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다음카페 이동활의음악정원>

 

 

생명의 서(書)
                                            
-  유치환  -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灼熱)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烈烈)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本然)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어느 날 어떤 일을 하다가도 간혹 "이렇게 사는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어떤 일들이 계획한대로 진행되지 못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대로는 차분히 나 자신을 되돌아 볼때에도 그런생각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럴 때 마다 이 시가 마음을 잡아 줍니다.

 

이 시는 고민, 좌절, 절망의 끝에서 허무 의식을 떨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서려는 강인한 의지를 노래한 시로 생각됩니다.

 

아마도 청마 유치환 선생은 이 시를 통해서  

삶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번민으로 부터 자기 자신을 스로를 구제하기 위한 곳으로

뜨거운 사막인 아라비아 사막을 설정하고, (그 당시 우리에게 중동은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여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으로 여길 때 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한 고통의 고독을 단호하게 선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의 세계를 택하겠노라고 하는 비장한 의지를  생각하면서

내 스스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언젠가 통영에 갔을 때 청마의 정신적 연인이었다는 "이영도" 시조 시인 집앞도 지나고

중앙 우체국도 들려보는 여유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중학교 국어선생님이면서 기혼자 였던 서른 여덟살의 청마와 

일찍이 21살에 결혼하여 딸 하나에 스물아홉에 남편을 폐결핵으로 사별한 통영여중 가사 선생인 젊은 규수의

사랑은 처음 부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기도 했다. 

1947년 부터 3년동안 매일 보낸 편지...

마음을 열었지만 어쩔  수없는 플라토닉 사랑....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에 관련 된 시를 옮겨 본다.

아래 시의 그 우체통을통영의 중앙 우체국 앞에서 직접 보기도 했다. (그 때 우체통은 아닐게다)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나는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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