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잣대

행복(幸福, 영어: happiness)은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안심해 하거나 또는 희망을 그리는 상태에서의 좋은 감정으로 심리적인 상태 및 이성적 경지를 의미한다.

 

 

행복의 잣대라 제목을 붙혀놓으니 교육 효과로 인해서인지 무언가 수치화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는 것을 보면 직업병 수준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사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추구하는 게 달라서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곁에 두고서 멀리 찾아나선 동화는 성인이 되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전에 누군가의 글에서 아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어서 찾아 옮겨본다.

(누군가는 카스 친구 박종국님이었다)

 

[이하 옮기는 글]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영국의 어느 일간지가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라는 제목으로 현상모집을 했다. 거기에서 1위로 당선된 일이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였으며, 2위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엄마’이고, 3위가 ‘큰 수술을 가까스로 성공하고 막 수술실을 나서는 의사’였으고, 4위가 ‘작품의 완성을 앞두고 콧노래를 흥얼대는 예술가’였다.

 

이런 순위로 행복의 등위를 매겨놓은 데 공감하는가?

어린이가 모래성을 쌓는 일을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하찮은 짓에 지나지 않는다. 불과 한두 시간 지나면 파도가 씻어가 버린다. 그러나 아이들한테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 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을 쌓기 때문이다. 또한 어머니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일,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 예술가가 자기 정열을 쏟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는 일 자체가 그들의 마음을 담뿍 쏟는 즐거움이기에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아이의 위치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의사는 의사의 위치에서 자기가 하는 능력범위 내의 일에 정성껏 노력한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행복을 맛본다. 또한 아기를 목욕시키면서 그 아이를 대통령이나 재벌총수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없다. 

의사도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면뿐이고, 예술가도 자기의 혼을 심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는 편작의 명성이나 일확천금을 노리겠다는 욕망을 갖지 않는다. 나중에 그런 명예를 얻었다면 그것은 과정에 충실하였던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경우 다같이 엉뚱한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볼 때 행복을 소망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하는 일 자체가 하고픈 마음을 담뿍 담는 즐거움의 대상이어야 하며,

둘째,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어야 하고,

셋째, 엉뚱한 욕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행복이 아무리 추상명사로 운위되지만, 행복은 결코 먼 데, 높은 데 위치한 뜬구름이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 가까이에,  큰 일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차라리 하찮은 데에서 수두룩하다. 다만 쉽게 찾아 느끼지 못할 뿐이지 옆에, 이웃에, 자기 가슴 속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무지개를 잡는다고 해서, 희망새를 잡았다고 해서, 장관,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은 아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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