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환율이 년초 대비 10 원 정도 올랐습니다.

저는 올해 초 한국 회사 주재원으로 부임해서 중국 천진에서 생활하므로 중국환율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국 생활이야 인민폐로 받고 인민폐로 생활하니 큰 영향은 없지만

물건 살때 역산해도 한국 물가와 비교하기도 하고, 가족 송금이 있어서...

 

요즘 중국 환율 상승으로 (중국 환율은 달러대비 한국 원화 역산으로 하기에  달러 환율과 연동)

중국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위하여 중국 위안화를 바꾸려 은행 (银行,yínháng)에가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오늘은 환율이 1:182  정도인데 며칠전에는 184원이상으로 올해들어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제가 중국으로 출장을 다닐 시기인 2000년대에는 대부분  1:120~140 의 환율(汇率[huìlǜ)을 유지했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奥林匹克运动会,àolínpǐkèYùndònghuì])을  전후로 1: 220까지 치솟은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가 세계 금융위기로 중국은 그 중심에서 여유가 있었고 우리나라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

 

2009년 4월, 5월 이후로 1:160 정도로 안정이 되고 2012년 말부터 1: 170 정도를 유지하더니

올해 3월 말부터 1: 180을 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환율은 전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환율입니다.

중국위안화는 항상 미국달러와 일정한 교환비율을 설정합니다.

2008년에는 [1달러= 7위안] 이었습니다. 2013년 4월 현재 [1달러= 6.2위안] 입니다. 

 

중국환율이 오르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1. 여행을 가기위해 준비해야 할 인민폐를 더 비싸게 주고 사야 합니다.

    즉 이전에는 16,000원으로 100위안을 샀다면, 지금은 18,000원으로 100위안을 사야 합니다.

   -  현지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그 부담이 엄청나죠.

      반대로  한국에서 유학중인 중국인학생들 역시 신나겠죠.

       중국의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같은 인민폐가 한화로 바꾸니 더 많아졌습니다.

    - 반대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여행오는 관광객(旅客 , lǚkè) 들은 좋아 죽습니다.

      같은 인민폐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더 많아 졌을테니까요.

 

2. 중국에서 근무하는 한국교민들 중 급여를 인민폐로 받는 사람들은 한화로 월급(工资, gōngzī)을

   계산하니 급여가 올랐습니다.  

   ( 저 같은 경우인데 인민폐로 받고, 인민폐로 지출하는 경우로 큰 의미는 없지만  실제 급여 계산시

     한국 월급을 인민폐 환율로 계산 해서 받으니 환율에 따라 받는 급여가 달라지고   급여 산정시

     기준 환율 보다 떨어지면 한국 가족에게 송금하는 금액이 적아지게 되는 영향이 있습니다.)

 

3.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들은 돈을 벌어서 중국에 보내야 하는데,

    항상 같은 돈을 보낸다는 가정하에 중국의 가족들이 찾는 돈은 적게됩니다. (저와 반대의 경우)

   - 이럴 경우 중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 돈 벌러와도 재미가 없겠죠.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일손이 부족합니다. 공장 가동이 어렵습니다.

 

4.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 중 중국인 직원들에게 급여를 줘야 한다면 부담이 증가합니다.

   (그 돈이 한국에서 보내는 돈이라면  ->  그래서 다시 국내로 유턴하는 기업들이 많아짐).  

 

+ 갈수록 중국의 영향력은 증대 되므로 위안화의 가치는 상승하지 않을까 합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오늘 성당 미사중에 신부님이 예를 든 말이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천진의 본 성당이 다른 곳으로 옮겨 미시가 진행될 예정인데

아직 가지를 못해서 철거( 리모델링 ? )예정인 풍림빈관에서 마사를 진행하기에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이곳의 모든 상가 사람들이 다 나가고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회한 정치가 "김종필" 시의 신년 주제어로 더 알려져 있다.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빗대어 한 말이다.

