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 1. 21:33 좋아하는 시

첫눈 정호승

요즘 정호승 시인의 시를 자주 접한다.
오늘 이곳에 첫눈은 아니지만 세번째 눈이 제법 매섭게 내렸다.
그래서 일까?
마음이 우울한 날이라서 더 매서웠던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 되묻는다.
아들 졸업 전시회 다녀온 소감을 적고 싶은데 마음만이다.
날이 조금 더 지나면 그 느낌이 점점 줄어들것 같아서 서두르려하지만 잘 아니된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아내를 기다리면서
차탁에 있는 홍차를 혼자 내려 마시고 있다.
혼자 마시는 차는 다른거와 달리 청승맞지는 않아 다행이다.
아내가 오면 같이 마실 생각이다.

내게도 첫 눈 오면 만나자고 했던 추억이 있다. 다행히 가까이에 살아서 어긋나지 않고 만났던 것 같다. 그 당시 가난한 연인들에게 첫 눈 오는 날의 데이트는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만날 기회를 만들어 준 축복이었다고만 기억한다.

아래 정호승 시인의 '첫눈'과 '첫눈 오는 날 만나자'라는 시는 내게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첫눈
                            정 호 승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등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깅릉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2002/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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