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곁에서      
                                  조태일

온갖 것이 남편을 닮은
둘쨋놈이 보고파서
호남선 삼등 열차로
육십 고개 오르듯 숨가쁘게 오셨다.

아들놈의 출판 기념회 때는
푸짐한 며느리와 나란히 앉아
아직 안 가라앉은 숨소리 끝에다가
방울방울 맺히는 눈물을
내게만 사알짝 사알짝 보이시더니

타고난 시골 솜씨 한철 만나셨나
산 1번지에 오셔서
이불 빨고 양말 빨고 콧수건 빨고
김치, 동치미, 고추장, 청국장 담그신다.
양념보다 맛있는 사투리로 담그신다.

- 엄니, 엄니, 내려가실 때는요
   비행기 태워 드릴게.
- 안 탈란다, 안 탈란다, 값도 비싸고
   이북으로 끌고 가면 어쩔게야?
 
옆에서 며느리는 웃어쌓지만
나는 허전하여 눈물만 나오네.

 

 어머니를 찾아서

                       조태일
이승의
진달래
한묶음 꺾어서
저승 앞에 놓았다.

어머님
편안하시죠?
오냐, 오냐.
편안타, 편안타


[군더더기.개인 소감]

엊그제 가벼운 그러나 조금은 난이도가 있는 시술로 가까운 대학병원에 입원한 첫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조심스레 안부를 여쭙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은 달랐습니다. 어디 편찮으신가? 여쭤보아도 "이상없다." " 아무일 없다."라는 말씀 뒤에 "왜 목소리가 이상하니?"라는 되물음으로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전화기 너머로 역력해 보였지만 더이상 묻지는 않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곤 나도 병원에서 퇴원했기에 이제는 사실대로 말씀드리는게 낫겠다고 판단하고서 " 실은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고 말씀드렸더니 깜짝 놀래셨다. 일단 정상이라는 말에 안심이라고 하시면서 그날 당신도 피부에 뭐가 돋아 병원 진찰에 혈맥이 터진것 같다는 의사의 일차 진단에 내내 걱정하시다가 오늘에야 혈액검사에 이상이 없다는 검사 결과를 받고서 이제야 당신도 아들인 제게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혹시나 아들이 걱정하실까봐서 숨기신 것이다. 서로가 걱정할까 봐서  서로를 위하여 말을 아끼다가 좋은 소식으로 전하는 것이다. 자식의 걱정조차도 걱정하시는 부모의 사랑일게다.

그러다 언젠가 본 조태일 시인의 어머니에 관한 시가 떠올라 이리로 옮겨보는 것이다

이 시는 곡성 태안사 출신으로 자식이 보고 싶어 상경한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시인)의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조태일]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에 반대하는 시를 발표하고 여러 차례 옥고를 치러 '저항시인'으로 불렸다. 1962년 광주고등학교, 1966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들어 만학의 길에 나서 경희대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학위(1985), 박사학위(1991)를 받았다.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1964년에는 시 〈아침선박〉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해 김지하·양성우·김준태 등을 등단시켰다. 그러나 〈시인〉은 창간 1년여 만에 당국의 압력으로 폐간되었다. 1974년에는 고은·백낙청 및 신경림·염무웅·박태순·황석영·조해일 등과 함께 민족문학운동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을 주도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87년 9월 17일 창립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모체가 되었다.

1974~89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간사, 1994~9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 1998년 이후로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교육자로서도 역량을 발휘해 1989년 이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1994~99년 예술대학장을 역임했고
1999년 간암으로 사망. 곡성 태안사 입구에 시인의 기념관이 있다.

'소주에 밥을 말아 먹는 시인'으로 불릴 만큼 술을 즐겼던 그는 호탕한 성격만큼이나 남성적이고 힘있는 시를 남겼다. 등단 이후 시집 〈식칼론〉(1970), 〈국토〉(1975), 〈가거도〉(1983), 〈연가〉(1985), 〈자유가 시인더러〉(1987), 〈산속에서 꽃속에서〉(1991) 등을 펴냈는데, 특히 〈국토〉는 민족주의와 민중의식을 고취시키는 작품을 실어 1970년대말~80년대초 판매 금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1995)로 제10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창비시선 131) 1995년 조태일 작품.

그의 남성적인 시 세계는 8번째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1999)에서 어린시절의 자연과 그 속에 깃들인 어머니의 기억, 동심 등을 반복해서 노래해 변화한 면모를 보여주어 주목을 받았다. 그밖의 저서로 〈시 창작을 위한 시론〉(1994), 〈시인은 밤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1995), 〈알기 쉬운 시 창작 강의〉(1999), 〈김현승 시정신 연구〉(1998) 등이 있다.

1991년 전라남도 문화상, 1992년 편운문학상, 1993년 성옥문화상, 1995년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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