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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14 우동 한 그릇
  2. 2016.01.11 마음먹기
  3. 2015.12.21 하느님의 부인이세요?
  4. 2015.12.17 " O O 답게 살겠습니다."라는 평신도 실천운동
  5. 2015.12.10 감사와 기도 그리고 행복
-언젠가 읽었던 글 다시 읽는데도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을 적시게합니다...


「우동 한그릇」(一杯のかけそば)

구리 료헤이(栗良平)의 1988년 발표한 단편소설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년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날은 일 년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채
주방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여자는,
"이제 두 시간도 안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하고
혼잣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출입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 된 체크 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 머뭇 말했습니다.

"저…우동…    1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네... 자~, 이 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갑작스런 주문을 받은 주인 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동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에 우동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그는 세 사람의 행색을 보고 우동을 한 그릇밖에 시킬 수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을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0엔(한화 약 1,500원)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사람에게
주인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또 다시 12월 31일 섣달 그믐날을 맞이했습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 지나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본 순간,

일년 전 섣달 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자는 그 날처럼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말했습니다.

"저…우동…1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 본 주인 아저씨는
"네엣! 우동 1인분!"
그러고 나서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물을 끓이고 있는데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 3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둥근 우동 하나 반을 더 넣어 삶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의 두 부부에게 들려왔습니다.

"아…맛있어요…"

동생이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고 씹으며 말했습니다.
"올해에도 이 가게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동생의 먹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형이 말했습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인 내외는 순식간에 비워진 우동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번에도, 우동값을 내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그날 내내 되풀이한 인사였지만
주인 내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크고 따뜻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밤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가 지나자 벽에 붙어 있던 메뉴를 차례차례 뒤집었습니다.

금년 여름부터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가 150엔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번 식탁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졌습니다.

이윽고 10시 반이 되자,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와 두 아들,그 세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우동…2인분인데도…괜찮겠죠?"
"넷!…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세 사람을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거기에 놓여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주방을 향해서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2인분이요!"

그 말을 받아 주방 안에서 이미 국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던 주인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 우동 2인분, 금방 나갑니다!".

그는 끓는 국물에 이번에는 우동 세 덩어리를 던져 넣었습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 해보다도 활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방해될까봐 조용히 주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인 내외는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세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시로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들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무슨 말씀이세요?"

"너희들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킨 사고로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일부는 보험금으로 보상해 줄 수 있었지만 보상비가 모자라 그만큼 빚을 얻어 지불하고
매월 그 빚을 나누어 갚아왔단다."

"네…알고 있어요."
"그 빚은  내년 3월이 되어야 다 갚을 수 있는데, 실은 오늘 전부 갚았단다"
"네? 정말이에요 엄마?"
두 형제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래, 그 동안 형 시로도는 아침 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 주었고,
동생 쥰이는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 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단다.
그것으로 나머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계속할 거예요."
"저도 신문 배달을 계속할래요! 쥰아, 우리 힘을 내자!"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어머니는 아이들의 손을 움켜쥐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걸 보며 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 쥰이하고 제가 엄마한테 숨긴 게 있어요.
그 것은요… 지난 11월에, 학교에서 쥰이 수업을 참관하러 오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리고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작문대회에 나가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그 작문을 쥰이 읽기로 했다고요,"

"그래…그랬었구나…그래서?…"
"선생님께서 작문 시간에, '나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게 했는데
쥰은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냈대요.

지금 그 작문을 읽어 드리려고 해요.
사실 전 처음에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는,
여기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쥰이의 작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 지금부터 읽어드릴게요."

시로도는 교복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두었던 종이 두 장을 꺼내어 펼쳤습니다.
쥰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시로도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낭랑하게 우동 가게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아빠는 운전사고로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위해 보험금으로도 부족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형은 날마다 조간과 석간 신문을 배달해서 돈을 벌었다.

아직 어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엄마와 형은 나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나는 저녁이면 시장을 봐서 밥을 해놓는 일을 했다.
내가 해 놓은 밥을 엄마와 형이 맛있게 먹는 걸 볼 때  나는 행복하다.

나도 우리 식구를 위해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엄마의 겨울 코트는 낡고 해어졌지만 해마다 꿰매어 입으셔야 했다.

그러던 중에 재작년 12월 31일 밤에 우연히 한 우동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우동 국물의 냄새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우리에게 우동을 사 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우리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가게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망설이다가 딱 한 그릇만 시켜서 셋이서 같이 먹자고 엄마한테 말했다.
한 그릇이라도 우리에게 우동을 먹이고 싶었던 엄마와, 우동 국물 냄새에 마음이 끌린 우리 형제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을 시간에 들어와 우동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는 우리가 귀찮을 텐 데도
주인 내외분은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주인 내외는 양도 많고 따뜻한 우동을 우리에게 내놓았다.
그러고나서는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큰소리로 말해주는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 후 작년 섣달 그믐날에도 그  우동 가게를 찾아갔다.

