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장기려 

수도꼭지엔 언제나 시원한 물이 나온다. 
지난 겨울엔 연탄이 떨어지지 않았다. 
쌀독에 쌀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세끼 밥을 먹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신다. 
언제나 그리운 이가 있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더 키울 수 있다. 
그놈이 새끼를 낳아도 걱정할 일이 못된다. 

보고 듣고 말함에 불편함이 없다. 
슬픔에 울고 기쁨에 웃을 수 있다. 
사진첩에 추억이 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기쁠 때 볼 사람이 있다. 
슬플 때 볼 바다가 있다. 
밤하늘에 별이 있다. 
그리고… … 세상에 사랑이 있다. 

성산(聖山) 장기려 박사(1911~1995)는 평생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사신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움. 일명 ‘바보 의사’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그는 부산 복음병원의 엘리베이터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야 들어설 수 있는 옥탑방에서 살았다.
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그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집이라고 늘 자랑스러워 했던 그곳에서 송도 앞 바다를 바라보며 쓴 시이다. 

한국전쟁 전 이북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였으며, 전쟁 중 평양의 대학병원에서 밤새워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돌보다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군 버스를 타고서 남쪽으로 내려온 이후 북에 남겨진 아내와 다섯 자녀를 그리워하며 평생 눈물짓는 삶을 살았다. 그 그리움의 눈물이, 고통 받는 이웃과 사회를 향한 사랑으로 승화되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설립하고 치료비가 없는 환자들에게는 야밤에 직원들 몰래 도망가라고 뒷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

수술 전에 항상 환자의 손을 꼭 붙잡고 간절하게 기도한 후에 수술을 했다. 평생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었음에도 평생 혼자 살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이들의 친구로 살았다. 하지만 그는 외롭지 않았고, 평생 집 한 채 없이 병원 사택에서 살았으나 그는 사랑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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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 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느낌]
우리에게 동화작가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솔직한 감성표현으로 마음을 울리기도하고
때로는 따스한 눈물을 흘리게하는 글로
늘 우리를 다독여 주웠다.

아내에게 이 시를 권했다.
아내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여위웠다.
지금 가장 보고싶은 이가 어머니가 아닐까? 한다.

힘들고 외롭고 앞날이 두려울 때
그래도 엄마 품이 가장 그리울 때이기에.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시인 정채봉님과 이 시의 사연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http://jirisanbook.com/221277394063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더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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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나태주 -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모진 말
차마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외롭고 슬프다는 말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 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나태주

시인.충남 서천군(舒川郡) 기산면(麒山面) 막동리(幕洞里) 출생. 1963년 공주사범학교(公州師範學校) 졸업. 1971년 《대숲 아래서》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1973면 《대숲 아래서》(47편 수록)라는 제1시집을 내놓았다. 주요작품으로는 《대숲 아래서》 · 《보리추위》 · 《가을 서한(書翰)》 등이 있으며, 현대시의 난해성(難解性)을 탈피(脫皮)하면서 전통적(傳統的)인 한국 서정시를 계승(繼承),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새여울」시동인회(詩同人會) 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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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2. 24. 17:48 좋아하는 시

뒷굽 허형만


                뒷 굽
                                        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고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멀리 내가 근무했던 천진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 춘절(한국의 설 명절)을 맞아 부모님 계신 한국에서 설을 쇠고 휴가겸 며칠 머무는 날  만났다.

가족이 화곡동에 거주하기에 가까운 지난 명절 때는 연럭이 닿아 NC 백화점에서 만나 가볍게 식사를 했는데 이번에도 연락이 되어서 2개월 전쯤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었다. 식사를 고민하다가 대림동 중국거리에서 만나서 훠궈를 먹자고 했다.  지난번 성당 OB 모임을 한 그곳이 떠올랐다.  아내는 중국음식을 주로 먹는데 다른 곳이 낫지 않냐고 했는데.... 이 말도 일리가 있었다.

낮시간인데도 그 가게는 붐볐다.
지난번 보다는 맛이 좀 덜했다. 아마 낮시간이라는 분위기(술도...)가 주는 영향이 아닐까 한다. 그래도 훠궈 음식이 주는 시간적 여유로 긴시간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하철  대림역에서 헤어졌다.
나는 내일 개인적 일정으로 서산으로 내려와야했기에....

지하철 7호선을 기다리는데
스크린도어에 나붙은 시가 나를 잡았다

뒷굽이라는 시였다.
솔직히 제목보다는 시인의 이름 때문이었다.

허형만...

아래 내가 좋아하는 시에서도 내가 설명했지만 이분은 내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포대 교수로 옮기셨다.
수업 시간에 때때로 자신의 시를 읊고 낭송해주셨다.

눈에 띄는 그 시를 읽는 동안
지하철이 곧 들어온다는  안내음에
바삐 핸드폰 사진기에 그 시를 담았다.

지하철 문이 닫히고
자리에 앉은 나는 차분히 그 시를 읽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둘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한쪽으로만 굽이 닳는다.
아마도 내가 똑바로 걷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걸음걸이 뿐만이 아니라 내 일상 까지도...

사실 잘 나는 모른다.
늘 그렇게 걷다보니  내 걸음걸이가 똑바른지,
삐딱한 지도 모르고  실제 관심도 없다.

문득 시인은 이렇게 습관적으로 이어지는 삶이 옳은지 그른지 궁금했나 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가 몇가지 있다는데
그 중의 하나가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는 기회가 많아진다고 한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이었울까?
그 길이 곧바르지는 않았다.
남들과 비교하면  순탄해보여도
그 사이 사이의 의 구불거림이나 가파름 그리고 나름 낭떠러지도 많았다.
이제 그런 것들에게서 마음 놓을 수 있는 삶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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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1. 21:33 좋아하는 시

첫눈 정호승

요즘 정호승 시인의 시를 자주 접한다.
오늘 이곳에 첫눈은 아니지만 세번째 눈이 제법 매섭게 내렸다.
그래서 일까?
마음이 우울한 날이라서 더 매서웠던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 되묻는다.
아들 졸업 전시회 다녀온 소감을 적고 싶은데 마음만이다.
날이 조금 더 지나면 그 느낌이 점점 줄어들것 같아서 서두르려하지만 잘 아니된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차탁에 있는 홍차를 혼자 내려 마시고 있다.
혼자 마시는 차는 다른거와 달리 청승맞지는 않아 다행이다.
아내가 오면 같이 마실 생각이다.

내게도 첫 눈 오면 만나자고 했던 추억이 있다. 다행히 가까이에 살아서 어긋나지 않고 만났던 것 같다. 그 당시 가난한 연인들에게 첫 눈 오는 날의 데이트는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만날 기회를 만들어 준 축복이었다고만 기억한다.

아래 정호승 시인의 '첫눈'과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시는 내게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첫눈
                            정 호 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등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깅릉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2002/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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