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다음카페 벽지랑바닥재이야기>

 

손택수 시인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라는 시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서두부분에서는 시 같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대목에 가서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곤 다시 한번 읽었다.

다시한번 소리내어 마음을 불어 넣었다.

 

엊그제 아내가 카톡으로 "선물을 보냈는데 왜 답이 없냐"고 물었다.

다시 보니 사진 너다섯개를 보냈는데

첫 장의 사진은 "아버지와 나"가 주인공이었다.

그리곤 내가 아이들 간난 아이일때 안고 찍은 자신 두어장에

웬 아가씨 사진과 남자 아이가 또래 여자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이었다.

그 아가씨 사진은 백사장이어서 아들 녀석의 숨겨둔 여친인가 했더니 아니란다.

다음 사진의 여주인공이 그렇게 컸단다. 하기야 아들 녀석과 동갑이니?

어렸을 때 엄마 아빠끼리사돈이라고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중학생 때 다시 만낫을 때 어색함이 약간 감돌기는 했지만....

 

그건 그렇고, 첫장의 사진이 여운처럼 남았다.

아내가 물었다 " 그사진 보고 아버지 생각나서 울었냐?"고.

기분이 남달랐지만 눈물까지는 나지 않았다.

.

나도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

남들 처럼 아버지 등을 밀어드리고 싶었는데

그 횟수는 그리 많지 않아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적었다.

마지막에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린 것은 당신 돌아가시기 서너달 전에야 이룰 수 있엇다.

목욕탕에 같이 가시자는 말에 보통 가시지 않겠다고 하시던 분이 그 날은 혼쾌히 길을 나섰다.

집 앞의 오래된 동네 목욕탕! 아버지 돌아가신지 이년 정도 지나서 없어졌다.

 

몸에 물을 끼얹고 아버지의 등을 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냘픈 몸에 푹 쳐진 어깨 더군다나 앙상 마른 몸은....

마음의 아픔을 지나서 전라도 말로 짠해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내 눈물이 더 났다.

난 내내 목욕탕 천장을 보면서 아버지의 등을 밀고

아버지의 몸을 씻길때에는 마주 볼 수 없어 욕탕 바닥만 보면서 씻겨 드렸다.

 

목욕을 마친 후 개운하셨던지 다음에 오자는 말에 맑게 말을 받아주셨다.

그러나 다음에 목욕탕을 재촉하자 나중에 같이 가자고 그러셨는데

혹시 우는 내 모습을 보셨는지,... 

그만 병석에 누우신 후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릴 기회도 없이 그렇게 떠나셨다.

한번만이라도 더 당신 등을 밀어드리지 못한게 마음에 남아 있다.

아마 초라하신 당신 몸을 비록 아들일지라도 보이고 싶지는않으셨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얼마 뒤 아들 녀석과 함께 서울 집 근처 사우니에 들러 내가 먼저 녀석의 등을 밀어주고

나중에 녀석이 내 등을 밀었다. 

그 때도 아버지 생각으로 그 사우나 천장 불빛만 애궂게 쳐다 보았었다.

 

이 시의 마지막이 애잔하다.

 

참 아내가 준 선물 덕으로 그날 아버지를 여윈 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굼을 꾸었다. 

그런데 내용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회사 일로 힘들어 하는 나를 멀리서 보고 계셨나 보다.  

 

                                  <130928>

.

 

아버지의 등을 밀며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문객 정현종  (0) 2013.10.02
도랑가 잣나무 생각 김남극  (0) 2013.10.02
생명의 서(書) ,, 유치환 ...행복  (0) 2013.09.28
풀 김수영  (0) 2013.09.25
담쟁이 도종환  (0) 2013.09.25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블로그 이미지
저의 일상을 통해 사람사는 이야기와 함께, 항암 관련 투병기록 및 관련 정보 공유를 통해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한글사랑(다향)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