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악과 영화'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18.02.04 왁스 화장을 고치고 1
  2. 2017.12.28 잉글리쉬 페이션트. (1996)
  3. 2017.12.12 중국영화 「산이 울다(2014)」를 보다.
  4. 2017.12.01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5. 2017.11.14 영화 몬스터볼...
 오늘 음악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해서

왁스 - 화장을 고치고

발라드 음악의 진수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 」 는 부르기는 어려운 곡이지만 듣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곡이라 그런지 나이에 관계없이 가사와 함께 매우 빠져들게 만드는 곡이다. 
특히 사십대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실제 2001년도 발표곡이라 하니 그 세대에 맞기도 하겠지만 발라드곡과 이 노래 가사가 주는 흡입력과 그에 따른 감동이 더 크다고 본다.  또 왁스의 목소리가 주는  흡입력이 더 큰 원인일게다.

이 곡은 왁스의 두 번째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빅히트를 치면서 그의 인기는 상승하기 시작, 그 해에  올해의 가수상은 물론 10대 가수상, 최우수 뮤직비디오상 등을 휩쓸고 소위 잘 나가는 가수 대열에 서게 되는데 왁스는 데뷔시절 회사의  전략상 얼굴없는 가수 전략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끄는데는 성공했고 하지원이 홍보를 해서(하지원이 오빠라는 빠른 댄스 곡에서 워낙 춤을 잘 추고 가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시중에 왁스가 하지원이냐 아니냐로 시끌벅적 했다. 물론  나중에 왁스는 제 얼굴을 드러내어 대중 앞에 서게 되지만 한동안  하지원과 미모 비교를 당해서 상처받기도 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난 아직도 이 노래의 제목을
「화장을 지우고」로 헷갈리곤 한다.  가사 내용이 화장을 고치고 보다는 화장을 지우고가 더 맞지않을까? 하는 고정관념 탓일게다. 위에서 언급한 곡 "오빠" 도 빠른 댄스곡으로 아주 오랫동안 노래방 애창곡 탑텐 안에 들어갔던 곡이기도 하다.

왁스 - 화장을 고치고

우연히 날 찾아와 사랑만 남기고 간 너
하루가 지나 몇해가 흘러도 아무 소식도 없는데
세월에 변해버린 날 보며 실망할까
오늘도 나는 설레이는 맘으로 화장을 다시 고치곤 해

아무 것도 난 해준게 없어 받기만 했을뿐 그래서 미안해

같은 여자를 왜 사랑했는지 왜 떠나야 했는지
어떻게든 우린 다시 사랑해야

살다가 널 만나면 모질게 따지고 싶어
힘든 세상에 나 홀로 남겨두고 왜 연락 한번 없었느냐고

아무 것도 난 해준게 없어 받기만 했을뿐 그래서 미안해

나같은 여자를 왜 사랑했는지 왜 떠나야 했는지
어떻게든 우린 다시 사랑해야 해

그땐 너무 어려서 몰랐던 사랑을 이제야 알겠어
보잘것 없지만 널 위해 남겨둔 내 사랑을 받아줘 어떻게든 우린 다시 사랑해야해

혹시 소스가 필요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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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스의 화장을 지우고 뮤직비디오바로보기
https://youtu.be/Ls4nhFlD9oY

이 뮤직 비디오에서는 아역에서 성인 배우로  막 변해가는 풋풋했던 신은경과 듬직한 김영호의 애절한 사연이 흐른다. 그리고 신은경을 괴롭히는 건달(?) 역으로 여기에서 류해진도 등장한다.

왁스는.....
본명이 조혜리인데 '윤을 내다'라는 뜻의 wax처럼 '가요계에서 반짝반짝 윤을 내라'라는 뜻으로 왁스(Wax)를 자신의 예명으로 정하여 2000년도 말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솔로로 데뷔하기 전에 1998년에 "Dog"이라고 불리는 밴드에서 리드 보컬로서 활동하였고, Dog 해체 후 소리없이 솔로로 전향했다. 솔로 1집 타이틀곡인 "엄마의 일기"의 뮤직 비디오에는 하지원이 출연하였고, 후속곡인 "오빠"의 댄스 버전으로 인기를 끌었는데 역시 이 때도 하지원이 춤을 추웠다. 또한, 솔로 2집 타이틀곡인 <화장을 고치고>로 각종 음악 프로그램의 1위를 차지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 이후로도 <머니>, <부탁해요>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잉글리쉬 페이션트 (1996)'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흥은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과거의 아름다운 사막과 현재의 수도원이 오버랩되면서   그야말로 감성적인 멜로 이야기로 웬지 모르게 빠져들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 의 주인공 '랄프 피네스'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의 경우는 '캐서린' 역할이 너무나 하고 싶어서 감독인 '안소니 밍겔라'에게 적극적으로 그 역을 하겠다고 직접 나섰다는 일화는 무척 유명하죠  왜 그녀가 그렇게 그 캐서린 역할을 하고 싶어 했는지는 이해가 됩니다.

 영화 속의 '캐서린'은 누구나가 탐을 냈을 만한, 그런 매력적인 여인이거든요!

 이 영화는 소설가 '마이클 온디체'의 베스트 소설 영화화한 전쟁 로맨스로 아카데미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가 되어 9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습니다.

