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티스토리가 버젼 업되면서 예전 글은 모바일에서 수정이 안된다. PC에서는 수정이 가능할지는 시도해 보지않아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수정히거나 복사를 하면 ....
글의 반은 사라져버리고 복구도 안된다.

올해 4월 중순의 글이니 나름 아래 원칙을 잘 지켜 몸 상태가 항암을 시작한 이후 나름 최고였을 것인데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체력상태가 급전직하로 바닥을 치고있는 상태인듯 하다.

다시 그 당시의 목표와 활동을 되돌아 보았다. 많이 변했다. 제대로 표현하자면 목표와 활동을 못하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바람직스럽지 못한 과정을 올해 7월 부터 지나고 있다.


 
생각.

다향(한글사랑)의 티스토리 . 2019. 4. 18. 23:24


난 암과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맨먼저 아내를 통해 전해 들었다.

아마도 내게 말하기 전에 전날 아내가 먼저 의사에게 전해들었으니 그 충격으로 아내의 그 날 밤은 유난히 길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내의 베개는 눈물로 흥건히 적시다 못해 침대맡까지 흘렀을 것이다.

그날 밤 아내는 한숨도 못자고 그 긴 밤을 꼬박 샜다고 했다. 잠못드는 밤은 평소보다 유난히 길다는 걸 나도 잘 안다.

혼자 남을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장래 걱정.

병원으로 오는내내 내게 '어떻게 말할까?' 고민을 했지만 평소 내 성격을 잘 알기에 막상 내게 알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나마 적었다고 한다.

담담하게 내게 암이라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더 흔들렸음에도 그걸 듣는 나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어서 역시 "나"라고 생각했단다.

되돌아 보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내랑 가볍게 병원을 걷다가 조용한 곳에 이르자 잠시 쉬자고 했다.

첫마디가 "이제 당신이 내고싶어하는 책을 앞당겨 내어도 괜찮겠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동안 내가 갖고있는 소박한(?) 꿈 하나가 정년퇴직하면 그동안 써온 글을 정리해서 책으로 묶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그말을 듣는 순간 아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어느 정도 느낌이 왔다. 순간적인 육감이다.

이어서 아내는 눈물을 머금으면서
내게 당남암이며 수술도 어렵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내 즉답은 ...

무엇보다 먼저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곤 이내 아내의 눈물을 훔쳐주었다.


" 여보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남 부끄럽지않게 살아왔으니 괜찮아. 
각자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될거야.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모습 보여줄께"


그리고 기나긴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남들과 달리 막항이라는 끝도 없는 그런 항해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내 생활의 중심은 . 
늘 마음 편하게, 긍정적으로, 
항암 부작용 발생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체중유지를 통해서 건강하게 
암을 이겨내는 활동으로 바뀌었다


구체적인 목표를 보면... 

1. 내가 맞은 항암제의 독성을 내 몸에서 최대한 빨리 배출할 것 
 -. 최대한 물을 많이 마셔서 신장을 보호하고 잔류 시간 최소화. 
-. 운동을 통해서 나쁜 독소를 땀으로 배출. 
  (폐. 심장 강화 및 혈관 강화  및 활력) 
-. 매일 오분이라도 반신욕하여 혈관을 강화시키고 피부에 잔류하는 항암제 배출.  

2. 면역력을 향상 내지는 최고한 유지할 것 
-. 면역력 스프 매일 먹기 (아침) 
-. 적절한 운동.(매일 걷기. 가능하면 산길 걷기) 
-. 견과류와 신선한 야채 자주 먹기 
-. 고단백 음식 먹기 (매일 달걀1개 이상. 두유와 두부 먹기) 

3. 체중감소를 피하고 최대한 숙면을 취할 것. 
-. 과식하지 말고 자주 먹기. 
-. 충분한 수면취하기. (잠이 오면 낮에도 바로 자기) 

4.활성산소를 피하고 황산화물질을 섭취하는 것. 
-. 적절한 운동 및 항암음식 먹기. 
-. 가능하면 복식호흡. 

