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들이 보내온 편지 중에 나(아빠)의 등을 밀어 주고 싶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이 전하는 편지 글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다시금 젖어 들었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 해의 마지막 달에 광주 본가 근처의 오래된 목욕탕에 아버지 등을
밀어드렸는데 아버지 몸을 씻겨 드리면서 나는 내내 울고 있었습니다.

욕탕 안의 자욱한 수증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이 후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기 한달 전 쯤엔가

다시 등을 밀어드리겟다고 목욕을 권하시자 "나중에 몸 좋아지면"이라고 답하셨는데
끝내 다시 당신 등을 밀어드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아마 당신의 뼈만 앙상한 모습을 아들이지만 보이시기 싫으셨던게 아닌가 하고

지금은 그렇게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그 앙상하신 몸을 아들에게 맡기셨을 때의  당신이 느끼셨을 처연한 기분도

한번쯤 더 생각했어야 했었는데 생각이 짧았던게 아닌가 하고 되돌아 봅니다.


아래 블러그에 있지만 아버지의 등을 미는 내용의 시의 주인공 아버지 처럼 ... ...

(좋아하는 시의 카테고리에 있는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참조)

함께 시간을 맞추면 내 등을 아들 녀석에게 맡겨 볼 생각입니다.

기독교 신앙에는 "세족식"이 있습니다. 

물론 불교에도 이런 의식이 있습니다. 때로는 망자에 대한 세족의 의식도 있지요.

그런데 이 세족식의 본질은 "겸손과 섬김"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발을 씻겨줄려면 일단 상대보다 낮은 위치에서 무름을 꿇어야 합니다.
나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놓는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를 지고 다녔던 발을 씻기우는 것!
발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더이상 낮아질 데가 없는 곳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 발보다 더 낮은 위치에 서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없는 낮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얼굴과 손은 가꾸고 치장을 하지만 발은 본디 감추어지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막상 발을 싯기운다는 것에 대해서 때로는 스스로의 치부로 여겨서

거절할 수도 있지만 그 세족식은 여러가지 깊은 의미가 있는듯합니다.

 

아들은 나의 등을 밀어주고
난 아들의 발을 씻겨주는 숙제같은 선물의 행사가 하나 생겨났습니다.
이제는 나보다도 거 커버린 아들이지만 어렸을 때의 기분도 함께

 

아래의 시는 역설적이다.

사랑을 가르치지 않아도 사랑이 넘치는 시대에 대한 바램이다.

종교가 가장 번성한 시대에 사는데
많은 이들은 역설적으로 기독교에는 사랑이 부족하고 불교는 자비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신앙인으로써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하늘의 소리이다.

(참고로 아래 시는 제가 좋아하는 시는 아닙니다.)

 

 

세족식을 위하여

 

                                   정호승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지 마라
세족식을 위하여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물 속에 계속 발을 담글지라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마라

지상의 모든 먼지와 때와
고통의 모든 눈물과 흔적을 위하여
오늘 내 이웃의 발을 씻기고 또 씻길지라도
사랑을 위하여
사랑의 형식을 가르치지 마라

사랑은 이미 가르침이 아니다
가르치는 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밤마다 발을 씻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거짓 앞에 서 있다

가르치지 마라 부활절을 위하여
가르치지 마라 세족식을 위하여
사랑은 가르치는 시대는 슬프고
사랑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의 시대는 슬프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TAG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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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정호승 시인의 시집이 두권 정도 있다.

그러나 내 게인적인 취향에 따라 이 시인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를 물어도 딱히 이거라고 대답할 말은 없다.

그래도 이 시는 마음에 든다.

구절 구절이 우리 삶이 투영되어 있는 듯해서 이다.

아니 내 평소의 생각이 녹아있듯이.

 

                  <131027>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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