음악을 맡은 '가브리엘 야게'는 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인데  '베티 블루 37.2', '까미유 끌로델' 등의 유명한 영화음악을 만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헝가리 민요와 바하의 '골드 베르크 변주곡' 등이 쓰인 이 영화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나 좋았고, 음악, 스펙터클한 영상도 또한 일품인 작품이죠! 주인공의 모태가 헝가리 츨신 백작의 얘기라서 그랬을까요?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

그냥 짧게 설명을 할 수 없는 게 2시간 40분의 라닝터임의 워낙 긴 영화이기도 하고,  일단 현재와 과거를 마구 넘나드는 전개이어서 간단한 줄거리 요약이 쉽지 않기에 영화를 한번 보고서는 잘 이어지지 않아  두번 보고서야  느낌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못보신 분이나 새로이 보실 분을 위하여 이렇게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는데요, (스포 주의!)
  
영화의 시작은  비행기 한대가 카이로 사막을 날아가고 있습니다. 비행기 안에는 죽은 여자가 타고 있고 한 남자가 함께 타고 있습니다. 그 비행기는  독일군의  총격을 받게 되고, 추락을 하게 됩니다.

왜 비행기 안에는 죽은 여자가 타고 있을까요?
그리고 추락하게 된 그 비행기 안의 남자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상을 입은 '알마시' (랄프 피네스) 와 간호사 '한나' (줄리엣 비노쉬)의 모습

            
때는 1944년 10월 이탈리아!

전쟁 중이라 부상자로 넘쳐나는 가운데 한 화상을 무척 심하게 입은 남자가 보입니다. 바로 그는 그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남자였죠!  본인은 이름도 국적도 아무 것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부상자 명단의 국적란에는 '잉글리쉬 페이션트' (영국 환자) 라고 쓰이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는 '잉글리쉬 페이션트' 라고 불리게 되고요!
  잠깐 옆에 보이는 '한나'라는 간호사는 무척 밝아 보이지만  이번 전쟁 때문에  애인도 친구도 죽어서 자신이 시링하는 시람은 모두 죽는다는 자책으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 무척 슬퍼하고 있습니다. 자도 중3 여름방학 때 제 짝꿍이 보낸 편지에ㅜ답쟁을 했는데 그녀석이 바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닜기에 편지에 답장을 한동안 못했던 기억도 제게 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늘 모든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속내가 깊은 그런 인물입니다.

부상자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부상자들 중, 특히 부상이 심한 알마시,  즉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트럭에 실었다 내렸다 하기엔 여러 모로 무리가 있다고 한나는 판단을 하고전쟁 때문에 부서진 한 이태리 수도원에서 그를 간호를 하리라 그녀는 마음을 먹습니다. 다른 동료들에게는 나중에 따라 가겠다고 하고  일단 그 수도원에서   '한나'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인 '알마시'의 간호를 맡게 됩니다.
   알마시의 화상 입은 손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고 늘 함께 하는 그의 책 '헤로도토스' 의 <역사> 책! 그리고 그 책에 끼워져 있는 사진들이며 그림과 편지들까지...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편지들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시간은 과거로 흘러갑니다.

 카이로의 사막 한가운데에 고고학자, 이집트 학자, 지리학자등이 모인  '국제 사막 클럽' 의 회원들이 모여서 지도 제작을 위해 연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노란 비행기 한 대가 그들 앞으로 다가옵니다. 그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은 부부인데  '제프리 클리프톤'과 '캐서린 클리프톤'으로 '클리프톤' 부부이죠! 그 노란 비행기는 사실을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것이고 전쟁을 대비해 북아프리카 전역의 항공 지도를 만들려는 게 목적이었으나  '제프리'는 그 사실을 숨기고  비행기는 장인 어른의 결혼 선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때  '캐서린'과 '알마시' 의 첫 만남! 이ㅜ시작됩니다. 복선이 깔린 대화도 오고가는데... 어찌되었든 그들은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뭔지 모를 호감을 갖게 됩니다.

그 클리프톤 부부와 함께 하는 사막의 밤!  무리들 중 유일한 독신인 '알마시'는 점점 더 '캐서린' 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고 '캐서린'역시 '알마시'에게  자주 시선이 향하게 됩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영화는 계속과거와 현재를 오고갑니다.
 한나와  알마시와의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한 사람이 찾아 옵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한나와 알마시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는 '데이빗 카라바지오'라는 사람으로 원래는 도둑이었으나 캐나다 정보 기관 소속으로 연합군 스파이로 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나중에 그와의 관계가 빍혀지지요

 그와 알마시가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알마시를 보는 '카라바지오'의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양 손의 엄지가 잘려 있는 그는 도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요?

시간은 다시 과거로 되돌아와서

  사막에서 시작이 된 둘의 호감은 계속 더 깊어지게 됩니다.  다시 그들은 사막으로 왔습니다. 캐서린의 남편 '제프리'는 다음 날 비밀리에 북아프리카의 지도 제작을 위해 떠나게 됩니다. 그 전날에 모두 모여서 건배를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카라바지오' 다음으로  수도원에서 그들과 머물, 또 다른 사람이 찾아 오는데요,  그의 이름은 '킵' 으로 영국군의 폭탄 해체 전문가입니다.
 간호사인 '한나'와 '킵'은 서로 깊은 호감을 갖게 됩니다. 과거 절친의 유픔을 찾으려다 지뢰밭에 들어가는데 이 때 구해주는 인연이 있기는 했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다시 과거로 돌아와서

남편 '제프리'는 비밀리에 항공 지도 제작을 위해 떠났고 사막에서 알마시는   동료 일행과 함께 하다가,  벽화가 그려져 있는 한 동굴을 발견하게 됩니다.(이 벽화가 그려진 동굴은 나중에 영화에서  중요한 곳이 됩니다!)
 
