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5월,  회사의 근무지 이동, 즉 여수 공장에서 서울 본사로 올라오면서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동안 서울에 살면서 대부분 소규모 단지 아파트에  전세로 살다가 이제야 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대단지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니 주변의 아기자기한 맛은 사라졌다.
그래도 지은지 3년이 안된 아파트라 묵은 맛은 없어 대단지의 인위적인 삭막함 속에서도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라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놓친게 있었나 보다. 이사 당일은 서울지역의  급작스런 한파로 영하11도에 체감온도는 영하18도였다. 이러한 강추위 속에서 이사를 하면서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화분 속 인도네시아 고무 나무가 그만 얼었던 것이다.

이사한 다음날에야 화분의 위치를 새로이 옮기면서 얼어서 서서히 제빛을 잃어가는 잎들을 보게 되었다.  아침마다 얼었던 잎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급기야 겉모습이 멀쩡해 보이던 잎까지 이미 동상에 걸렸던 것인지 결국 모두 떨어져버려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이사하면서 짐을 옮기는 우선 순위에 밀려서 이사 차량 위에서 마지막 까지 추위에 덜덜 떨다가 가장 늦게서야 집으로 들어왔는데 열대성 나무라 그만 그 강추위에 잎이 얼고만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이 고무나무에 대해 유난히 애착이 많다. 얼마전 본 티스토리 (블러그)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나무는 우리 집에서 최소한 십오육년을 우리와 함께한 거의 한가족과 같은 정이 든 나무다.

그래서 이사중이라 해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해 얼게 만든 것과
혹시나 '이대로 죽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미안한 마음으로 나무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죽은줄 알았던 나무의 줄기에서 살며시 내민 잎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반가웠다.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줄기에서 두어군데 새로이 새움이 눈을 튀우고 있었다.
아마 오래된 줄기에서 나오기에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울 새움(새잎순)이었다
다 떨어진 앙상한 줄기에 이파리없이 줄기에서 솟아났기에 제대로 된 잎으로 자랄려면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미안함과 안타까움은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니 다행이다.

겨울이지만 마음만은 이미 봄이다.
그래야 빨리 자라 제모습으로 돌아올 것 같다.

새로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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