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자료는 인터넷(출처: 아래)에서 펴왔습니다.

 

천진생활을 하면서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모아 공유해놓았습니다.


<스탭한국어>
한국과 중국 교통편 다름!다름!다름! - http://cafe.naver.com/tjlc1004/116217
천진주요장소 중국어주소      -  http://cafe.naver.com/tjlc1004/108764
천진생활하면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 5가지      - http://cafe.naver.com/tjlc1004/123621
천사모에서 제일 많이하는 질문10가지(통합본) - http://cafe.naver.com/tjlc1004/96196
중국의 시력, 신발, 집평수 단위 알아보기         - http://cafe.naver.com/tjlc1004/128879
천진 대학교들 입학시 주의사항                       - http://cafe.naver.com/tjlc1004/134338
천진 방값에 대해서             - http://cafe.naver.com/tjlc1004/134340
천진 인터넷 지도                -  http://edushi.com/ 
여권 분실시 재발급받는 방법  - http://cafe.naver.com/tjlc1004/129481
주 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 http://chn.mofa.go.kr/korean/as/chn/main/index.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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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못님의 주숙등기에 대한 중국 규정 - http://cafe.naver.com/tjlc1004/26458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중국 직원과 얘기하다가 내가 차를 좋아한다니까 자기 고향이 복건성이라면서 나눈 얘기..저도 새로이 알고 옆에 통역하던 그 회사 직원도 새롭게 알았답니다.

시작은 마카오 얘기가 아니라 근처 아는 공장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그 공장의 소재지가 마조만(媽祖彎)란 곳이라고 하기에 그 마조의 쯧이 무어냐고 물어보니 마카오까지 얘기가 진전되었습니다.  천진의 고문화 거리에 있는 천후궁도 같은 사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마조는 태국까지 이어지는 중국 남부의 어부를 지켜주는 신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의 용왕신과 ㅂ다 할머니정도 ...

 

마카오의 유래

 

마카오는 지난 199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되었지만, 1557년부터 적어도 4세기 이상의 기간 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그런 까닭에 중국문화와 포르투갈 문화가 공존하고 혼용된 곳이다. 사실 마카오는 중국본부와   멀리 떨어진 광동성의 동남부 해안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중원문화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말하자면 중원문화의 변방이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동남부 해양문화 혹은 동남아문화의 특성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2.

마카오 기행은 지난 해 2월 21일에 한나절 정도 진행되었다. 여행 프로그램이 대부분 그렇듯이 별볼일 없다고 생각되는 곳은 그저 스쳐지나가듯 구경하는데 그친다. 마카오처럼 말이다. 하지만, 주의해서 보면 유적도 적지 않거니와 그 의미 또한 독특하다. 이 중에서 소개하고픈 것이 마조각이다.

 

마조각이란 마조(媽祖)를 모신 사당을 의미한다. 현지에 세워져있는 안내판에는 마각묘(媽閣廟)로 쓰여있다. 현지의 안내원에게 들으니, 마카오는 마각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곧 마카오의 상징인 셈이다. 이 한 가지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속된 말로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사당을 부르는 이름 중의 또 하나는 천후궁(天后宮)이다. 이는 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봉호이자 건물명이다.

 

마카오 사람들에 따르면 천후궁보다 마조묘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관제(官製)의 엄숙하고 딱딱한 명칭보다 오랫동안 친숙하게 사용하던 이름을 선호하는 셈이다. 마조란 복건어로서 할머니를 뜻하기 때문이다.연구자들에 따르면 마조의 사당은 광동성과 복건성에 가장 많으며, 원래 광동성 광주부 향산현(오늘날의 중산시)의 일부였던 마카오에도 오래전부터 이 사당이 세워졌다고 한다.

 

이 마조각은 <안내문>에 따르면 명나라 홍치 원년(1488년) 혹은 만력 33년(1605)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이미 복건의 상인들이 이곳에왔던 성화연간(1465-1487) 혹은 천순 2년(1458)에 창립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마카오에서는 가장 오래된 마조 사당이다. 마조 사당이 대체로 원대와 명대에 많이 세워진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사당도 그 초기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위치는 마카오 반도 서쪽 끝의 내항 입구이다. 뒤로는 낮은 산이 있고, 앞으로는 좁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곳으로 전통시대에 포구가 자리하기에 좋은 위치이다.

 

건물 배치는 전형적인 사당형식으로 정문, 패방, 정전, 홍인전, 관음각, 정림선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들의 성격이 각각 유교적, 도교적, 그리고 불교적 특성을 내포한 것이므로, 마조각은 그 점에서 전형적인 삼교합일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건물들은 산 사면 아래쪽에 낮게 지어졌기 때문에 웅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 속에 묻혀 있는 느낌을 준다. 북경이나 남경과 같은 대도시의 사당들의 크기가 어마어마한 것과 비교된다.