그 날 밤, 사막에서는 모래 폭풍이 몰려옵니다. 차 안에서 고립된 캐서린과 알마시는 그 날 서로의 사랑을 확인을 하게 되죠! 캐서린와 알마시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만 갑니다.남편인 제프리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증거는 못 찾고 있지만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결혼 일주년을 뭐라하느냐 물으면서 종이 (paper)라고 답을 하면서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었던 과거에 결혼 일주년 근처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다 제프리는 그들의 결혼 1주년 기념 '깜짝 이벤트'를 해주려고 하다가 우연히 캐서린과 알마시의 불륜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일단 모르는 척 합니다.   전쟁은 터지고 모든 국제 탐험은 중단하라는 영국 정부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탐험 지도를 갖고 있는 알마시에게 그의 동료는 '그 탐험 지도가 전쟁시엔 무기가 된다' 면서, 지도를 잘 간수하라고 말을 합니다.

영화의 시간은 현재로 돌아와서

킵은 자신이 좋아하는 한나에게 성당의 벽화를 보여줍니다. 평소에는 너무나 높게 있어, 또 너무나 어두워서 절대 못 보는 성당의 벽화 그림들을 보면서 한나는 너무나 행복해 합니다.

벽화를 본 다음 날,
그들은 전쟁이 끝났음을 알게 되고, 수도원에서 모여서 사는 이들끼리 조촐한 파티를 갖게 됩니다. 그동안 무덥기만 하고  비 한 번 시원하게 내리지 않더니 마치 전쟁이 끝났다는 걸 축하라도 하는 듯,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알마시를 들 것에 들고, 함께 비를 맞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있습니다.
 카라바지오는 알마시에게 묻습니다.
  '왜 도대체 독일군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지도를 주었느냐'고요! 그러면서 그 지도 때문에 결국은 자신의 엄지 손가락 두 개를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나는 너를 죽이러 이 곳에 왔다'라는 말도 하죠!

알마시는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없어요, 난 오래 전에 벌써 죽었으니까요!" 하면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우연히 한나도 듣게 되죠!

 다시 시간은 과거의 시간으로 가서~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모든 탐험은 중단이 되었고 그래서 알마시도  벽화가 그려져 있던 동굴에서 철수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날, 제프리는 비행기로 알마시를 사막에서 데리고 가겠다고 말을 했었고 알마시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비행기는 갑작스럽게 알마시에게 다가옵니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관계를  알고 있던 제프리는 질투를 참지 못하고 그만 알마시를 향해 돌진을 하지만, 다행히 알마시는 순간적으로 피하게 되는데  비행기는 다 부서져 버리고 말죠!  문제는 제프리와 함께 비행기 안에 캐서린이 타고 있었다는 것!  제프리는 죽고 캐서린은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중상을 입고 맙니다. 일단 알마시는 근처 벽화가 있던 동굴로 그녀를 안고 갑니다. 그 곳에 그녀를 눕혀 놓고,  다시 반드시 약과 비행기를 구해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죠!  약간의 남아있는 음식과 전등을 주고 그는  구조요청을 위해 떠나게 됩니다. 먼 길을 3일을 꼬박 걷고 걸어서 구조요청을 청했지만 그들은 이름이 이상하다,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의심을 합니다. 사실  알마시에게는 국적도 적군과 아군도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캐서린이 전부였고 캐서린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죠!   결국 알마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지도를 독일군에게 넘겨주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캐서린의 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갔을 때엔 이미 그녀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었죠!

 다시 현재로 영화는 바뀌게 되고

 킵은 피렌체 북부로 전출 명령을 받고 떠나게 됩니다. 한나는 슬펐으나 킵에게 '자주 그 성당의 벽화를 보러 가겠다'고 말하니그도 그럴 것이라고 합니다. 복선이겠지만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될까요?

  다시 둘만 남은 빈 수도원!
 하루하루를 몰핀으로만 생명을 버텨왔던 알마시는 점점 더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악화가 되고, 그는 다량의 몰핀을 한나에게 주며 자신을 죽여줄 것을 부탁합니다.

벌써 그의 모든 얘기를 다 들은 한나의 입장으로는 편안한 죽음이 지금의 그에게는 더 의미가 있음을 알기에... 그의 부탁을 들어 줍니다.

알마시는 마지막으로 

캐서린이 벽화가 그려진 동굴에서 그를 기다리며 썼던 편지를 읽어줄 것을 한나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 편지의 내용을 들으며 그는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되죠!

 내 사랑 
이제 불도 꺼지고 너무나 추워요!
밖에 나갈수만 있다면 해가 있을텐데...
벽 그림을 보고 이 글을 쓰느라 전등을 너무 허비했나봐요!
우린 죽어요.
많은 연인들과 사람들이 
우리가 맛 본 쾌락들이 
우리가 들어가 강물처럼 유영했던 육체들이
이 무서운 동굴처럼 
우리가 숨었던 두려움이
이 모든 자취가 내 몸에 남았으면...

우린 진정한 국가에요!
강한 자들의 이름으로 지도에 그려진 선이 아니에요.
 당신은 날 바람의 궁전으로 데리고 나가겠죠?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에요.
그런 곳을 당신과 함께 걷는 것
친구들과 함께 지도가 없는 땅을...

전등도 꺼지고
어둠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다시 영화는  과거로

 알마시가 캐서린에게 가서 싸늘한 시신을 안고 동굴에서 나오는 장면이 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약속대로 캐서린에게 갔으나 그녀는 이미 죽어 있었죠! 죽은 그녀를 태우고 그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폭격을 받아 화상을 입게 된 것이고요!

  이제서야 맨 앞의 장면이 이해가 가게 됩니다!  알마시,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이제 이 세상에 없고 한나는 동료들이 있는 피렌체 쪽으로 떠나게 됩니다.

 떠나기 전에 알마시가 누워있던 방을 돌아보는 그녀!