 

실제 이 곳 천진의 날씨는 아지곧 봄은 아니다.

 

이 곳의 난방은 중앙 공급식으로 일괄 공급하는데

11월 15 일 부터 이듬해 3월 15일 까지 만 난방이 공급되고

그 날이 지나면  난방 공급이 중단되어 겨울 보다 더 썰렁하고 춥다.

그래서 전기 장판을 사용하여 긴밤의 추위르 달래고 있다.

 

이럴 때, 봄 날의 기온은 오히려 밖이 건물 안보다 더 따스하다.

이 곳 아파트 역시 난방은 꺼져있어 ( 중국 사람들은 침대 문화다.)

온돌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추위는 더욱 클 것이다.

 

이러다 갑자기 여름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오늘 역시 방 안은 바깥보다 더 춥다.

 

아직 이 곳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다.

 

      <130414>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유래

 

전한(前漢) 말기, 절세미인 궁녀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의 선우(왕)에게 시집갔다.

흉노를 달래기 위한 화친 혼인이었다.

훗날 시인은 모래로 뒤덮인 오랑캐 땅에서 삭막한 삶을 살았을 그를 노래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
모래 땅에 화초와 풀이 없을 테니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한 것이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한나라 원제 때 16세 왕소군(王昭君)이 궁녀가 되어 입궁했다.
한나라의 왕 원제는 어느 날 궁에 앉아있는 왕소군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한나라에는 황제를 위해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놓는 제도가 있었다.

이에 원제는 궁녀 그림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왕소군은 없었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의 침입에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호한야의 도움으로 한나라는 반군 세력을 물리쳤다.

호한야는 대가로 공주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원제는 공주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한 대신

후궁 중 한 명을 그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원제가 그 댓가로

선우께서 고르시지요.”
그러자 호한야가 외쳤다.
“바로 저 후궁입니다.”
원제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런 미인을 몰랐을까?’

호한야의 눈에 들어온 후궁은 다름 아닌 왕소군이었다.

원제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왕소군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던 왕소군은 궁녀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공에게 뇌물주지 못해 미운 얼굴로 그려졌던 것.

당시 원제가 화공(畵工)이 그린 화첩에서 후궁을 골라 불러들이자 후궁들이 화공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미모에 자신 있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모연수는 이를 괘씸히 여겨 왕소군의 그림의 뺨에

검은 점 하나를 그려 넣었다.


결국 원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중국 4대 미녀인 왕소군에게 한 눈에 반한 호한야에게 그녀를 보냈고

왕소군을 알아보지 못하게 그림을 그린 화공 모연수를 극형에 처하는 것으로 분노를 풀었다.

원제는 왕소군을 향한 사무침과 그리움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3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중국 4대 미녀라 불린 왕소군 또한 북방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다 운명을 달리했다.


“후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 )가 왕소군의 심정을 대변하는 시를 지었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봄이 와도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서글픈 심정을 묘사한 이 시에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 유래하였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돈을 쓸 일이 있어서 은행에서 돈을 찾게 되었는데

저의 급여 계좌는 농업 (农业nóngyè) 은헹입니다.

 

일단 이번에는 혼자 가기로 하였습니다.

조금 작은 지점에 가닌 기다리는 인원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안내하는 인원과 창구 인원의 수가 비슷합니다.

 

인민폐로 오만원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사전에 내가 중국은행 직우너에게 할 말을 연습하여 

창구에서 오만원 인출을 요구하였습니다.

 

창구 직원이 오만원 뭐라하더니 "이콰이"하고 말을 합니다.

"이콰이"  즉 일원이라는 말은 알겠는데 다음 말을 몰라 당황하니

그 직원이 일원 짜리 지폐를 들고 흔듭니다 

 

속으로 "아니 수수료도 없는데 웬 1원" 하고 있는데

정말 극적으로 우리 회사 여직원이 와서 1원을 창구직원에게 전해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아 1원을 달라는 얘기였구나 하고서 돈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도움준 직원에게 고마움과 함께 1원을 돌려 주었습니다.

