고전 6·25가 맺어준 기묘한 조우…박수근과 박완서

[중앙일보 문소영] 지금부터 61년 전 이맘때, 서울대에 갓 입학한 여학생은 꿈과 자부심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곧 터진 한국전쟁으로 학업은 고사하고 전쟁 통에 죽은 오빠 대신 가족을 먹여살려야 했다. 그녀는 간신히 미군 PX 초상화 가게에 취직했다. 지나가는 미군을 붙잡고 "돼먹지 않은 영어로" 가족이나 애인 초상화를 주문하라고 꾀는 일이었다. 그 일의 모멸감 때문에 그녀는 점점 성격이 황폐해지면서 가게 화가들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이때 한 순하고 과묵한 화가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됐지만, 서로가 뒷날 한국 문단과 화단의 큰 별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와 화가 박수근(1914~1965)의 이야기다.

그림 ① 나무와 여인 (1956), 박수근(1914~1965) 작, 하드보드에 유채, 27 x19.5 ㎝, 갤러리 현대 제공.

올해 초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바로 자신의 PX 경험담을 바탕으로 데뷔작 『나목(裸木)』(1970)을 썼다. 이 소설에 나오는 화가 옥희도는 박 화백을 모델로 한 것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옥희도의 그림 '나무와 여인'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박 화백의 실제 작품(그림①)으로, 지난해에 열린 그의 45주기 회고전에 전시되기도 했다.

그림 ② 절구질하는 여인 (1954), 박수근 작, 캔버스에 유채, 130 x 97 ㎝, 갤러리현대 제공.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이렇게 그림 속 나무를 묘사하며 박 작가는 옥희도가, 즉 그 모델이 된 박 화백이 나목과 같다고 했다. 전쟁의 비참한 시대, 미군에게 싸구려 초상화를 팔아 연명하면서도 담담한 의연함을 잃지 않던 모습에서 말이다.

 그런데 박 작가의 PX 생활과 박 화백과의 만남은 소설 『나목』에서보다도 수필 '박수근'(1985)에서 한층 더 흥미롭게 묘사돼 있다. 허구가 가미되지 않은 사실이 지니는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 그리고 그것을 짧은 수필에 날렵하고 감칠맛 나고 박력 있게 풀어낸 박 작가의 더욱 원숙해진 글솜씨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 작가는 당시 PX 초상화 가게에 박 화백을 포함한 대여섯 명의 "궁기가 절절 흐르는 중년 남자들"이 일하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모두 간판 그리던 사람들이라고 가게 주인이 말하기에, 박 작가는 그런 줄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여기서 초상화 주문 끌어오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수줍고 꽁한 성격에 말문이 열리지 않았으나 주문이 끊긴다는 화가들의 아우성에 (이때도 박 화백은 아우성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미군에게 "뻔뻔스럽게 수작을 거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그래서 그림 주문이 늘어나자 이번에는 화가들에게 '싹수없이 못되게 굴었다'.

 "서울대 학생인 내가 미군들에게 갖은 아양을 다 떨고, 간판쟁이들을 우리나라에서 제일급의 예술가라고 터무니없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저희들의 일거리를 대주고 있는데, 그만한 생색쯤 못 낼게 뭔가 싶었다. 나는 그때 내가 더 이상 전락할 수 없을 만큼 밑바닥까지 전락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불행감에 정신없이 열중하고 있었다."

그림 ③ 귀로 (1965), 박수근 작, 하드보드에 유채, 20.5x36.5 ㎝, 갤러리 현대 제공.

 혹자는 박 작가가 전쟁의 쓴맛을 덜 봐서 학벌 타령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와 가족들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란을 가지 못하고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점령한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죽을 위기를 이미 몇 차례 겪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전쟁의 현장에서도 스스로를 포기할 수 없던 젊은 영혼은 순수한 긍지가 변질된 추한 우월감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했으리라. 그 자괴감 섞인 우월감으로 더 불행해질망정.

 그 불행에서 박 작가를 구해준 것이 박 화백이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화집을 가져와 '망설이는 듯한 수줍은 미소'를 띠며 관전(官展)에서 입선한 그림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시골 여인이 절구질하는 그림이었는데, 박 화백은 전후에도 이 소재로 종종 그림을 그렸다(그림②).

 박 작가는 간판쟁이 중에 진짜 화가가 섞여 있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박 화백은 왜 그림을 보여주는지 설명이 없었고, 그 뒤로도 여전히 조용한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신분을 밝힌 것은 내가 죽자꾸나 하고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헤어나게 하려는 그다운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내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중략) 그에 대한 연민이 그 불우한 시대를 함께 어렵게 사는 간판쟁이들, 동료 점원들에게까지 번지면서 메마를 대로 메말라 균열을 일으킨 내 심정을 축여 오는 듯했다."

 이 에피소드는 박 작가의 자전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에도 나오는데, 박 화백의 배려가 언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물 같다고 쓰여 있다. 화가의 성품이 자기 작품과 딴판인 경우도 많건만 박 화백은 자신의 그림을 그대로 닮았던 모양이다. 그의 그림은 색채 톤이 과묵하고, 그 오래된 화강암의 표면 같은, 또는 갯벌의 흙 같은, 또는 늙으신 어머니의 손등 같은 질감에 인고의 무게와 따스한 체온이 배어 있다(그림③).

 그 후 두 사람은 박 작가가 결혼을 해 PX를 그만둘 때까지 1년가량 우정을 이어갔지만 소설 『나목』에서처럼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수필 끝부분에서 박 작가는 그녀의 눈에는 살벌하게만 보이던 겨울나무가 박 화백의 눈에 "어찌 그리 늠름하고도 숨쉬듯이 정겹게 비쳤을까" 신기하다고 했다. 그건 박 화백이 "나는 인간이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했기 때문이리라.

 타인과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가장 추하고 악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는 전쟁, 그러나 그 안에서 한 줄기 희망과 위안을 주는 것도 역시 인간이라는 아이러니를 박 작가의 이야기와 박 화백의 그림은 오늘날에도 절절히 말해주고 있다.

박완서, 그 많은 작품 낳은 건 6·25

한국전쟁은 박완서 작가가 수많은 작품을 낳게 한 원동력이었다. 이 중 논픽션에 가까운 자전적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한국전쟁의 미시사적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이 작품을 보면 1·4후퇴 때 서울에 온 인민군은 시민의 굶주림 문제는 아랑곳없이 선전예술 공연과 우파 색출에만 골몰하고 북으로 철수할 때는 노인들은 따라가길 원해도 거부하고 젊은 사람들은 강제로 끌고 갔다. 박 작가는 이때 끌려가다 용케 탈출했다. 또 6·25 발발 때 시민을 내버려 두고 먼저 도망친 남한 정부는 돌아와서는 인민군에게 밥해줬다는 이유로 숙부를 빨갱이로 몰아 처형했다. 이때의 경험이 작가가 전후에 어느 쪽 이념에도 쏠리지 않고 인간을 직시하는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문소영 기자 < symoo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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