5. 완치된다는 굳건한 믿음. 
-. 절대적인 믿음과 긍정적인 생각 갖기. 
-. 신앙생활 및 기도 열심히 하기.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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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월요일(23일)에 세브란스로 외래진료를 다녀왔다. 혈액검사 결과등은 괜찮았다. 다만 아직도 혈압이 좀 낮았고, 생각보다 체중이 많이 줄어서 다소 걱정이 되었다. 그 이유야 뻔하지만 늘 결과가 모든 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두시간 먼저 도착하여 채혈을 하고 X-ray를 찍고서 밀린 진료로 세시간 가량을 병원에서 대기하는데 평소와 달리 많이 피곤했다.

십여일 이상 식욕이 떨어져 식사를 이전의 반 정도에서 머무르니 자연스레 체중이 줄고 기력이 쇠해진 것이다. 비록 검사수치는 나쁘지 않다하여도 이런 모습과 상태로는 광주 어머니를 뵐 수는 없을 것 같다. 도리어 당신께 큰 걱정만 끼쳐드릴 것 같아서이다.

되돌아 보면 그 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피로감으로 거의 누워서만 지냈다. 추운 날씨와 함께 잠재적인 수족증후군의 부작용도 나를 더욱 움추리게 만들었다.

그제부터 좀 움직여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시간마다 10분 정도, 두시간 간격시에는 20분 이상으로 집안이라도 걷기로 작정을 하고 누워서도 허리근육 강화운동을 하기로 했다. 이제 사흘째로 접어드니 조금이나마 활기도 생기고 먹는 것도 좀 나아진듯 하다.
식사를 하거나 식후 약을 먹고서 허리가 아파 바로 눕게되었는데 이제는 이삼십분은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식욕부진 해소는 숙제로 남아 있지만 이건 내게 주어진 시험이자 지속적인 과제인 것이다.

요즘 내가 누워서 하고있는 허리근육 강화 운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 자료를 옮기는 과정에서 좀 거칠지만 그래도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충분하리라 본다.

누워서 할 수 있는 허리근육 강화운동

대표 운동 : 브릿지 업다운. 이게 제일 효과적일듯

매트에 누운 상태에서 무릎을 세우고 발을 붙힙니다. 그리고 엉덩이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브릿지 자세를 만듭니다. 그러다음 엉덩이를 들었다내리는 브릿지 업다운 동작을 반복합니다 1분동안 운동하며 엉덩이가 바닥에 닫지 않도록 합니다.

크런치 버티기

한쪽다리 들기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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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가수 송창식과 늘 함께 나오는 기타리스트 ... 본인도 최고의 테크니션 기타리스트이면서도 늘 함춘호를 앞세운다 

그의 가시나무를 아쿠아스틱으로 연주하는 음을 들어보라.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세히 보니 나와 갑장이며 생일이 5일 빠르다.


하단의 그의 인터뷰와 고백을 자세히 들어보기를 희망한다. 왜 유명한 가수들이 늘 그와 함께 공연하기를 원하는지...



함춘호 
1961년 8월5일생으로 예원중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기타를 시작하였고, (송창식의 기타연주와 노래에 반하여 기타를 시작함) 고3이던 1980년에 가수 전인권을 만나 그룹 '전인권과 함춘호'라는 그룹으로 잠시 듀엣을 하면서 대중음악인의 길로 나섰다. (이 때 처음으로 송창식과는 또 다른 가수가 있다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에 한계를 느껴 좌절을 겪으면서 세션 기타리스트로 최고가 되기로 방향을 전환한다.) 1984년 하덕규가 이끌던 포크록 그룹 시인과 촌장에 합류하였고, 2집 음반 《푸른 돛》의 참여하면서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6년에 발매된시인과 촌장 2집 《푸른 돛》은 2007년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조용필, 양희은, 송창식, 김현식, 신승훈, 임재범, 윤종신, 박정현, 보아 등 유명 가수들의 앨범과 라이브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최정상급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30여년 동안 꾸준히 활동하면서 많은 음악인들과 제작자에게서 인정받는 대중 음악계의 거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함춘호의 연주는 리프(Riff:반복선율)를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과 다른 연주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독특하고 따뜻한 느낌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여긴다.
2014년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재직중이며, 대중음악인 단체인 한국 소리모음회(한국연주자협회) 회장과 기독음악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기타리스트 함춘호 바로보기
https://youtu.be/0btPrSxiP1w