   그가 남긴 '헤로도토스'의 책과 그 안에 끼워져 있는 그림들과 편지들도 함께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가방 속에 넣습니다. 트럭 뒷자리에 앉아 다시 동료들에게 향하는 한나! 나무와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의 숨결을 느끼며 그녀는 미소를 지어봅니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듯  표정이 밝게 빛이 나면서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정말 긴 줄거리입니다.

 영화 순서대로 해서 좀 뒤죽박죽인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화를 이해하시는데 무리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인 '잉글리쉬 페이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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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지난 일요일 쉬는 날이라 IPTV 로 조용한 영화를 고르다가 지난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인기를 끌었던 (2016년도에 정식 개봉)  '산이울다' 라는 제목의 중국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살짝 본 예고에서 펼쳐지는 타항산맥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풍경 속 산들을 보면서 점점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기구한 운명의 한 여인에게 찾아온 짧은 행복, 그리고 그녀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숨겨왔던 충격적인 진실에 관한 반전 이야기로 ...

영화의 서두에서 중국이라면 충분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골 오지와 범죄없는 마을이 주는 여러가지 혜택 그리고 중국 인민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공안 (예전 어르신들이 말하던 일본순사 이미지가 강하다. 요즘은 달라졌다지만 시골은 여전하다.)들에게 시달릴 걸 생각해 보면 실제로 실화같은 영화가 아닐까? 한다.(중국에서 실제 몇년 살아본 경험으로)

산이 울다 (喊·山, Mountain Cry)
영화  107 분, 래리 양 (Larry Yang) , 2014 (중국)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되면서 우리나라에 먼저 소개가 되었고 2016년도 5월에 정식으로 개봉도 했었던 작품으로 홍시아역의 량예팅은 신인이라고 하는데 운명적으로 만나 순애보 같은 사랑을 한 남녀 주인공의 연기가 스토리 만큼이나 무척 인상적인 영화이다. 예전 문소리가 연기했던 정신 지체 연기와 정윤희의 벙어리 역할의 영화가 잠시 내게 머무르다 간다.
특히 한 때 우리 세대를 사로잡았던 인기 여배우 정윤희의 이미지와 살짝 겹쳐지는듯한 이 중국 여배우. 더군다나 벙어리 역할까지 비슷하니 내 세대만 잘 아는 정윤희 이미지가 영화보는 내내 함께 떠오른 영화이다.

 전설적 미녀배우 정윤희
산이 울다

중국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점의 하나인 좀 떨어지는 섬세함을 애써 색감이나 배경의 화려함으로 보완한 영화가 많은데 오랫만에 이 영화는 그런 중국영화 같지 않은 남다른 섬세함까지 갖춘영화 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몇년 전 영화배우 이유영이 여주인공으로 나온 한국영화 "봄" 처럼 아름다운 한편의 수묵화를 감상하듯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영상미가 돋보였다. 두 영화 모두 서두부에서 아름다운 영상미를 서로 뽐내는듯 했다.

그리고 몇 가구 안되는 조그만 산속 마을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걸 느끼게 해주고 사람사는 곳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의미였다. 
사랑은 공부하듯 배우거나 찾는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부딪히듯 우연히 오고 그런 사랑에 대하여 남들이 자로 길이를 잴 수 없는 각자에 맞는 마음 속 깊음이 있다는 걸 영화의 말미 부분에 이르러 알게 해준다.

정윤희 처럼 벙어리가 갖는 서정적이고 절대적인 가슴 아픈 로맨스와 비슷하게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주인공 (벙어리여서 일까요? )에게 짠한 연민이 영화를 마치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가날프고 예쁜  여주인공 홍시아에게선 말을 못하는 장애를 통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말하지 못한 뭔가를 계속 상상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힘과 함께, 남주인공 한총처럼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엄마 홍시아(량예팅),
예쁘죠!  신인다운 풋풋함까지...

영화 제목「산이 울다」에서 느끼듯 현재 진행형인 제목은 영화 이후에도 주인공들이 다시 만나서 더 이상 아픔과 슬픔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한게 아닐까 합니다.

다르게 보면 산이 스스로 말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메아리를 통해서 산이 말을 한다고 믿고 있기에 '산이 울다'라는 영화 제목은 여주인공 홍시아가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녀를 대신해서 산이 울어주는 걸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영화 도입부에서도 산에서 산으로 대화를 나누는게 보이기도 함니다.

영화의 배경을 보면 소박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어느 두뫼 산골 마을이라 마을의 풍경처럼 전개되는 이야기 마저도 순수한 사랑일걸로 예상했는데 마치 현실처럼 꾸밈없이 보여주는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가슴 아프고 좀 충격적인 슬픈 내용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되는 타이항 산들의 풍광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마치 그림같아서  ‘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별칭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타이항 산맥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겹겹이 싸인 여주인공의 감춰진 비밀을 따라가는 재미만큼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감상하는 쾌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중국 산시성의 산골 마을에서 촬영되었다는데, 중국의 개혁개방 이전의 서부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경치를 영상 속에 제대로 담아내고 있어서 매우 아름답지요.

