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5. 07:30 좋아하는 시

풀 김수영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더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개인 생각>

 

김수영 시인의 시를 살펴보면 강인한 우리 민족을 노래하는데

이 시에서도 역시  강인한 우리민족으로 비유합니다.

특히 그는 저항시인으로서 참여시인과도 같습니다.

 

이 시 역시 바람으로 묘사 되는 독재권력, 외세의 강한 외압에 수난을 당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일어나 웃는 풀을 통해 현실극복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역사의 반복을 잘 아는 시인으로서는 혹시나 되돌아갈 암울한 시기에 대하여 마지막 연에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는 표현으로  풀(민중)의 고통스러운 현실, 부정적인 상황이  반복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실제 이 시 발표 후 자유 민주주의를 짓누르는 게엄령 치하의 군부 독재로 돌아가버리지만 그래도 시인은 3 연에서 처럼 다시 풀이 일어나 웃을 것이라는 희마의 끈을 놓지않고 있습니다. 

 

요즘 제가 가진 화두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130925>

 

<또 다른 생각>
 엊그제 북경에서 중국 본사(?)에서 주최하는 교육에 참석하느라 새벽에 출발하여 저녁는제 내려왔습니다.
이제 교육에 참석하는 사람들중 모르는 사람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제가 직장 생활한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동료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시간여 걸리는 귀가길이 금방이었습니다. 상대성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듯 합니다.  오늘 문득 김수영의 시 <풀>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이기도 하지만 어제 밴드르 통해서 누군가가 올려준 이 시를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마들었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부니 더 이 시가 생각난 것이겠지요.

나는 늘 이 시를 읽으면 “바람보다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서는” 이 대목에서 한번 숨을 가다듬고 다시 읽어 보는데 풀이 주는 이미지가 참 묘했습니다.
우리는 풀밭에서 어느새 잔디밭에 더 익숙해지기는 했고 대부분의 풀은 잡초라해서 뽑아버리는데 그래도 이 땅을 거름지게 만들어주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비 몰아오는 동풍에 먼저 눕고 견디다 드디어 울고 날이 흐르니 울다가 다시 눕습니다. 그것도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더 빨리 일어납니다. 은유적 비유로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만드느데 그의 풀은 쉽게 상처받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흐름에 순응도 하고 그러나 일어나야 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한 지혜와 용기에 대해서 알려주는 김수영의 <풀>입니다.

              <150913>

 

시인 김수영은 1921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선린상고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에 도쿄상대에 입학했다. 그 무렵에 학도병 징집이 있어 이를 피하여 귀국했다가 만주로 건너갔으며 8·15 광복 때 귀국하여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48년,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사화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했다. 가까운 문우이자 애증이 교차한 친구인 시인 박인환은 김수영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박인환이 경영하는 고서점 ‘마리서사’에서 김기림, 김광균 등과 만나면서 50년대 문인들과 폭넓은 교유를 가지게 된다. 명동을 중심

으로 한 한국의 50년대 문학사에서 김수영은 늘 그 중심에 있었다. 30세가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이후에는 전형적인 문필업자가 되어 시 창작, 번역, 산문 기고 등에 전념했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발표했다. 그의 시집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타계한 이후에 간행된 것이다.  그 교통사고로 타계한 내용을 보면 1968년 6월 15일, 김수영은 시인 신동문, 늦깎이로 데뷔한 소설가 이병주, 한국일보 기자 정달영 등과 함께 1차 소주, 2차 맥주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는 이병주가 자신의 폭스바겐 차로 모시겠다는 것을 비웃듯 뿌리치고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 서강 버스 종점에서 내립니다. 인적 없는 어두운 길을 비틀비틀 걸어가던 그를 인도로 돌진한 버스가 뒤에서 들이받고 맙니다. 밤 11시 반경. 급히 적십자병원 응급실로 옮겨지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에 숨을 거둡니다. 4ㆍ19혁명을 노래한 시 중에서 가장 절창인 시 ‘푸른 하늘을’(1960.6.15 발표)에서처럼, 시인은 그렇게 거친 시대에 거친 언어로 부침 많던 한세상을 고단하게 살다 갔습니다.

 

1981년 민음사에서 <김수영 전집>이 발간되었고, 2009년 5월29일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이 출간되었다.

김수영은 죽은 뒤에 더 높이 평가를 받고 유명해졌으며, 그의 이름 석 자는 한국 현대시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에는 40세 이하 젊은 시인 40명이 김수영에게 바치는 오마주 시집 <거대한 뿌리여 괴기한 청년이여>를 발간하고 40주기 기념문학제를 열었습니다. 2009년에는 미발표작을 포함하여 354면의 <육필시고 전집>이 발간되었습니다. 이처럼 김수영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명입니다. 시인 최두석(한신대)은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 가운데 김수영만큼 주목을 받은 이는 아직까지

없다”고 말합니다. 유작으로 발표된 시 ‘풀’은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이고, 우리 시대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입니다. 이처럼 김수영은 후대 연구자나 창작자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입니다

     <2015. 9.10 추가>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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