소망콘서트 . 함춘호 세브란스병원 재능기부 바로 보기
https://youtu.be/tqZCopJC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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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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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 봉사하는 활동에 시간을 내어야겠다고 뒤로 미뤄뒀는데 막상 퇴직을 하고보니 이제 현실적으로 육체적인 봉사는 어렵게 되었다. 역시 무슨일이든 마음먹으면 뒤로 미루지않고 쇠뿔도 단김에 빼듯 바로 실천해야지, 바쁘다고 뒤로 미루다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그나마 오랫동안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두어군데 소액이나마 꾸준하게 기부를 해온 단체가 있다. 엊그제 그 중 한 곳에서 안정족인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기쁜 소식지를 보내왔다.

그 내용을 읽어보다가 그 보금자리 마련 이전에 34년 동안 13번 이사를 하면서 겪었던 사연들이 적혀있었다. 이사하는 날 시설 현황을 보고 바로 방을 빼달라거나, 얘기가 잘되어 이사하려는데 계약을 물려달라는 등의 그동언 겪었던 어려움들이 묻어 있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드디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제 이사에 대한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남의 얘기가 아닌 나의 어린시절 기억이기도 하다. 나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집없는 설움, 더 나아가 아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주인에게 당한 설움으로 어머니의 남몰래 숨죽여 우는 것을 몇차례 모른척하고 지켜보아야 했던, 셋방살이의 설움 그대로였다.

국민학교 입학전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광주의 변두리로 어머니, 나, 그리고 동생 둘이랑 함께 이사를 왔다. 지금 어머니께서 사시는 곳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상하다. 어디선가 첫 삶의 터를 잡으면 쉽사리 그곳을 못 떠난다. 나도 직장따라 서울에 처음 정착한 곳애서 근 15년을 셋집살이로 맴돌았으니 ) 이사온 첫날밤 방틈새로 스며든 연탄가스로 온식구가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그때 옆집의 아주머니가 주신 동치미 국물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당시 연탄가스 마시면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하는게 민간 요법이었다. 그래서 그 집을 떠나 같은 동네로 옮겼다. 아이들 셋의 영향으로 몇달 못살고 쫓겨나다시피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집을 얻을 때 아이는 나혼자인 것 처럼 하고 식구수를 줄여 집을 얻고서 이사를 했다. 이사 당일에 나만 함께 이사를 하고 두 여동생은 밤늦게 데려왔다.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주인댁에서 알게되어 그에 대한 잔소리를 했는데 이사가라는 말은 없었다. 주인집에도 아이들이 다섯명이나 되어서인지 이해를 해주었고 또래들이어서 조금씩 나아졌고 거기서 네째가 태어났다. 물론 아이들이 떠들면 떠든다고 주인댁에서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주인은 양반에 가까웠다.

