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다음카페 이동활의음악정원>

 

 

생명의 서(書)
                                            
-  유치환  -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灼熱)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烈烈)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本然)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어느 날 어떤 일을 하다가도 간혹 "이렇게 사는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어떤 일들이 계획한대로 진행되지 못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대로는 차분히 나 자신을 되돌아 볼때에도 그런생각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럴 때 마다 이 시가 마음을 잡아 줍니다.

 

이 시는 고민, 좌절, 절망의 끝에서 허무 의식을 떨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서려는 강인한 의지를 노래한 시로 생각됩니다.

 

아마도 청마 유치환 선생은 이 시를 통해서  

삶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 부터 자기 자신을 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곳으로

뜨거운 사막인 아라비아 사막을 설정하고, (그 당시 우리에게 중동은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여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으로 여길 때 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고통의 고독을 단호하게 선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의 세계를 택하겠노라고 하는 비장한 의지를  생각하면서

내 스스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언젠가 통영에 갔을 때 청마의 정신적 연인이었다는 "이영도" 시조 시인 집앞도 지나고

중앙 우체국도 들려보는 여유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중학교 국어선생님이면서 기혼자 였던 서른 여덟살의 청마와 

일찍이 21살에 결혼하여 딸 하나에 스물아홉에 남편을 폐결핵으로 사별한 통영여중 가사 선생인 젊은 규수의

사랑은 처음 부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기도 했다. 

1947년 부터 3년동안 매일 보낸 편지...

마음을 열었지만 어쩔  수없는 플라토닉 사랑....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에 관련 된 시를 옮겨 본다.

아래 시의 그 우체통을통영의 중앙 우체국 앞에서 직접 보기도 했다. (그 때 우체통은 아닐게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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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2013. 9. 25. 07:30 좋아하는 시

풀 김수영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더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개인 생각>

 

김수영 시인의 시를 살펴보면 강인한 우리 민족을 노래하는데

이 시에서도 역시  강인한 우리민족으로 비유합니다.

특히 그는 저항시인으로서 참여시인과도 같습니다.

 

이 시 역시 바람으로 묘사 되는 독재권력, 외세의 강한 외압에 수난을 당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일어나 웃는 풀을 통해 현실극복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역사의 반복을 잘 아는 시인으로서는 혹시나 되돌아갈 암울한 시기에 대하여 마지막 연에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는 표현으로  풀(민중)의 고통스러운 현실, 부정적인 상황이  반복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실제 이 시 발표 후 자유 민주주의를 짓누르는 게엄령 치하의 군부 독재로 돌아가버리지만 그래도 시인은 3 연에서 처럼 다시 풀이 일어나 웃을 것이라는 희마의 끈을 놓지않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가진 화두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130925>

 

<또 다른 생각>
 엊그제 북경에서 중국 본사(?)에서 주최하는 교육에 참석하느라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는제 내려왔습니다.
이제 교육에 참석하는 사람들중 모르는 사람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제가 직장 생활한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동료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시간여 걸리는 귀가길이 금방이었습니다. 상대성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듯 합니다.  오늘 문득 김수영의 시 <풀>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지만 어제 밴드르 통해서 누군가가 올려준 이 시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마들었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부니 더 이 시가 생각난 것이겠지요.

나는 늘 이 시를 읽으면 “바람보다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서는” 이 대목에서 한번 숨을 가다듬고 다시 읽어 보는데 풀이 주는 이미지가 참 묘했습니다.
우리는 풀밭에서 어느새 잔디밭에 더 익숙해지기는 했고 대부분의 풀은 잡초라해서 뽑아버리는데 그래도 이 땅을 거름지게 만들어주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비 몰아오는 동풍에 먼저 눕고 견디다 드디어 울고 날이 흐르니 울다가 다시 눕습니다. 그것도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더 빨리 일어납니다. 은유적 비유로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만드느데 그의 풀은 쉽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흐름에 순응도 하고 그러나 일어나야 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한 지혜와 용기에 대해서 알려주는 김수영의 <풀>입니다.

              <150913>

 

시인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선린상고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에 도쿄상대에 입학했다. 그 무렵에 학도병 징집이 있어 이를 피하여 귀국했다가 만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때 귀국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8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했다. 가까운 문우이자 애증이 교차한 친구인 시인 박인환은 김수영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박인환이 경영하는 고서점 ‘마리서사’에서 김기림, 김광균 등과 만나면서 50년대 문인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지게 된다. 명동을 중심

으로 한 한국의 50년대 문학사에서 김수영은 늘 그 중심에 있었다. 30세가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이후에는 전형적인 문필업자가 되어 시 창작, 번역, 산문 기고 등에 전념했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발표했다. 그의 시집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타계한 이후에 간행된 것이다.  그 교통사고로 타계한 내용을 보면 1968년 6월 15일, 김수영은 시인 신동문, 늦깎이로 데뷔한 소설가 이병주, 한국일보 기자 정달영 등과 함께 1차 소주, 2차 맥주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는 이병주가 자신의 폭스바겐 차로 모시겠다는 것을 비웃듯 뿌리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 서강 버스 종점에서 내립니다. 인적 없는 어두운 길을 비틀비틀 걸어가던 그를 인도로 돌진한 버스가 뒤에서 들이받고 맙니다. 밤 11시 반경. 급히 적십자병원 응급실로 옮겨지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에 숨을 거둡니다. 4ㆍ19혁명을 노래한 시 중에서 가장 절창인 시 ‘푸른 하늘을’(1960.6.15 발표)에서처럼, 시인은 그렇게 거친 시대에 거친 언어로 부침 많던 한세상을 고단하게 살다 갔습니다.