하지만 영화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영화의 문을 매혹적으로 열어주었던 그 능선에 아로새겨진 인간들의 가혹한 욕망으로 인해 그 풍경이 더 이상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는 점은 좀 아쉽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슬픔이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영화로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연기자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영화 자체는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장르가 멜로인 데다가, 홍시아 역의 랑 유에팅도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미모와 연기를 선보여서, 젊은 과부 홍시아와 청년 한총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전개가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는데,  다만 한총을 그렇게 좋다고 따라다녔던 부자 과부는 한총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바로 그에게 등을 돌렸고, 믿었던 아버지조차도 살인범을 받아줄 가문이 어디에 있겠냐며 한총을 정신에 문제가 있는 여성에게 장가를 보내려고 나섭니다. 그 와중에 한총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홍시아가 개입하게 되고, 한총은 그러한 홍시아를 (감옥에도 보내지 않고, 자신의 못마땅한 결혼 계획도 막아준)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게 됩니다. 연애 당사자 중 한쪽이 말을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영화는 말 대신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둘 사이에 싹트는 애틋한 감정을 보여주는데 특히 시골 남성과 여성이 보여주는 순박함은 그러한 애틋함을 더해줍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오해’와 ‘이해’의 과정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그땐 잘 몰라 오해였는데 조금 지나면 그 이유를 알게되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을 준비하는 홍시아(량예팅)를 남편 라홍(여애뢰)이 침대로 끌어들이고. 거칠게 반항하는 홍시아와 라홍의 관계는 그 이후 라홍이 딸에게 장난을 치는 스스럼없는 태도 때문에 새침한 아내와 터프한 남편의 관계처럼 오해하게 만듭니다. (당연한 얘기인데...) 반면 산 건너편의 애인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애정공세를 퍼붓는 이웃 청년 한총(왕쯔이)은 철없고 무책임한 사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정말 이렇게 깎아내릴 듯한 절벽 위에 지어진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 속 산골 마을은 멀리서 비추는 사진으로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해 냅니다.그런데 영화내용은 완전히 다르죠. 벙어리 홍시아는 출신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랑자 남편을 따라 마을에 들어와 빌어먹고 살고 있었고,  늘상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과 학대 속에 고통 받던 중, 남편이 우연히 오소리를 잡기 위한 덫에 걸려 폭발한 폭약에 한쪽 발을 잃게 되고, 제대로 된 의료 처방을 받지 못하여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오소리 덫을 설치했던 마을 청년 한총은 살인범으로 몰리게 되는데, 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에, 벙어리인 홍시아의 남편 때문에 마을이 살인범 마을로 몰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공안에 신고하지 않는 대신 한총에게 홍시아 모녀의 생계를 돌보도록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 관점으로 보면 좀 황당하죠.
따라서 관객은 한총이 오소리를 잡기 위해 설치해놓은 덫 때문에 라홍이 다리를 잃어 죽게 되었을 때 한총의 부주의와 무책임을 나무라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동조하게 됩니다. 졸지에 가장을 잃고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어린 엄마의 모습과 그녀를 부양해야 한다는 마을 회의의 결과에 반항하는 한총의 태도는 그같은 ‘오해’를 더욱 부추기게 됩니다.

이 영화의 홍보 팜프렛. 첫장면을 보면 붉은 옷을 입고 산 봉우리에서 뭔가를 두드리며 알리려는 듯한 여주인공 홍시아(량예팅)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알고보면 이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의 죽음을 기뻐하는 무언의 몸짓이었습니다. 이 대목은 상당히 중요한 복선이 깔린 장면 입니다.

이런 ‘오해’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라홍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홍시아의 기이한(?) 태도를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젊은 과부의 슬픔에 젖은 모습으로 부주의하게 (오해로) 넘겨버립니다. 물론 이 오해의 진짜 근간은 이 산간 마을에서 완벽한 타자인 홍시아에 대한 무관심이지만, 홍시아는 남편이 죽자마자 슬퍼하기는 커녕 집 안을 샅샅이 뒤져 비누를 꺼내고 천연덕스럽게 머리를 감고 그녀는 장례식에서 남편의 관에 흙과 돌멩이를 던지며 발작하듯 오열합니다. 그 오열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살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린 아내가 가장을 잃은 슬픔을 극렬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판단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보다 더 서글프게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의 흐느낌을 듣던 홍시아는 낄낄대며 웃지만(여기서 살짝 이상하다. 웬지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옵니다) 그녀의 웃음은 슬픔에 겨운 광기 정도로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오해’ 합니다.

우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남편을 묻는 장면에서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아~  나는 이제 자유다. 해방되었다' 라는 그런 기쁨의 표현이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됩니다..

영화 서두에서 보여준 말을 못하는 벙어리 새댁인 그녀는 6개월전에 남편, 딸 그리고 젓먹이 갓난 아이와 함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첩첩산중의 산골마을로 들어왔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거지 취급을 받고 남편으로부터는 미친년 취급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살았던 그녀였기에 그러한 행동에 왜? 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녀의 '왜?'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남편이 죽고 마을에서는 그 동안 범죄없는 마을로서의 특혜와 지위, 그리고 조사과정에서 공안에게 당할 일들을 피하기 위해서 살인을 신고하는 대신 오소리잡는 기구를 설치한 한총에게 당분간 이 세 모녀를 보살피게 하고 관련 서약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홍시아가 이장을 대리하는 마을 대표의 주재하에 남편의 사망에 대한 보상금을 합의하는 장면 역시 ‘오해’로 연속됩니다. 마을 어른인 의사 선생은 그녀가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멋대로 ‘무지하다’로 해석해 버리고 라홍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태도 역시 무지 혹은 슬픔으로 인한 경황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고,  그동안 무시해 왔던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쓰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을사람들이 잠깐 놀라긴 했지만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그녀의 속 사정을 짐작하려는 노력으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녀가 마을 사람들이 상상하는 ‘거지(라홍)의 벙어리 아내’가 아닌 양갓집에서 곱게 자란 홍시아였음을 알려주면서 반전을 기대하게 합니다.

 바열한 남편 연기가 돋보인다.

 홍시아가 어린 소녀일 때 라홍에게 납치되었고, 홍시아는 라홍이 아내를 죽인 사실을 엿들었다는 이유로 그에게 혀를 잘려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소녀는 사내에게 납치 유괴되었고, 이후 강간당하며 두 아이를 낳았던 것이죠.

