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12.19 퇴직을 정식으로 알리다.
  2. 2014.04.24 자화상..... 서정주
  3. 2013.10.10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지난달 중하순에 퇴직하기로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을 아주 가까운 형님과 지인 몇분께만 살짝 소식을 전했다.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많이 아쉬워 하시면서도 내 결정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면서 격려를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어머니께도 말씀을 드렸다.
당신 역시 아들이 복직해서 근무하는 것에 '잘 했다.'고 동의하셨음에도, 마음 한켠으로는 내내 짠하셨는지 이번 결정에는 지난번 보다더 밝고 큰 목소리로 '잘 했다.'라고 화답을 해주셨다.

회사 게시판에 퇴직인사를 올리려다,
가까운 동료들에게 메일로 인사를 드리는 걸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오늘에야 퇴직인사 메일을 보냈다. 연이어 답장 메일이 오고 연달아 문자와 전화가 온다.

많은 이들이 항암 투병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걸로 알아 건강걱정과 아쉬움을 전한다. 그러나 내마음은 홀가분하다. 내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아쉬움은 없고 홀가분함으로 마음이 도리어 가볍다.

 

어찌되었든 퇴직 인사 메일에는 간결하게
서정주 시인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라는 시로 내 마음을 대신하여 보냈다.

실제 이 시와 김시천 시인의 "안부" 중 '어떤게 내 마음에 더 가까울까?' 고민하다가 "안부"를 뒤로 미루고 서정주 시인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로 결정을 한 것이다.

내가 보아도 이 시가 한뼘은 더 내 마음에 가까웠다.

오후 늦으막 시간 정년 퇴직자 기념식을 마치고 부서원이 모여 그분들 외에 올해 말로 회사를 그만두는 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또 다른 소감을 말하라고 해서
김시천 시인의 "안부"를 낭독하는 걸로 소감을 대신했다. 잠시 감정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전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오늘은 본 의사결정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준 아내와 함께 걷던 올해 봄 벚꽃길 사진을 올려본다.

앞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고 험해도
아내와 함께라면, 이 꽃길을 걷던 마음으로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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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를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고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시건설 7월호 1939>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이다.

 

스물셋에 쓴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 독자의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살아온 일생은 양지만을 쫓았으나,

시인의 관점으로만 보면

한국 서정시, 우리의 살아있는 전통신화적 그리움으로 살아있는

그의 작품의 영향력을 무시하고서는 한국 현대시와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

그의 처절한 고백 "애비는 종이었다" 로 시작되는 이 시는

스물세살의 나이에서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으련다"고 다짐아닌 고백을 한다.

아마 이런 다짐이 그를 양지로만 좇게 만든 것은 아닐련지!

 

실제 그의 아버지는 종이 아니라 마름이었다고 하는데 ...

시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노래이기에.

시적 진실을 그는 적절히 활용하여 아름답고 시리도록 표현해 낸다.

노년 그의 제자중 한명을 잘 았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한 때 유명한 시인을 꿈꾸었던 그였는데.....

 

아무튼 다시 읽어도 좋은 시이다..

 

그중에 한구절을 고르라면 난 단연코

스물세해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었다"라는 대목이다.

 

나는 다시 묻는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 일까?" 라고

 

 

온 나라가 슬픔 속에 젖어 있다.

나도 어느새 기성세대를 지나서 구 세대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힘없이 .....

 

누군가의 세월호 참사의 뼈있는 한마디를 더하여 얹어 놓는다.

 

Ein_Gespenst@Nein_Danke

침몰한 세월호 뿐이 아니라 , 어쩌면 한국사회전체가

침몰하고 있으며, 우리는 "침착하게 제자리를 지켜라"라는

윗사람들의 말만 믿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을 숨길 수가 없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누군가의 SNS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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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바램 처럼 아들 녀석 수능 마치고 대학 입학전에

비록 무등산이나 지리산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둘이서 인왕산에 함께 올랐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일학년 일하기 마친 여름 방학에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가장 길면서 아기자기한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아침 부터 근 하루 종일 함께 걸었습니다.

때로는 아무 말없이 침묵으로 걷기도 하고, 서로의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앞서거니 쥣서거니 하면서 그렇게 함께 걸었습니다.  도중에쉬면서 막걸리도 한잔 하고 식사도 하고

아무데나 마음 가는 곳에서 함께 쉬면서 ...

물론 그 쉬는 자리도 알고보면 순전히 제가 정한 곳이지만 (여러번 걸었기에 19.3 KM 코스가 마치 제 눈 속에 파로나마 처럼 선명합니다.)

 

서로 가갖의 DSLR 카메라로 똑 같은 대상을 찍이서 구도를 비교해 보기도하고

각자 마음에 드는 곳을 찍어서 자랑도 하면서  그렇게...

전공이 예술 계통이라 그런지 사진 구도를 몇가지 알려주니 금새 저보다 더 짤 찍은 사진 몇장이 보이기도 했습ㄴ다. 

 

요즘 며칠 동안 addidas (아디다스) 보라색에 노란끈 운동화를 신고 다닙니다.

아들 녀석이 신던 신발인데 녀석 발이 크다 보니 내 발 크기에 맞는 신발로 남아

녀석이 신지 못하기에 이제 내 몫이 되었다가 이곳 까지 함께 왔습니다.

그 신발을 내려 보면서 아들 생각을 했습니다.

딸은 언제든지 목소리 듣고 싶으면 전화도 하고, 대로는 걸어주는 전화도 받는데

녀석은 그럴 수 없어서인지 요즘 생각이 많이 납니다.

녀석 휴가 나올 때에는 나도 시간을 맞추어 지리산 둘레길

아니면 녀석의 할아버지 아니 내 아버지와 함께 걸엇던 무등산 길을 같이 걷고 싶습니다.

 

                    <131009>

 

 

무등(無等)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樓)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고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참고) 갈매빛 - 초록빛,녹색


 

 

 

미당 서정주 시인은 내게 애증이 있는 시인이다.

그렇다고 나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시인으로서만 봐야 되는데

詩(시)라는게 항상 시인의 삶을 떠나서 읽히울 수는 없는 법.

시대가 시인을 남들어내고 성장시킨다고 하지만

개인의 삶에 대한 자세와 의식은 개인차 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산에 오른 기억이 없다.

지리산도 부르고, 무등산도 부르는데 난 갈 엄두를 못내고 있다.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 같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죄의식(?) 속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 한 군데 미안함이 스며나는 현실이다.

 

큰 아이 수능 끝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날 함께 오르고 걷고 싶은 길이다.

 

그 동안 미뤄 두웠던 그 산!

내가 아버지와 함께 걷던 그 길을 내 아들 녀석과 걷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무등산에 올라도 그 길 만큼은 내내 비워두었었다.

 

요즘은 기분은 웬지 올해는 모두 다 좋은 일만 그득할 것 같은 예감과 상상이다.

그런 마음이 갈수록 짙어진다. 

 

                  <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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