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은 유대인들이 매일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의 하나라고 한다.

이 시편은 짧지만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가장 큰 힘을 준 다윗의 노래이자 기도였다

나도 즐겨 암송한 성경구절이기도 하다.

오늘은 갑자기 이 기도가 간절해졌다.

[시편 23편] 개신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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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호칭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 부터 지금까지 내내 내 호칭은 "아버님"이다. 내 나이가 새파란데도 아버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우니 그 때 마다 낯설고 마음에 거슬렸다.

그러나 한발짝만 뒤로 물러나 생각해 보면 그 간호사 분들의 연령대가 우리 아이들 또래이거나 좀 위였기는 하다. 벌써 내 나이가...

아마 환자 기본 정보에 내 생년월일이 있기에 나름 편하게 부른다는 걸 알면서도 낯설기는 여전하다.

예전 아버지 모시고 병원에 들리면 이버지에게 병원 관계자들이 "아버님" 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남아 벌써 내 나이가 그리되었나하고 놀래면서 웬지 거북스러웠다.

뭐 그렇다고  "환자님" 이나 "어르신" 하고 부르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어색해지는데 어느 순간 병원에 들리면 이제 내 호칭은 "아버님"으로 통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직 젊은데 나이든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처럼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에도 생명이 있고 느끼는 각각의 온도가 있다고 한다. 

예전에 글을 보면서 공감한 적이 있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어 보이는데
노래하는 대중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에 따라 그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한다. 우울한 노래를 부르면 그의 생이 우울한 그래서 비극적인 삶이 되고 긍정적이고 밝은 노래를 부르면 그의 삶 또한 그리된다고...
혹시 좋아하는 가수들을 떠올려보면 쉬 이해가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언어에도 생명과 온도이외에 나이도 있다는 말을 더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부터라도 좀 더 젊고 상큼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그래야 그런 말을 듣는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도 그리될 것이기에...

얼마전까지 대산에서 서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면 열에 아홉번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밝았다.

좋은 일이 없는데도
나를 배려하는 목소리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그 밝은 목소리의 색깔이
나를 덧칠하고 밝은 색으로 물들이기에
기분은 좋다. 아니 좋아진다는 말이 더 맞다.

이제 언어에도 색이 있다는 말도 더해야할까 보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많은 이들이 없는 시간을 쪼개어 병문안을 온다.
초췌한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병문안을 거절하지만
때로는 예고도 없이 불쑥 들어서곤 한다.

친구 한 녀석
소식을 듣자마자 멀리 여수서 한달음길
그나마 막 시작된 투병의 모습이라 다행이다.
내가뭐라고...
나도 그랬을까?
정 그 자체였다.

한 친구...
다른 일로 전화했다가
아프다는 말에
대뜸 하는 말.
염병지랄하고 자빠졌네
빨리 일어나소.
반대였다면  나도 그리 말할 수 있었을까?
난 아니었을거다.
천성이자 그 녀석만의 진심 표현이기에

한 친구가 병석에 들어섰다.
손을 잡고서는 그냥 눈물만 흘렸다.
너무 반가워서라는 말과 함께
다행히 위로와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한 부부가 다녀갔다.
동호회 회원이자 아내도 그 친구의 부인과 친해서 멀리 온 곳이다.
나를 보지않고 그냥가겠다는 데
마침  곤한 잠에서 깨어 환히 웃어주는
내모습에 안심도 되고 좋았단다.

아직도 몇몇 친구는 차마 나와통화를 못하고
아내를 통해 근황을 묻는단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싶은데
차마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전 아내의 언니 즉 처형이 아내와 통화 중에 내 목소리를 듣고싶다했는데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번이나 불러도
답은 없고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막상 멀리로 들리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에 차마 말문이 열리지 않더란다.

대부분 병문안 오눈 이들은 수척해진 내 모습을
바로 보는게 두렵기도 하고 실례처럼 여겨지나 보다.

이렇게 각자 다른 방식의 표현이어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마음들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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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병원에 입원한 날로 한달이 지났다.
이젠 직업이 환자이고
근무복이 환자복이다.

몸만 환자인가 했더니
이젠 마음도 환자가 다되었다.

연대 캠퍼스가 아름답게 단풍으로 물들었다.
내 마음도 그 단풍길을 따라 오르내리 걷는다

요즘은 따사로운 햇살이 늘그립다.
예전엔 얼굴 탄다고 그리 피했는데 이젠 도리어 소매까지 걷어부치고 해를 향해 서서 햇살을 취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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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내 앞에서 짠내나게 굴던 아내가
창문 너머로 저만치서 울고 있었다.

잘 참아내던 아내도 알고보면
아내이자 여자였다.

이제 눈앞에 닥치는 현실적 두려움과
미래에 감당해야 할 외로움의 무게는
막막한 감정과 함께
아내의 마음을 야금 야금 갉아내고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나도
멀리서 눈물이 났다.
잠시 창가 옆에 나란히 멈춰섰다.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단듯이

아내는 다행히도 눈물 머금고 나란히 서있는 나를 보지 못했다.

나도 이내 운동을 핑게 삼아
못본 척 앞으로 앞으로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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