이제 우리는 영화의 첫 장면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만 하는데. 홍시아는 새침한 아내가 아니라 성폭행 피해자이자 여전히 감금 납치된 상태로 강간당하는 아내였기에 그녀에게 라홍의 죽음은 가장의 상실이 아니라 감금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자유였던 것이죠.

처음에는 의무로 시작되었던 한총의 부양은 점차 애정으로 변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홍시아는 라홍의 죽음 이후 그에게 어떤 종류의 의무감을 부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점차 자발적인 것이 되어가는데...
이러한 둘의 감정을 제일 먼저 정확하게 짚어준 것이 한총의 아버지로  그는  ‘현재’에서 나름의 지각과 양심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지만, 의사 선생과 나눈 대화를 통해 밝혀진 ‘과거’에 의하면 한총에게 그 누구보다 깊은 상처(어머니 폭행, 주정, 부재)를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역시 현재 보이는 것과 감춰진 실제 모습은 다르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 펼쳐지는 멜로드라마 같은 겉모습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반전에 반전을 잇는 일종의 범죄 드라마로. 그림 같은 풍경은 장르를 오인하게 만들어내다 양파같이 벗겨도 벗겨도 끝나지 않는 진실을 암시하는 상징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샹각이 듭니다.

영화 말미에 폭력을 일종의 정당방위로 옹호하는 애매한 결과로 이어져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결말의 반전은 관객이 목격했던 ‘현재’를 진실을 폭로하는 ‘과거’로 되돌려 놓습니다.

초반에 라홍이 죽어가던 장면에서 그가 손에 들고 있었던 아기사과 (딸이 라홍에게 구해달라 부탁한 것)는 ‘부성애’로 해석되었는데. 자신이 라홍의 살인범임을 자백하는 홍시아의 자술서를 통해 그것이 그녀의 치밀한 계획에 포함된 미끼였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녀는 한총의 덫을 활용해 라홍을 제거하려 했고, 다리를 잃고 신음하던 라홍을 베개로 질식시킨 것이죠.

그런데 이 자백은 영화가 그때까지 폭력이라고 묘사했던 행위들을 일종의 정당방위처럼 옹호하는 애매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주민으로 등록되지도 않은 홍시아 일가 때문에 한총과 마을 전체가 공권력에 시달림을 받으리라는 공포에 질린 마을 주민들이 그녀를 쫓아내려 하며 보여준 집단적 ‘광기’. 그것이 절차적으로 옳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가장 옳은, 즉 최선의 선택인 것이죠. 나는 차라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진실이 계속 은폐되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행복했기에...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폭로하는..
마지막 극적 반전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시종일관 목소리를 잃은 가련한 피해자로 나옵니다. 어쩌면 홍시아는 라홍에 의해 그리고 이 영화의 극적 반전을 위해 이중으로 애처로운 피해자로 덧입혀진  것 같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가난과 멸시로 이중적 피해를 입는모습 그대로이기에

개인적 생각으로 홍시아에 대해 말 못하는 벙어리이기에 듣지도 못하고 당연히 글도 모르는, 이름도 없는 무지랭이라고 단정짓는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이 바로 우리 아니 나의 숨겨진 모습이 아닌가 하고 되돌아 보았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홍시아와 한총(왕쯔이)과의 사랑을 표면에 내세우긴 했지만 말을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서 중국이라는(그것도 후천적으로, 폭력에 의해) 나라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을 들춰냄으로써 주인공처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아픔을 밝은 곳으로 끄집어내어 치유해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중국에서 실제 살았던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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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은 2008년, 2009년 각각 개봉한 미국, 영국의 영화이다.

리처드 예이츠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샘 엔디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주연을 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즐렛은  1997년  영화《타이타닉》이후 첫 공동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고, 또한 《타이타닉》의 또다른 출연 배우의 케시 베이츠가 출연하였다. 이 작품으로 윈즐릿은 골든글로브상에서 드라마부분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아카데미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첫눈에 반한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과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교외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고 있다.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은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연인으로 출연했었고 절친이기도 하다) 결혼하기 전 에이프릴은 배우의 꿈을 가지고 연기를 전공했고 프랭크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 후 그들은 현실에 타협하며 평범한 부부로 살고 있다. 반복되는 삶에 절망감과 공허함을 느끼던 그들은 에이프릴의 망한 연극을 계기로 크게 싸운다. 하필이면 그 다음날이 프랭크의 생일. 그날 갑자기 헬렌(케시 베이츠)이 에이프릴을 찾아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들 존을 가끔 만나줄 것을 부탁하고, 헬렌의 얘기를 듣고나서 예전 사진을 꺼내보며 오래전 프랭크와 파리에 대해 얘기했던 것을 떠올린다. 
이 시각에 프랭크는 회사의 친하지도 않은 여직원 모린 그루브와 바람을 피운다.  에이프릴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결혼 생활에 많이 지쳤던 모양. 에이프릴의 깜짝 선물로 짙은 후회의 표정을 보여주지만......
에이프릴은 프랭크가 퇴근하여 돌아오자 아이들과 깜짝 생일선물을 주고, 현실에서의 모든 삶을 버리고 파리로 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고 한다. 프랭크는 처음엔 현실때문에 반대하지만, 사랑으로 다가오는 에이프릴에게 설득되어 파리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프랭크는 가을에 회사를 그만 두려고 그동안 부장에게 갈궈지고 있던 일 하나를 장난삼아 처리한다. 근데 이게 웬일. 프랭크의 결과물을 보고 회사의 높으신 분인 바트 폴락 사장이 매우 흡족해 하며 프랭크를 승진시키려고 한다. 게다가 에이프릴이 셋째를 임신했다. 흔들린 프랭크는 승진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다가 동네 친구인 셰프와 대화를 들은 에이프릴이 프랭크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다. 또 둘은 대판 싸우고, 싸우던 중 화장실에 간 프랭크가 에이프릴이 몰래 숨겨둔 낙태기구를 발견한다. 또 대판 싸운다. 프랭크는 에이프릴이 이성적이지 못하다며 그냥 여기서 살자고 한다.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온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셰프 부부와 밤에 재즈 바로 놀러가는데, 셰프의 아내 밀리가 과음을 했는지 속이 좋지 않아 예상보다 일찍 집에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셰프의 차를 뺄 수 없는 상황이라서 프랭크가 밀리를 차로 데려다 주고 셰프가 나중에 차가 빠지면 에이프릴을 데려다 주기로 한다. 프랭크와 밀리가 돌아가고, 셰프와 단둘이 남겨지자 에이프릴은 프랭크에 대한 서운함을 하소연한다. 두사람은 춤을 추다가, 셰프의 차에서 성관계를 맺게 된다. 셰프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에이프릴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지만, 에이프릴은 거절한다. 