여전히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서 우동은 한 그릇밖에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날도 마찬가지로 주인 내외분은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대접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도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힘들어 보이는 손님에게 "힘내세요! 행복하세요!" 하는 말 대신
그 마음을 진심으로 담고 있는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일본 최고의 우동 가게 주인이 되겠다고..."

주방안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인내외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한 장의 수건을 서로 잡아당기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연신 닦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해마다 12월 31일 섣달 그믐날이면 밤마다 이들 모자가
우동을 먹으려고 올 것이라는 기다림 속에 <북해정>은 입소문까지 널리 퍼져 많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해 12월 31일 밤 10시 30분이 지났을 무렵에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습니다.

코트를 손에 든 양복 정장 차림의 두 사람의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공교롭게 만원이라 빈자리가 없어서~"라며 여주인이 거절하려고 했을 때...

기모노 차림의 부인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 두 청년 사이에 섰습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십 수년간 기다림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 젖히고,
그 옛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해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토의 은행에 다니고 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삶 가운데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 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뜨거운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 흘렀습니다.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손님 중에 한 사람이
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큰 소리로,

"여봐요 여주인 아줌마! 뭐하고 있어요?
10여 년 넘게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밤의 2번 <예약석>이잖아요,
빨리 안내해요~, 안내를!"

손님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여보! 2번 테이블 우동 3인분!"

늘 무뚝뚝한 얼굴로주방에서 눈물을 적시던 주인은,
"네엣! 우동 3인분!"하며 더욱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10여 년을 기다렸던 손님을,예기치 않게 맞았기에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게 밖에서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거센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어 창문에 비친<북해정> 이라고 쓰인 옥호막(屋呼幕)이
한 발 앞서 불어제치는 정월의 칼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1988년 구리 료헤이(栗良平/1954년 북해도 출생) 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은
당시 일본열도를 눈물로 강타하며 국회회의장에서까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2016. 1. 11. 23:50 짧은글 긴여운

마음먹기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

마음은 모든 것을 만들고 다스린다.
나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끌고 가는 마소 뒤의 짐수레처럼 괴로움이 그 뒤를 따른다.
깨끗한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형체에 따르는 그림자처럼 즐거움이 그 뒤에 있다.
  - 법구경 -

 

‘본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라고.
지옥이든 천당이든, 그것은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지려고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셰익스피어 -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아주 옛날 내게 소박한 꿈 하나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집밖 모임에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오른 손에는 꽃 한송이 왼손에는 길거리 가게에서 산 붕어 빵 한봉지를 들고서

대문을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돈 때문에 누군가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것인데

그 땐 정말 누구나가 꿈꾸는 소박한 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렇게 세상이 살기 어려워진 것인지?

아니면 그 시절 내가 정말 어리석었는지 분간이 안갑니다.

아내가 짐 정리차 천진에 온지 십일이 다되어 갑니다.

그런데 연이은 술 약속으로 (딱 한번만 하자고 했음에도... 마음대로 안되는 가 봅니다.)

서울보다도 더 심심한 저녁시간이 되었다고 살짝 꼬집습니다.

이미 예상을 하였음에도 심심하기도 하고, 내 건강을 위해서 하는거라는 거 잘 압니다.

저도 이제 한국으로 가는 날이 딱 일주일 남았습니다.

시원 섭섭하다는 마음이 서서히 짙어오고 있답니다.

어찌 되었든 만 3년이면 그것도 나이들어서 이니 감회가 새롭지요.

거의 마무리 한 상태입니다.

마무리라 해보았자 직원들과 성당 모임 그리고 두어군데 아쉬운 분들을 제외하면

실제는 전무라고 보아도 무방한데 참 저도 무심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토요일에는 한국에서 대학 동기 친구가 만사제쳐놓고 천진에 와서 함께 운동도 하고

중국 음식에, 차도 마시면서 아내랑 함께 얘기를 나누다 어제 귀국했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좋습니다.

 

 각설하고

아주 오래 전에 아래 글을 보았는데 다시 메일로 받아서 또 읽습니다.

다시 보아도 아이의 되묻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하느님의 부인이세요?

 

몹시 추운 12월 어느 날 뉴욕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열 살 정도 된 작은 소년이 브로드웨이 가의 신발가게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맨발인 소년은 치아를 부딪칠 정도로 심하게 떨면서 진열장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한 부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꼬마야! 왜 그렇게 진열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니?

 

“저는 지금 하느님에게 신발 한 켤레씩만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에요.

우리 가족이 여섯이거든요.

 

부인은 소년의 손목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인은 우선 여섯 켤레의 양말을 주문하고, 물이 담긴 세숫대야와 수건을

빌려, 가게 뒤편으로 소년을 데리고 가서 앉히더니, 무릎을 꿇고 소년의

발을 씻긴 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주었습니다.

 

부인은 점원이 가지고 온 양말 중에서 한 켤레를 소년의 발에 신겨 주었습니다.

소년의 차가운 발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인은 신발 여섯 켤레도 사 주었습니다.

남은 신발과 양말은 도망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소년의 손에 꼭 쥐어

주면서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꼬마야, 의심하지 말거라. 자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니?