우여곡절 끝에 두어차례 더 이사를 했고(부엌도 없던 행랑채 비슷한 곳에 수돗물도 없이 옹달샘물을 먹던 준 산골집도 거쳤다 ) 그 사이에 네째가 태어났고, 마지막으로 지금 집에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다. 그집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땀으로 지은 집이다. 산밑 산번지의 땅을 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새벽에, 일을 마친 저녁에 땅을 파서 평지로 메꾸는 작업을 했고 당신의 직업을 살려 비록 무허가지만 방세칸을 뚝딱 지었다. 이사를 마친 다음날 어머니는 그날 처음으로 발뻗고 편히 주무셨다 했다. 그 뒤로도 집 뒷편을 파내는 작업이 계속되었고 근 일년만에야 터다운 집이 되었다. 그 사이 상하방 한칸을 더 달아냈고 두어번 축대가 무너져 고생하기도 하셨다. 그래서인지 방을 세내어줄 때 아이들 많은 걸 가리지 않고 세를 내어줬고 그뷴들과 사이좋게 살았던것 같다. 지금도 우리 집을 거쳐간 분들과 왕래도 하고 애경사도 챙기고, 모임도 하는걸 보면 ....

이야기가 다소 다르게 흘렀다.

봉사 이야기를 하고싶었는데... ...
이제는 육체적 봉사는 엄두를 낼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쉽고 씁쓸하다. 은퇴를 하면 이런저런 봉사를 해야지하고 염두에 둔 봉사는 이제 물건너 간 셈일까?

아직도 난 그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년말, 성탄절이 다가오자 그 기부 단체에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어온다.

내가 드리는 기부액이야 소액이지만 그 분들에게는 큰힘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어본다.

어렸을 때 미국 한 할머니에게 매달 5달러씩 후원받은 어느 분의 이야기다. 그 분 역시 그 도움을 잊지않고 페루의 아이들을 계속 후원하고 있다.


기부나 봉사활동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그는

“중간에 후원을 멈추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많은데 일단 한 번이라도 해보길 권한다”며 “망설이면 아무것도 안 된다. 작아 보이는 5달러나 2만~3만원이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난감 기차’나 ‘만년필’처럼 작은 기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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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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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 임재희 기자 = 국민 28명당 1명은 암 진단을 받고 살아가는 암 유병자로 나타났으며 이 중 5년 넘게 생존해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평생동안 암에 걸릴 확률은 35.5%였다.
남성은 위암, 폐암, 대장암 환자가 많았고 여성은 유방암, 갑상선암, 대장암 순으로 많이 발생했다. 해외 주요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암 발생률은 낮고 생존율은 높았다.


엄환자통계 그래프.