 

"왜 1원이지.. 오만원 수수료인가 ?" 하면서 궁금해 하다가

우연히 출금 영수증을 보고서야 그 아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출금액이 "49,999 원" 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오만원 이상 출금은 사전 신고하고

십만원 이상은 당일 출금이 안됩니다.

그래서 고객 편의를 위해서 49,999원을 출금하도록 한거죠

물론 오만원을 주면서 내게 1원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알리 없었으니...

나름 상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런 규정이 있다면 창구 직원이 그리했겠지요.

참, 아직도 중국은행도 예전 우리나라 은행 처럼 약간의 공무원 냄새(?)가 납니다.

 

중국어가 안되니..

그래도 즐거운 에피소드 였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어제는 술 약속 제안이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집에 왔습니다.
몇 가지 정리할 일도 있었고 시장도 보아야했기에...

 

이국 땅에서 혼자 살다보니 정기적으로 매주 주말에 마트를 가는데

이번 주에는 등산 다녀오는 길에 한국 마트 들려서 야채 쌈등 몇 가지를 샀음에도

마침 쌀이 바닥을 보이고, 카메라 렌즈 클리닝을 위하여 알아 둔 사진관에 들려야 하기에

시간을 내었습니다.

 

중국에 와서는 매일 아침과 저녁 그리고 주말 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결혼전 포항 연구소에 파견갔을 때. 여수에서 혼자 살 때도 아침은 거르지 않은 습관으로)
한국에서와 달리 주식인 쌀(5 KG,현미)도 생각보다 자주(?) 사게 됩니다.

 

가까운 마트 가는 길에 어떤 가게 안의 부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잠시 가게 옆에 서 있었습니다.
차를 파는 찻집인데, 차탁에 빙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가족같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물론 중국에서도 가족이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이 정겨웠습니다.

중국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듯 주로 찻집에서 사람들을 만난다고 합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선 것은 주말 마다 우리 가족이 모여 차를 마시던 기억이 투영되어 보였기 대문입니다.

 

군에 가있는 아들 녀석 생각도 하고, 딸 아이도 떠올려 보고

아글에게는 훈련소의 훈련병 시절에는 인터넷 편지가 가능해서

자주 편지를 했는데  이제 자대 배치 이후에는 편지 쓰는게 적어졌습니다.
아들에게 쓴 편지를 보내려고 국제 특송 우편을 알아보고는 지레 움추려들기도 했습니다.

(우체국 우편, EMS는 인민폐로 약110원 (우리돈 2만원 수준),

만일  일반 돈을 아기려 일반 국제우편으로는 15일정도 걸린다는 말에 기간도  마음에 걸리고...

그래도 늦게나마 메일로 적어서 아내애게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평일임에도 시장에 간 이유는 쌀도 쌀이었지만 갑자기 무우채가 입맛을 댕겼습니다.
지난 주 북경 등산길 점심(도시락)을 먹을 때 어떤 분이 내놓은 반찬 중 하나가 무우채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우채를 아주 좋아하는 데 여기서는 무쳐야하는 것 때문에  생각도 안했었는데
견물생심이라고 그 무우채를 본 이 후로 계속 눈에 아른거리고 있었습니다.

 

마트에 가보니 두 종류의 무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볍고(아마 즙이 많이 나올듯, 한국의 무우처럼) 다른 하나는 제법 묵직했습니다.
예전에 사 본 게 묵직한 무우로 (우리 것보다는 좀 얇으면서 긴 모양인데) 로 맛이 검증이 된
강화도 순무의 느낌이 약간 나는,  즙이 적으면서도 속이 부드러운 무우입니다.
가격은 일반 무우 (제 생각에)에 비하여 서너배 정도 비쌌습니다. 