 

3.

이제 우리에게도 조금씩 알려진 마조는 본래 송나라 때에 복건성의 미주(湄洲)라는  섬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이 신으로 승격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중국의 민간 사회에서는 대체로 그 지역사회에 공을 세운 인물이 사망하면 신으로 승격시켜 공동체의 수호신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임묵랑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구름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초인적 영력을 가지고 지역민들을 재난과 불행으로부터 구해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선원들에게는 바다의 신으로, 상인들에게는 재물의 신으로, 또 수군에게는 전쟁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예컨대 원왕조는 동남아에 대한 해상 원정시 그녀의 보호를 받기 위해 마조를 ‘天妃’로 승격시켰다. 쿠빌라이 시대 때의 일이다. 민간신이 국가의 신으로 변신한 셈이지만 이 조치는 이미 송대에도 이루어졌다. 12세기 항주로 천도한 남송대에 송왕조가 남부의 안전을 위해 영혜부인(靈惠夫人)으로 봉하였다. 청의 순치 때에는 천상성모로, 건륭제 때에는 天后로 봉해졌다. 청조의 이런 조치는 광동 연안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을 제압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곧 마조-> 영해부인 ->천비 ->천상성모 ->천후로 승격되어 왔던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복건지역의 연안무역상인들이 숭배하였던 해신으로 그 성격을 강화하였고, 이 때문에 포구가 있는 곳곳에 그의 사당이 세워졌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인천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인터넷 정보, 예컨대 네이버의 지식백과에는 마조의 출생연도를 당나라 현종(685-762) 때라고 하였으나, 이는 오류이다.공인된 출생연도는 960년이다.)

 

[출처] [마카오여행] 마카오의 유래는 마조묘(媽祖廟)|작성자 옥가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중국에서는 일 년에 성묘(샹펀-上坟)를 하는 날이 세 번이라고 한다. 

기본 적으로 청명제와  음력 7월 15일, 그리고 엊그제 음력 10월 1일이다.

 

중국에서 성묘의 방법은 좀 특이한 면이 있다.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옛 풍습과 비슷하지만.

단지 제사상에 차린 음식을 우리나라에서는 음복한다고 해서 나눠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은 제사상과 가족들이 먹는 음식을 별도로 차린다고 한다.

다소 특이한 것은 농촌에서는 폭죽을 터뜨리고,

그리고 오전 중(11시에서 12시 사이)에 종이를 불에 태우는 일을 한다.

종이를 불태우는 것을 샤오즈(烧纸-정확하게는 지전을 태움)라고 한다.

여기서 터트리는 폭죽은 조상들에게 자신들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락 ㅗ합니다.

 

중국에 와서 놀래는 게 폭죽놀이이다.

결혼식을 하거나, 개업식을 하는 때에는 주위의 소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폭죽을 터트린다.

얼마전 회사 체육대회를 하는데 근처 병원에서 폭죽을 터트리는 것을 보고서 놀랬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일이지만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게 되었다.

 

언젠가 등산을 가다가 목격한 일인데.

묘에  노란색 종이에 붉은새 글씨가 새겨지거나 중국돈 처럼 생긴 가짜 종이돈을 얹어 놓거나

때로는 태우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하는 유래는죽은 사람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망자에게 주는 노자돈이라는 것과 유사하다.

옛날에는 종이 위에 옛날 중국돈(엽전의 형태)을 찍어서 모양을 냈다고 한다.

(인쇄가 아니라 눌러서 자국을 내는 형식)

그것을 태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옛날 엽전 형태의 돈을 인쇄한 종이를 구입해서 태운다고 한다.

 

음력 시월 초하루에 종이옷을 사서 태우거나 가짜 종이돈을 태우는데

돌아가신 분이 겨울을 따스하게 지내시라고 종이 옷을 태워 하늘로 보낸다고 한다.

물론 종이돈 역시 겨울을 지내는 ,,,그러면서 일종의 저승길 노잣돈으로...

 

우리도 예전에는 한식, 청명절, 그리고 음력 시월 초하루가 성묘하는 날 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예전 차 모임에서 보이차를 즐긴 다음 모임의 최 연장자께서 끝 마무리로군자차(君子茶)"를 선물했다.