다음날, 헬렌 부부와 헬렌의 아들 존이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를 방문하고, 파리로 가지 않기로 했다고 하자 존이 격분하여 프랭크를 다그친다.[3] 존과 헬렌 부부가 집을 떠나자,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또 대판 싸운다. 에이프릴은 더이상 프랭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소리치고, 프랭크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왜 자기랑 살며 아이들을 키우냐며 소리친다. 프랭크는 문을 꽝 닫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에이프릴은 숲으로 도망친다. 자기가 지나쳤음을 안 프랭크가 뒤늦게 에이프릴을 쫓아가지만, 에이프릴은 생각을 해야한다며 소리를 지르며 프랭크를 쫓아내버린다.

프랭크는 에이프릴이 있는 숲을 쳐다보며 밤새 술을 마신다. 다음날, 에이프릴은 여느 아침과 똑같이 부엌에서 아침을 하고 있다. 이날은 프랭크가 폴락 사장과 (승진과 관련된)상의를 하기로한 날이었다. 에이프릴은 중요한 날이라며, 프랭크에게 '당신의 일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랭크가 아침을 먹고 떠난 후, 에이프릴이 낙태기구로 낙태를 하는 것이 암시된다.

에이프릴이 죽고, 프랭크는 시내로 이사하여 바트 폴락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는 장면에 이어 존 부부의 이 부부에 대한 얘기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사람의 연기 특히 여주인공의 연기가 마움에 들었지만 영화에서 전해주고자하는 퍼인트느누잘 모르겠다.  영화를 이해하고자 두번을 보있다. 정신병을 앓고있는 존(?) 이 등장해서 이 부부에게 쏟아내는 말들이 메시지같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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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요즘 시간나면 케이블티비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를 고르다보면 늘상 거기서 거기인데 간혹 이렇게 수작을 건지곤 한다.

오늘 본 영화는 「몬스터볼」

영화는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무거운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처럼 영화 스토리 흐름도 내내 무겁다.

그럼에도 2시간이 훌쩍  흘러 지난다.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삶에 대한 진실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74년 아카데미 역사상 흑인 여배우로서 처음으로 여우 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몬스터볼>
 
내가 생각하기에 그 당시 심사위원들도 아무리 흑인이 주인공이라지만 작품과 연기가 너무 뛰어나서 기존 통념을 버리고 여우 주연상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행크], 상처 깊은 미국 경찰관의 전형.

영화는 미국의 내재된 아픈 상처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 어렸을 때 부터 동경해온 나라이기도 하다. 물질적 풍요와 우리가 누리지 못한 자유로 인해서 미국은 늘 부러운 나라였다. (어렸을 때 자가용을 가진 집이 거의 없을 때 미국은 시골 농부도 차가 두세대라 했으니 ... 현재 우리나라도 이렇게 변해 후진국에선 예전의 내가 그리던 미국일게다)

잘 살면서 부러울 게 없는 아름다운 나라

우리는 늘상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 왔지만 겉으로는 제 아무리 세계 초일류 강대국이라며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위해 적을 물리치고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자부하는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잘 사는 나라. 미국에도 우리네 일상처럼  외로움과 상처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바로 경찰관 행크(빌리 밥 손튼)의 모습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주인공), 아들 3대에 걸쳐 경찰 가문에 살고 있지만 어머니(여자)가 없는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삭막 그 자체다.

교도관으로 일하는 행크,  그에게는 역시 교도관으로 일하는 아들 소니가 있다. 
직업상 감정을 배제하고 담대할 필요가 있지만 행크의 눈에 소니는 여리디 여린 감성쟁이 같다.  아들이 좀더 강해지길 원하기에 그런 여린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늘상 차가운 충고만 하는 아버지 행크,  그리고  28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가 행크의 아들역으로 짧게 나오는데, 아버지처럼 냉정하지 못하고 감성적이어서 가슴이 여리다. 마치 나와 아들의 모습이 짧은 시간이나마 투영되는듯 하다.

여주인공 레티샤의 남편을 사형하는 교도관으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행크, 소니 부자가 담당 교도관이 된다.

몬스터 볼, 사형수의 마지막 날
그의 파티는 교도관을 그려주는 것이었다.  사형수에게 감정이입을 한 소니는 결국 사형 집행을 하러가는 길에  구토를 하고 마는데, 그런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버지. 그는 좀 더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화를 낸다.

그런 아버지에게 늘 상처받았던 아들,
그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나를 미워하세요?"

그러자 행크는 말한다.