◇암 유병자 187만명 중 5년 생존자 104만명
24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 등이 발표한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전국 단위 암 등록 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2017년까지 암 확진 후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암 유병자는 186만7405명(지난해 1월1일 기준)이었다.
2017년 우리나라 전체 인구(5123만712명) 대비 3.6%로 국민 28명 중 1명은 암 유병자에 해당했다. 남자는 3.2%, 여자는 4.1%였다.
특히 65세 이상 암 유병자는 82만 6103명으로 전체 65세 이상 국민(706만 6203명)의 11.7% 수준이었다. 노인 9명당 1명이 암 유병자란 뜻이다.
암종별로는 남녀 모두 갑상선암 유병자가 가장 많아 전체의 21.7%(40만 5032명)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위암(28만9223명), 대장암(25만1063명), 유방암(21만7203명), 전립선암(8만6435명), 폐암(8만4242명) 순이었다.
암 진단 후 5년 초과 생존한 암환자는 103만9659명으로 전체 암 유병자의 절반이 넘는 55.7%였다. 처음 50%대를 넘어선 2016년 91만6880명보다 늘어 첫 100만명대에 진입했다. 추적 관찰이 필요한 2~5년 암환자는 44만6428명(23.9%), 적극적 치료가 필요한 2년 이하는 38만1318명(20.4%)였다.
생존율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5년간(2013~2017년) 발생한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0.4%로 10년 전인 2001~2005년 54.1%보다 1.3배(16.3%포인트) 향상됐다. 위암(18.5%포인트), 간암(15.1%포인트), 폐암(13.7%포인트), 전립선암(13.1%포인트) 등을 포함해 주요 암종에서 이전 5년보다 상대생존율이 증가했다.
암종별 생존율로는 갑상선암(100.1%), 전립선암(94.1%), 유방암(93.2%)의 생존율이 높았으며 간암(35.6%), 폐암(30.2%), 담낭 및 기타담도암(28.9%), 췌장암(12.2%)의 생존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처럼 생존율이 높아진 데 대해 국립암센터 이은숙 원장은 "치료 성적이 굉장히 좋아진 게 큰 이유"라며 "조기 검진으로 조기에 발견되는 환자가 늘어나면서 치료가 잘돼 병을 잘 완치한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여성 유방암 환자가 늘어난 것과 관련해선 "여성들이 사춘기 때 한창 자랄 때 무엇을 먹느냐가 암 발생률과 관련이 있다"며 "유방이 사춘기 때 발육하는데 그때 먹는 게 나중에 유방암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꾸준히 인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암환자 중 위암 가장 많고 폐암·췌장암 증가
2017년 한 해 새로 발생한 암 환자는 남자 12만2292명, 여자 10만9963명 등 총 23만2255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23만1236명 대비 1019명(0.4%) 증가했다.
가장 많이 발생한 암은 위암으로 2만9685명 발생했으며 대장암(2만8111명), 폐암(2만6985명), 갑상선암(2만6170명), 유방암(2만2395명) 순이었다.
2016년과 비교했을 때 암종별 발생자 수는 남녀를 통틀어 폐암이 3위, 췌장암이 8위로 각각 한 단계씩 높아졌고 남자, 여자 각각에서 상위 6개 암의 순위에는 변동이 없었다. 남자는 위암, 폐암, 대장암, 전립선암, 간암, 갑상선암 순이었고 여자는 유방암, 갑상선암, 대장암, 위암, 폐암, 간암 순이었다.
암 발생률을 연도별로 비교하기 위해 연령표준화발생률(2000년 주민등록연앙인구 기준)로 환산하면 인구 10만명당 암 환자는 282.8명으로 전년 대비 6.6명(2.3%) 감소했다. 1999년 이후 2011년까지 연평균 3.7%씩 증가하다가, 2011년 이후 매년 약 2.6%씩 감소하고 있다.
다만 유방암, 전립선암, 췌장암, 신장암은 1999년 이후 발생률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위암, 대장암, 갑상선암, 폐암(남자), 간암, 자궁경부암의 발생률은 최근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인구 고령화 등으로 암 환자 자체는 늘고 있지만 이를 표준화해 암 질환 발생률 자체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암 발생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세계표준인구로 보정한 우리나라 암발생률은 인구 10만 명 당 264.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01.1명)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에 비해 최근 OECD 자료에 따르면 국가암검진사업 대상 암종인 6대암(위암, 대장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폐암)의 2010~2014년 5년 순 생존율은 같은 기간 미국, 영국, 일본 등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내년 암관리종합계획 수립…암데이터 사업 본격화
이날 복지부는 국가암관리위원회를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와 함께 '2020년 국가암관리사업 주요 추진과제' 등도 논의했다.
복지부는 5년마다 암관리법에 따라 수립하는 암관리종합계획 제4차(2021~2025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제3차 종합계획(2016∼2020년)의 성과를 평가하고 국내외 암관리 최신 동향을 반영해 미래 과제 등을 발굴하고 있다. 제4차 종합계획은 내년 하반기 국가암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내년에는 올해에 이어 만 50~74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대장암 검진 시 대장내시경 검사를 1차 검사로 도입하는 방안에 대한 시범사업을 계속 진행한다.
암데이터 사업도 본격화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립암센터, 질병관리본부 등에 분산된 암 관련 데이터를 가명 처리 후 수집·연계·활용하는 사업이다.
복지부 김강립 차관은 "암 조기검진, 치료기술 발달 등으로 전체적인 암 생존율이 증가해 암 생존자의 관리 및 사회복귀 지원이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며 "암데이터 사업을 통해 난치성 암 등에 대한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 등 근거기반 정책과 연구개발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imj@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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