군자차라고 해서 특별한 차는 아니고, 맹탕으로 끓인 물을 뜻하는 말(일명 백비탕(白沸湯) 또는 백탕(白湯)을 일컫는 것인데)로 마지막 남은 향을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 맹탕이므로 맛과 향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데도 다른 맛과 향이 섞이지 않기에 신기하게 향과 맛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 차모임의 분위기와 정담 속 다담의 향기가 온전히 전해져서 사람의 마음에 느껴지는 차가 아닐까 한다. 이상하게도 우리 모임에서는 대부분 가장 나이드신 어르신이 내려 권하곤 했는데 어느 새 나도 그럴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애초 군자란  학문과 덕이 높고 행실이 바르며 품위를 갖춘 이를 뜻하는데 이 맹탕으로 끓인 물, 잡맛이 완전히 배제된 아주 순수한 물을 군자에 비유했다는 것은 군자의 성품이 그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다도(茶道)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군자차 중에 가장 맛있는 군자차는 아마도 보이차를 즐긴 다음 끝 마무리로 마시는 군자차야말로 황홀하기 이를 데 없는 차이다. 군자차를 마시는 순간 그때까지 마셨던 보이차의 참맛과 향기 그리고 기운이 고스란히 입 속에서 되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그 여운이 온몸으로 번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 와서 관공서에 들릴 일이 간혹 아주 간혹 있습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자리이지만 그 사무실에 들리면녹차를 내어놓거나 때로는 이 맹물 군자차를 내어 놓습니다. 얙를 나누면서 한잔 더 청하기도 하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맹물을 내어놓으면 실례가 될 법도 한데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권합니다.

 

처음에 이를 접할 때에는 이런 문화가 참 이상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낯설지 않고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차가 각양각색이다보니 그 차를 다 맞추어 내어 놓을 수도 없고 또  예의를 차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아마 경제적인 이유는 덤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회사 역시 외부 손님들이 방문하면 차 또는 커피를 권하기도 하지만 중국 손님에게는 때대로 이 군자차를 내어 놓기도 합니다.

 

제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군자차는

언젠가 여수에서 주말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담소를 나누면서 딸 아이가 내린 차 맛에 취했다가 마무리로 내린 군자차 였는데....

분위기만 느껴도 이미 취해버릴 그런 날이었으니 얼마나 맛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예쁜 딸아이가 고운 손으로 ....

 

올해 말쯤에는 그 군자차 다시 맛볼 수 있기를 기다려 봅니다.

생각만 해도 벌써 취합니다.

 

                        <131012>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이 곳 천진의 날씨도 최근들어 많이 맑아진 듯합니다.

2001년 부터 2008년 까지 이곳 천진의 다른 법인에 업무 및 강의차 두달에 한번씩 오곤 했습니다.

그 때의 기억으로 천진의 날씨는 대부분 뿌였고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려울 정도엿습니다.

출퇴근 길에 보는 자전거 행렬 (지금은 그 대의 1/10 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비가오면 남녀 가리지 않고 온몸을 비닐 옷으로 (자전거의 일부까지 덮은) 중무장한 모습을

자주 보곤 했었습니다. (2004년경엔가 천진 시내 하천을 정비한 기억이...)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파란 하늘에 때로는 새털구름 하늘도 보이곤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창문을 통해서 밖의 날씨를 살피곤 합니다.

물론 핸드폰 일기예보를 통해서 금일 일기(온도, 습도 그리고 먼지 농도)를 살피는데

오늘은 먼지농도 51로 대단히 양호한 날씨입니다.  (평소 150 수준 )

사는 곳이 시내 중심이라 할 수 있어서 대부분 매연 등으로 뿌연 하늘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데

(요즘은 그나마 3~4일 간격으로 맑은 날 하루 정도는 보여줍니다)

 

오늘 아침은 그래도 쀼연 안개(스모그) 없이 맑은 하늘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어제 오후에 잠깐 내린 비의 영향이 클 듯합니다.

 

새벽녁 아침 여섯시 밖의 하늘을 보니 맑은 하늘이 보여서 집의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천진 날씨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흐리고 먼지지수가 높은 날이 많다)

 

각 방의 창문을 활짝 열고 앞뒤 베란다와 주방 등 창문이라는 창문은 모두 열었는데.

맨 처음 거실 베란더 창문을 여는 순간 그 창문을 통해서 맑고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에 닿았습니다.

그 때 느끼는 신선한 공기가 주는 상쾌함을, 그 짜릿한 기분을 느껴보셨는지...

약간은 찬 기운이 더해져 더 맑게 느껴지는...

 

그 여세를 몰아서 아이들 편지의 소재로 써야겠다고 메모를 해주었다가

내친 김에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아쉬운 점은

국제우편의 시간적 간격 (일반 우편 약 20일에서 한달 정도, EMS는 통당 20,000원 정도에 일주일)으로

워드로 작성해서 아내에게 메일로 보내면 아내가 인쇄해서 일반 국내 우편으로 아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직접 쓴 편지보다야 감칠 맛이 덜 하겠지만 ...

그래도 기회가 되면 보내주려고 합니다.

 

                  <131002>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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