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집을 나설 때 무슨 말을 하셨는지요?

 

부모님을 여읜 어린 남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동생이 신발을 잃어버린 동생에게 누나는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이 바보야, 자기 물건 하나 못 챙기고. 너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기차가 도착하고 둘은 헤어졌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었습니다.
동생은 그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누나는 운이 좋아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답니다.
동생을 보내고 살아 나온 누나는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내가 남길 마지막 말이 되기에 부족한 말은 앞으로 절대 하지 않으리라."

 

오늘 집을 나서기 전 우리는 가족에게 어떤 말을 남기셨는지요?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마음 깊은 상처가 하루 빨리 치유되기를 바래봅니다.

 

안타까운 사연들의 말미에는 꼭 마지막 미안함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에 대한

깊디깊은 회한이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그 때 전화를 받을 걸"

" 그 때 문자로 바로 답을 해줄걸".

그 때 따스하게 대해줄 걸."

" 그 때 전화라도 해볼 걸" 

 

이러한 아쉬움을 남겨두지 않을려면 최소한 가족에게 만큼은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대해야 하겠습니다.

 

한 십오년전에 여수공장에 근무할 때 동료이자 형같은 현장 계장님이 계셨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취미가 같아서 함께 등산을 자주 하다보니 정말 형동생하며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무직과 현장직의 괴리가 한창 심할 때 였음에도...)
그러던 중 제가 일년동안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잘 되어서

그룹 발표 전에 본사 경영위에서 리허설 겸 발표하게 되어 서울로 출장가던 날
발표 잘 하라는 격려와 함께 내려오는 다음날(토요일)에 가까운 백운산에 둘이 함께
다녀 오자고 굳게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발표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 김포 공항에서 날씨 탓으로 연착이되어 기다리던 중에

날별락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형이 새벽에 공장 스타트를 위하여 사전 점검하다가 그만 폭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장례식장으로 향했는데

결국 우리는 백운산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백운산을 보면 그 분, 그 약속이 생각이 납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를 더하자면
평소 떨어져 살다보니 광주 본가에 들리면 아버지와 함께 집근처 목욕탕에 가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함께 들린 욕탕에서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다음을 혼쾌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 설 명절 전에 함께 가시자고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께서 "다음에 가자구나"하셔서 뒤로 미룬 약속을 끝내 지켜드릴 수 없었습니다. 한달 뒤 그만 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후 유명을 달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 못 갔던 게 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만일 그 때 제가 좀 더 강하게 말슴드렸더라면 ....

다시 한번 되물어 보았으면 합니다.

 

"오늘 집을 나설 때 무슨 말을 하셨는지요?" 라고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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