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아들과 제법 긴 통화를 했다.

 

부자지간이라는게 잔정이 많고 감성적인 딸과는 또 달라서

같은 남자여서 인지 서로가 긴 말을 하지않아도 무언가 중요한 일들은 이신전심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대화는 늘 단답형이기 일쑤다.

아무래도 남자들만의 공통적인 속성도 있고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생각하는 아들의 기대치가 다른 것도 이유중의 하나일게다. 아니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도 한 몫을 할 것이다.

 

돌아보면 내 아버지께서도 그러하셨고 나 또한 그런 셈이다.

예전에  아버지와 나의 전화 통화를 듣고 있던 아내는 늘 되물었다.

"무슨 전화 통화가 그러냐고?" 너무 재미었고 무미건조하다고...

내가 전화를 넣어도 마찬가지였다. "

"잘 있지?. 집 사람이랑 애들은 건강하고?"

나 역시 " 예. 다 무탈하시고 건강하시죠?" 하면 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화 통화를하더라도

대부분 내가 묻고 녀석은 짧게 답하는 방식인데 어제는 좀 달랐다.


이번 통화에서는 난 묻지 않았고 많이 들어 주었다.

약간의 술기운도 빌어서 내게 평소 가진 고민과 생각들을 얘기한듯 하다.

이것 또한 아버지께 쑥스러운 얘기를 할 때에 내가 사용하던 방법과도 유사하다.


통화 중 내내 예전의 내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들 나이, 그것도 군에서 갓 제대한 그 나이 쯤에 갖는 고민이고 장래에 대한 불안감일게다.
물론 내가 아들 나이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그 시절은 경제 부침이 심한  경제성장기 끝 무렵이기는 했지만 취직이 그렇게 어렵지않을 시기였다.

그렇다고 쉽게 취직한 것은 아니다.

 

그 녀석의 말 중에

 

"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일만 해온게 아닐까?

  너무 쉬운 길만 선택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도 들고
  정해진 일을 해야지 하면서 하기는 하는데 조금씩 무기력해지는 것도 같아"라는 말에

 

연이어진 얘기들. 물론 이 곳에 다 적을 수있는 얘기는 아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녀석의 얘기를 듣고 있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잠시 후 다시 밝은 목소리로 돌아왔지만,

고민이 많은 녀석의 깊디 깊은 마음속까지 풀어졌으면 좋겠다.

 

통화를 꿑낸 후 문득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손학규씨가 대선 후보로 내세운 구호인데

그 땐 너무나 식상하기도 하고 무덤덤한 구호였는데...

언제 부턴지 우리 사회에, 아니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서 따스한 담소를 나누는 가정을 상상만해도 좋다.

어쩌면 이 모습은 불행히도 대한민국에서는 당분간 보기 힘든,

꿈꾸는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서 이런 날을 만들어내는 게 내게 주어진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저녁이 있는 삶" 을!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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