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4. 20:57 차한잔 나누면서
3 분 테스트의 교훈
3분 테스트의 교훈
성당에서 피정(避靜)을 갔을 때의 일이다.
(피정: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 가서 조용히 자신을 살피고 기도하며 지내는 일)
프로그램 첫머리에 한 수녀님께서 자리에 모인 우리들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며 3분 안에 풀라고 하셨다.
받아 보니 맨 위에 ´끝까지 다 읽어 보고 문제를 푸시오´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꽤 많은 문제들이 이어졌다.
수녀님은 초시계를 꺼내 〃5초, 10초〃 하며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문제라는 것이 고작 숫자를 쓰라거나, 동그라미를 그리라거나, 이름을 거꾸로 써 보라는 등
피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한 것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의문을 제기하거나 투덜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째깍째깍 초침 소리를 의식하며 모두들 최대한 빠르게 연필을 움직일 뿐이었다.
3분이 다 되어갈 무렵 여기저기서 〃어머나!〃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맨 끝 문항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도 절로 〃어머나!〃 소리가 새어 나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끝까지 읽어 보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문제를 풀 필요는 없습니다. 시험지에 이름만 쓰십시오.>
당혹해하는 우리를 보고 수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지 첫머리에 끝까지 다 읽어 보고 풀라고 쓰여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급하셨나요?
내가 시간을 재고 있고 옆 사람이 열심히 푼다는 이유로 그 문제들을 서둘러 풀었나요?
남들이 다 탄다는 이유로 목적지도 모르는 기차에 올라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이 ´3분 테스트´의 교훈이었다.
´왜´라는 질문 없이 그저 바쁘게 움직이는 것,
방향 감각 없이 빠른 속도에 휘말리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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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선문답에 대한 내용 중
"해를 가리키는데 해를 보지않고 왜 손가락을 보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위의 글을 보면서 요즘의 내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보았다.
나 역시 조급중에 걸려서 이런 모습으로 생활해 온 게 아닐까 한다.
남들은 내 일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성격이 여유있고 차분할거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믿어왔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의 평소 운전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상당히 급한 성격임에 틀림이 없다.
본디 나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 시간 만큼은 운전에 집중해 새상일 잊을 수 있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그리고 내 스스로 결정하고 새로움을 만난다는 설렘 등이 나를 그리 만든 셈이다.
그래서인지 난 운전대를 잡으면 평소와 달리 속도를 즐기게 되고
천천히 가는 게 답답하게 느껴져서 기회가 되면 남을 추월하면서 차선을 이리저리 자주 바꾸게 된다.
물론 추월은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에만 하는 편이지만.....
간혹 아내가 조수석에 앉으면 잦은 추월에 핀잔을 주곤 한다.
그러는 아내에게 말한다. 운전수에 대한 평가는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평가가 정확하다고
"내가 운전할 때 조수석에서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몇번이나 밟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어찌되었든간에....
두번째로는 화투(속칭 고스톱)를 칠 때 감춰진 내 성격이 드러난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평소에는 화투를 치시지 않는데 가족들이 모이면 판을 깔곤 하셨다.
(초반에는 당신의 돈을 잃으시다가 막판에는 돈을 따시는데 당신도 그 이유를 아셨을 것이다.)
당신이 돌아가시고 난 후, 그런 기쁨도 함께 잃어버린 셈인데 요즈음은 화투치는 방법도 모를 정도다..
장소와 모임을 떠나 화투를 즐길 때면 화투판에서만큼은 기다림없이 바로 화투 패를 치는 편이다.
기다릴 새 없이 빠르게 치고선 치자마자 상대도 그렇게 칠 것을 기대하면서 보곤 한다.
그래서 상대가 패를 들고서 꾸물거리면 내가 더 답답해지고
그러다 보면 어느 때에는 상대에게 말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세번째로는 골프를 칠 때에 내 성격을 스스로 느끼고 알게 된다.
나는 골프를 칠 때 빈스윙, 속칭 "가라 스윙"을 하지 않고 바로 스윙을 하고.
스윙은 또 엄청나게 빠르게 휘두르곤 한다.
이로 인해 늘 동반자에게 기쁨 두배를 안기지만 지금도 난 가라스윙과 스윙 빠르기는 고치지 못하고 있다.
나와 함께 운동을 하는 동반자들은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심지어 캐디까지도
" 스윙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왜 가라 스윙을 하지 않느냐"이다.
나를 제법 안다는 사람들은 한 마디르 더하곤 한다.
" 겉보기와 달리 원래 성격이 급한 것 아니냐. 어떻게 그걸 감추고 사느냐? "고.
이 세가지를 나의 옆에서 모두 지켜본 사람들은 본디 내 성격이 불과 같이 빠른데
스스로 억눌러 외부로 표출되는 것은 그 반대로 포장 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내 역시 이와 유사한 말을 내게 던지곤 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만일 내 생각과 달리 급한 성격이 맞다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많이 닮은듯 하다.
당신 역시 겉으로 보시기에는 차분하고 엄격하게만 보이셨는데
내가 알기론 지금까지 내 부친 처럼 그렇게 성격이 급하신 분은 아직 보지 못했다.
아마 아버지를 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버지의 급한 성격을 잘 모르시듯, 나역시도 그럴 것이다.
아버지 칠순엔가 제주도로 온가족 (두분 부모님, 여동생들 부부, 그리고 아이들까지 삼십여명 정도)이
삼박사일로 여행을 갔는데, 이튿날 아침엔가 전세 버스에 오르는 과정에서
지금은 그 이유가 생각나지는 않는데 아뭏튼 한번 서로의 급한 성격이 제대로 부딪친 적이 있었다.
평소의 나와 달리 아버지께 불과 같이 말 대꾸하는 내 모습에 아내가 깜짝 놀라서 당황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내 곧 내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고 아버지 역시 바로 웃음으로 화답해주셨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당신께 대한 죄송스러움과 함께 그 기억은 내게 잔상처럼 남아 있다.
간혹 회사에서 실시하는 심리 Test 를 해도 나의 이런 면이 드러나곤 한다.
위에 누군가의 글을 옮겨 보면서 잠시나마 함께 음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서로의 각도는 약간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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