 

1981년 민음사에서 <김수영 전집>이 발간되었고, 2009년 5월29일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이 출간되었다.

김수영은 죽은 뒤에 더 높이 평가를 받고 유명해졌으며,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현대시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에는 40세 이하 젊은 시인 40명이 김수영에게 바치는 오마주 시집 <거대한 뿌리여 괴기한 청년이여>를 발간하고 40주기 기념문학제를 열었습니다. 2009년에는 미발표작을 포함하여 354면의 <육필시고 전집>이 발간되었습니다. 이처럼 김수영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명입니다. 시인 최두석(한신대)은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 가운데 김수영만큼 주목을 받은 이는 아직까지

없다”고 말합니다. 유작으로 발표된 시 ‘풀’은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입니다. 이처럼 김수영은 후대 연구자나 창작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2015. 9.10 추가>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어려운 일 만나면 늘 이 시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곤 가까운 산에 오릅니다.

이상하리 만큼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면

그 어렸웠던 문제들이 말끔하게 해결되었슴을 느낍니다.

그게 산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담재이 ...

 

결국 그 벽을 넘는 담쟁이

얼마 뒤의 내 모습이다고 믿습니다.

 

      <130925>

 

 

 

                  < 담쟁이, 인터넷에서 옮겨왔습니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요즘 내 마음의 위로가 되는 시를 골랐습니다.

- 마음 한켠에 남은 벽을 넘어야 하는데 그것은 쉽사리 넘기가 쉽지 않습니다.

- 그것은 커다란 벽처럼 느껴지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벽이 됩니다.

- 그래서 담쟁이가 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 아니 담쟁이르 닮고 싶었나 봅니다.

- 닮고 싶은게 아니라 닮으려 합니다.

 

                <090831>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중국 천진은 바닷가 도시입니다.

기후조건으로 염전이 많아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닷가 모래 백사장은 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가본 바닷가 (실제로는 해수욕장이지만) 는 많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게 만리포, 보길도 송정과 중도 백사장 거제도 몽돌해수욕장.

여수 만성리 흑모래, 청산도 , 땅끝 송호리, 대천, 영광  고창, 서산 ,강릉 경포대, 화월포 등등

헤아릴 수 없도록  많지만

 

이 詩 를 통해서 전해들은 제주 성산포

몇번이나 들린 곳이지만 늘 새롭습니다.

어쩌면 이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파란 색 표지로

내 마음도 파랗게 물들어 있는지도 .......

 

요즘은 산보다도 바다가 그립습니다.

그것도 파란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한국의 푸른 바다가...

 

       <130924>  

 

 

    <제주 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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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누군가를 만나면 이 시집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바다색 처럼 파란색 겉표지에

시집 속의 시들은  더욱 더 파랗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 그 마음처럼

사람들이 그리우나  봅니다. 


[그리운 바다 城山浦]를 하나 하나 읽으면
언젠가 처럼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느새 바다 가운데 있을 것 입니다..

                             <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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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바다 城山浦 ]

1. 바다를 본다

城山浦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평생보고만 사는 내주제를
~ 중략 -
城山浦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2. 설교하는 바다 <---- 全文

城山浦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 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디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6. 山 < ------ 全文

城山浦에서는
언젠가 산이 바다에 항복하고
山도
바다처럼 누우리라

11. [절망] 에서는 <-- 全文

城山浦에서는
사람은 절망을 만들고
바다는 절망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절망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절망을 듣는다.

12. 술에 취한 바다 <-- 全文

城山浦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나는 내말만 하고
바다는 제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78. 三百六十五日 <--- 全文

三百六十五日
두고 두고 보아도
城山浦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성산포.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 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지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 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 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 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 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 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 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 나무에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 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 주었다

 

살백육십오일 두고 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 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아침 여섯시
어느 동쪽에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 피운다

 

태양은 수만 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 때에도 바다 옆에서 마신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귀를 찢기웠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 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 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어진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감으면 보일꺼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꺼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꺼다

 

밤으로도 지울 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꺼다

 

 

 

 

일출봉에 올라 해를 본다
아무 생각없이 해를 본다


해도 그렇다 날 보다가 바다에 눕는다

일출봉에서 해를 보고 나니 달이 오른다


달도 그렇게 날 보더니 바다에 눕는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 나니 밤이 된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바다에 누워서
밤이 되어버린다

 

날짐승도 혼자 살면 외로운 것
바다도 혼자살기 싫어서 퍽퍽 넘어지며 운다

 

큰 산이 밤이 싫어 산짐승을 불러오듯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이부자리를 차내 버리고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밤을 피해가듯
넓은 바다도 물 속으로.. 물 속으로
밤을 피해간다