 

무우를 사 온 후 무우채 무침을 담그기 전에 아내에게 묻습니다.
요리법을 알려주는데로 채를 가늘게 썰어서(이건 예전 부터 제 전공입니다.)

통깨를 넣고, 약간의 간장과 소금 그리고 적당량의 고추가루를 넣고서 버무렸습니다.
그리곤 시간이 시간인지라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아침 식사에 먹어보니

생각보다 즙이 없고(저는 미 즙도 좋아합니다) 깊은 맛은 덜하고 약간 짠 듯했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만든 요리는 다 맛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마음을 살짝 얹어 보았습니다.
물론 다음에는 더 맛있는 무우채를 위하여 좀 더 먹으면서 그 이유를 차츰차츰 살펴보려 합니다.

 

요리를 전화로 묻는 도중에 저의 밥 짓는 방법을 아내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짓는 밥의 쌀은 현미인데 검정 콩을 넣어서 밥을 짓는데 이게 보온 밥통에 놔두면 ㅊㄹ기가 떨어집니다.

그래 여기에 찰기를 유자하고자 찹쌀을 섞어 밥을 하니 색깔도 그럴 듯 하고 제법 맛이 있는데

얼마전 부터는 찰보리 쌀도 적당량 추가로 넣어 그야말로 건강식을 먹고 있습니다.

 

저는 국물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진짜 급할 때 아니면 국에 밥을 말지 않기도 하고) 국은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매 식사시 마다 국을 준비하는 데 어제 저녁 국은 감자와 미역을 적당하게 넣은 된장찌게였습니다.
그런데 된장국이라는 게 맛은 최고인데 국 끓일 때 나는 냄새가 만만치 않아 늘 고민이기는 합니다.
좋아하는 김치찌게 역시...

이제부터는 냄새가 덜하는 국거리도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미역국과 무우 쇠고기 국이 냄새가 덜하는 국으로 제격이기는 했습니다.


제 식탁에 빠지지 않는게 고추입니다.

한국에서는 매운 청양 고추를 ㅁ끼 마다 식탁에 올렸는데

이 곳에서는 그 좋아하는 매운 고추를 구하는데 간혹 실패를 하곤 합니다.

(그리고 일반 고추는 저렴한데 처양고추같은 고추도 두세배 비싸답니다)

 

위 요리의 사진을 올리면 좋겠지만 실상이 드러나므로 사진은 생략입니다.

 

이번 주말은 아내의 조안을 받아서 단호박 밥과 간식을 만들어 볼까 목하 고민중입니다.

 

                         <130410>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어느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면 나의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되고

내가 누군가를 안아주면 그 사람의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된다는 말.

이 말이 사실인지는 실제로 확인할 수 없지만 

굳이 설명하거나 예를 들지 않아도 금방 이해가 됩니다. 

 

제 경험으로도 어느 날 내가 세상에 치여 상처받고 힘들어 할 때,

누군가 내게 다가와서, 세상이 왜 힘든지, 그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해주는 사람보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훨씬 더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안아주는 가치를 잘 알기에

저 역시 누군가가 실망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일일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고 차 한 잔 하자고 하면서

그냥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마지막 일어 설 때 어깨 한번 안아주고 

"힘내" 라고 말해 주곤 합니다. 

 

사실 이 견디기 힘든 순간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느낄 때 그 이상의 따뜻한 격려는 없을 것입니다.

 

신은 우리에게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를 넘어뜨린다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견디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 어려움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알려주는 신의 배려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 묻고  살짝 웃으면서 스스로 답해 봅니다.

 

아들 녀석의 이병 생활 얘기를 아내를 통해서 듣습니다.

이 역시 우리가 아들이라고 아끼다 보니 해주지 못했던 것을 

저는 하나님이 이 기회를 통해서 주시는 아들에 대한 은총과 배려라 여깁니다.

 

 

                        <1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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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상을 통해 사람사는 이야기와 함께, 항암 관련 투병기록 및 관련 정보 공유를 통해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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