 

소년은 엷은 미소를 띠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부인도 살짝 소년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그녀가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소년이 부인의 손을 잡고는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눈가에 물기를 가득 머금고 물었습니다.

 

“아줌마가 하느님의 부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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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0) 2015.12.08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저는 천진 성당에서 레지오 활동을 하고 있는데 두세달 전 대구 교구에서 전해져 온

" O O 답게 살겠습니다." 라는 선언문을 읽고 실천하는게  저희 레지오 활동 지시 사항으로 추가하도록 전달 받았습니다.

(중국 천진 성당 레지오 마리에 쁘레시리움은 대구 의덕의 거울 쎄나뚜스 소속이랍니다. )

 

그런데 이 "OO 답게 살겠습니다," 라는 약속 글이 참 좋은데

선언문 아래 실천사항이 더욱 마음에 듭니다.

 

신앙인으로서

가정 공공동체, 교회 공동체, 직장 공동체 사회 공동체 로서 실천 약속입니다.

 

그래서 옮겨 놓는 것입니다.

  


< 답게살겠습니다의  전문 >

 

 

취 지 문

 

과학의 진보와 기술의 혁신에 따른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회변화로 우리 사회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 속에 불신과 갈등이 늘어나고, 생명의 문화가 아닌 죽음의 문화가 만연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인의식 결여, 불공정한 룰, 금전만능풍조, 부정부패 등의 심각성이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활동이 지지부진하여 우리의 미래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이에 신앙인, 특히 천주교 신자들이 앞장서서 각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기성찰과 변화를 통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실천운동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때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이후 한국천주교회와 한국사회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자는 취지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은 우리 교회와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는 한편, 분열과 갈등을 넘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밝고 건강한 사회로의 변화를 도모하며, 또한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생활 속에서 복음화의 사명을 완수하는 실천운동으로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이에 오늘 대구대교구 평신도위원회와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우리 교회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선 언 문

 

우리는 바로 나 자신의 변화에서 우리 교회와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평신도들은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한 신앙인으로서 우리 자신부터 쇄신하고자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하며, 다음의 사항을 실천할 것을 선언합니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가정에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사랑하겠습니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교회에서 친교와 나눔, 봉사의 삶을 살겠습니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겠습니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사회에서 공동선을 추구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20159 월 20일

 

대구대교구 성건성당 평신도 일동

 

실천사항

가정공동체

신앙인답게 배우자를 신뢰하고 존중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자녀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키우겠습니다.

신앙인답게 가족 간에 대화를 많이 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성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미사에 참례하겠습니다.

 

교회공동체

신앙인답게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겠습니다.

신앙인답게 형제·자매와 친교를 나누고, 공동체 모임에 참여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하느님 말씀을 봉독하고, 새기며 살겠습니다.

신앙인답게 성사생활에 충실하고 복음화에 앞장서겠습니다.

 

직장공동체

신앙인답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신앙인답게 먼저 인사하고, 칭찬하며 배려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하겠습니다.

 

사회공동체

신앙인답게 공동선을 추구하고, 정의와 평화의 일꾼이 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하느님의 창조물인 환경을 아끼고 보호하겠습니다.

신앙인답게 시간, 재능·재물을 나누는 나눔의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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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소박한 노인의 감사기도^^*


1918년, 미국 미네소타 주 보베이(Bovey)라는
작은 탄광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릭 엔스트롬 (Eric Enstrom)입니다.

어느 날 아주 백발이 성성하고 세상사에 몹시 지쳐보이는
야위고 남루한 한 노인이 보잘것 없는 신발 털개를 팔러 왔습니다.

그 노인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어와 잠깐 쉬고자 했습니다.

몹시 시장했던지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소박한 빵과 스프를 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진사인 엔스트롬 씨는 그 모습을 보고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작은 것에도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초라한 그 노인이 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엔스트롬 씨는 그 노인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노인은 세상적인 것들을 많이 갖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구나.
그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비록 그 노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소박한 감사기도 속에서 그 노인이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흑백사진을 보고 엔스트롬 씨의 딸 로다 나이버그(Rhoda Nyberg)도
큰 감동을 받아 이 사진을 유화로 그렸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감사 기도하는 노인의 모습을 그린 유화작품입니다.
그 그림이 아래의 그림입니다.

엔스트롬씨는 이 사진을 통해 당시 세계 제1차 대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감사할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미네소타 사진전에 출품하였습니다.

삶에 지친 노인이 빵 한조각과 스프를 가지고도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그림은 미네소타 주의 사진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 그림의 제목은

“The Grace”, 바로 “은혜” 또는 “감사의 기도”라고 합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는 작은것에 감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가난해도 어려워도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많이 갖으면 감사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남들보다 많이 갖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성공하고 잘 나가면 감사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감사는 결코 그리 거창한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더 큰 것을 받아야만 감사한다면,
너무도 특별하고 엄청난 것을 누릴 때만 감사한다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기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그림에 나온 백발의 노인처럼
내가 받아 누리고 있는 작은 것들에 대해 감사부터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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