 

성산포 에서는
그 풍요 속에서도 갈증이 인다

 

바다 한가운데 풍덩 생명을 빠뜨릴 순 있어도
한 모금 물을 건질 순 없다

 

성산포 에서는
그릇에 담을 수 없는 바다가 사방에 흩어져 산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은 가장 죽기 좋은 곳

 

성산포 에서는
생과 사가 손을 놓지 않아서 서로가 떨어질 순 없다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 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워 할 것도 없이 돌아 선다

사슴이여 살아있는 사슴이여
지금 사슴으로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꽃이여 동백꽃이여
지금 꽃으로 살아있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슴이 산을 떠나면 무섭고
꽃이 나무를 떠나면 서글픈데

물이여 너 물을 떠나면 또 무엇을 하느냐


저기 저 파도는 사슴 같은데

산을 떠나 매 맞는 것
저기 저 파도는 꽃 같은데
꽃밭을 떠나 시드는 것

 

파도는 살아서 살지 못한 것들의넋
파도는 피워서 피우지 못한 것들의 꽃
지금은 시새움도 없이 말하지 않지만

 

 

 

 

어망에 끼었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수문에 갇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갈매기가 물어갔던 바다도 빠져 나오고

하루살이 하루 산 몫의 바다도 빠져나와

한자리에 모인 살결이 희다

 

이제다시 돌아갈 곳이 없는 자리

그대로 천년만년 길어서 싫다

 

꽃이 사람 된다면 바다는 서슴지 않고 물을 버리겠지

물고기가 숲에 살고 산토끼가 물에 살고 싶다면

가죽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들겠지

 

그런데... 태어난대로 태어난 자리에서

산신에 빌다가 세월에 가고

수신께 빌다가 세월에 간다

 

성산포 에서는

설교는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성산포 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내 영혼의 깊은곳에서

 

 

...... 이렇게 비오는 아침이면 내 마음은 성산포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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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명절이라서 마음을 감추어도 조금은 드러나는 때입니다.

며칠전에는 내 생일이었고 어제는 딸 아이 생일이었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전해지는 슬픈 소식에도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시피 했습니다.

집 근처의 새벽 재래시장이 매일 열린다는 사실을 엊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주말에만 열린다고 이야기 했느냐는 내 물음에 

"어차피 평일에는 못가니까 그리 말했다"는 답이 들여왔습니다. 

그래도 평일에도 열린다고 제대로 이야기해주는게 맞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선택은 제 몫이니가요.

 

업무에서도 나는 그리 말합니다.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취사선택하는 것은 당사자 몫이지만

내가 알려주지 않아 몰라서 못한다면 그 책임은 전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다고...

 

명절 이후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미 결정을 해놓고 체면 때문에 명절 후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한민국 여성들의 명절증후군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남자들이 따스한 말 한마디 할 줄도 모르고

더군다나 아내의 입에서 시댁의 흉이라도 들으면 ....

 

올해 두번의 명절 모두 아내는 홀로 본가 광주 시댁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추석은 처가에도 들리지 못하고 바로 서울로 되돌아 왔으니....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까요?

딸 아이의 고3 수험생의 입장을 고려한 것입니다.

 

아래의 시는 명절을 떠나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130920>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 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줄만―

 

한밤 중 자다깨어 방 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참조> 

 덧붙혀 : 심순덕 시인은  1960년 강원도 평창 횡계에서 유복한 가정의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31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리움에 사무쳐 이 시를 쓰게 되었다

             고 한다.

             2003년에' 한국문인'으로 등단하여

             춘천 수향시 낭송회, 춘천교구 가톨릭문우회, 춘천여성문학회,

             강원도여성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

 
이 시는 좋은생각 100호 기념 100인 시집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2000)에 수록된 후 읽혀지고 그 후로 KBS에 이 시가 방송되면서 많이 알려졌습니다.


엊그제 장모님 병원에 오산 출장가면서  그리고 내려오면서 연달아 들렀습니다.

오래 전에 입원하셨지만 바쁜 회사 일정으로 통 가보지 못하다가 억지로 시간을 내었습니다. 내려 오던 날은 광주 본가에 들러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함께 하였습니다.

혼자 사는 아들이 안스러워인지 당신이 모아주셨던 먹을거리를 또 싸주셔서 거절 못하고 가져 왔습니다 .실제 그 먹을 거리를 먹으면서 당신 생각을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정말 큰 선물인데 싸주시는 마음 속에 나이 먹은 아들에 대한 안쓰러뭄으로 도리어 불효가 되고 있진 않은지 ~~

 

예전 남북 이산 가족 찾기 하실 때6.25 때 돌아가셔서 시신도 찾지 못한 당신의 어머니 아버지를 내내 그리워 하시다가 방송이 끝난 후에도 내내 우셧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신의 서러움이 함께 녹아 났을 것입니다.

예전에 본 시인데 문득 기억이 새로워 함께 나눕니다.

비단 어마니 마음 뿐 이겠습니까???

 

두분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못내  그리운 날입니다.

 

                           <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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