"네가 밉다. 정말로 밉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한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었다."고

그리고 자신의 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소파에 남은 아들의 피를 행크는 닦는다. 하지만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듯이 잘 닦여지지 않아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이 장면은 슬픔과 외로움이 투영되지만 현실적으로 이해는 안되었다. 아들에 대한 생각과 사랑을 결코 지울수 없다는걸까?

사형수의 아내, 레티샤 
사형수 로렌스를 면회하면서 사형이 곧 집행될 것 같은 예감으로 사형수의 아내로써 그녀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서적으로도 힘이 든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아들이 뚱뚱한 모습이 더욱 싫다. 아들이 부족한 아버지의 사랑 대신 초코렛을 즐기고 그로 인해 90키로의 뚱뚱한 흑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하여... ... .

그로인해 아들의 삶이 더욱 고단해질 걸 잘 아는 엄마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때론 걱정을 뛰어넘어 아들을 학대로까지 이르게 된다.
곧장 후회하면서도...
 
레티샤는 남편이 사형으로 세상을 떠난 후, 어느 비 오는 날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들이 죽어가게 되자 빗속에서 "도와달라"고 울부짓는다.
그리고 그곳을 우연히 지나치던 행크가 그녀를 도와 다친 아들을 병원으로 옮기지만 결국 레티샤의 아들은 죽게 되고 홀로 남겨진 레티샤와 외로운 행크 둘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어느 순간 레티샤가 묻는다. 

" 사고 난 그날 밤 왜 도와주었냐?" 라고

레티샤가 묻자 행크는

"그냥..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서.." 라고 말한다.

아들을 잃은 두 남녀, 
서로의 상처와 상처가 만났을 때! 
또 다른 삶이 그들 앞에 놓여진...
그러나 둘은 담담한 희망을 이어간다.

처음에 만나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흑인과 백인, 남자와 여자, 무언가 국적 대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서로 각자 가지고 있는 상처를 통해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벽들을 조금씩 허물게 된다.
그러나 서로는  만나는 것에 너무 조심스럽다. 그리고 둘은 자연스레 사랑을 나누게 된다.

레티샤가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슬픔을 웃으며 울며 얘기할 때, 행크는 홀로 듣는다. 이 둘의 갑작스런 사랑은 어쩌면 둘이 가지고 있는 과거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시작처럼 보인다.

행크와 레티샤,
사랑은 상처를 딛고 함께 있을 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이들의 사랑이 아직 시작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이말은 앞으로도 더 어려움에 마주칠 것을 예감하게 한다.
 
레티샤가 고이 간직한 반지를 팔아서 하얀 모자를 선물로  안고 늘 도와주던 행크의 집으로 갔을 때 처음 만난 행크의 아버지로부터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상처를 받게 된다.
백인인 아들이 흑인 여자라 한번 그냥 즐기려 사랑을 나눴을거라고.

마침 집에 온 행크가 그간 사정을 말하려 하지만 이미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은 레티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떠나게된다.

행크가 레티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찾아가 사정도 해보지만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행크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긴다.
그 동안 아버지라는 이유로 모셨던 이유가 이를 계기로 없어진 것이다.

요양원에서 작별인사 도중에

"행크, 나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라며 애원해보지만, 아들의 단호함에 이내 체념하고

행크는 아버지와는 다른 희망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돌아와 집안을 정리하면서 방의 내벽을 하얀색으로 칠한다.
아마 조금은 칙칙함에서 밝은 하얀 색으로 방을 칠한다는 건 무언가 변화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

영화 서두에서 사형수 남편을 면회하면서 말한대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압류 집행관에 의해서 짐 몇 가지와 함께 길가로 쫓겨나게 되는데 이때 행크가 그 곳에 오고 어쩔 수없이 그녀도 행크의 집으로 오게 된다. 집에 오자마자 복선으로 깔린 도배 색을 새로 칠했다고 말하면서 서로의 본심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행크의 집에서 행크의 죽은 아들 방을 살펴보면서 두 사람 모두 아들을 잃은 상처가 있기에 누구나 서로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마치 우리에게 보여 주는 듯 하다.

사랑을 나눈 후 행크가 초코 아이스 크림을 사로 간 사이  우연히 보게 된 초상화에서 남편이 죽기 전에 그려준 초상화란 걸 알게되고  자신의 남편의  사형 집행관이 행크라는 걸 알고 흐느낀다.  이 후 레티샤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행크와 함께 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면서 행크의 눈과 밤하늘의 별을 동시에 본다.

행크의 눈과 밤하늘의 별

레티샤의 가슴에 새로운 삶의 희망을 대변해주는 건 아닐까?

영화는 둘이 함께 별을 보는 뒷모습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어둔 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마지막 자막이 흐르며 끝난다.
 
아마 이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과거의 상처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아니라 그 상처를 딛고 함께 걸어 갈 현재의 사랑이 훨씬 가치있고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레 보여주려 했던건 아닐까?

흑진주, 할리 베리
그녀가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력은 정말로 뛰어나다.  흑인이 갖는 깊디 깊은 슬픔이 저절로 베여나는 그녀의 연기였다.
은근히(어쩌면 드러 내놓고) 여배우의 미모로 흥행을 노리는 우리 나라 영화계의 아픈 현실이지만 이렇게 깊이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한국 여배우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한국이 갖는 역사적인 어둠이 짙게 물들어 있는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영화는 너무 남성 중심이어서 대부분 여자는 조연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뭐 어찌되었든 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74년의 역사를 이 작품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고 흑인 여우 주연상을 받은 그녀가 미국의 오랜 관습과 통념을  한번에 깨트릴 수는 없었겠지만 역사적인 첫 출발점으로 하나의 이정표로 중요했고 특히나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아름다운 흑진주로 불리우는 배우인 이유를 저절로 알게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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