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줌 젊은 청춘세대를 N포 세대라고들 부른단다.

 

얼마전 까지 3포 세대에서 5포 세대가 되더니 N포 세대가 되고

이 N포 세대에 대한 인터넷 Binggo 게임판을 보고서 그동안 가벼운 느낌이었던 젊은세대의 현실을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실제 12년 12월 말경에 한국을 떠나올 때에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가지 심각해 질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물론 그 후로 근  3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한국에 대한 현실감각이 많이 덜어진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내 주위에 조카들이나 친구들 자녀들의 근황을 보면 간접적으로 인터넷 뉴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은 그나마 일부 각색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암울하기만 하다.

 

특히나 나도 대학생 자녀를 둘이나 두고 있고, 더군다나 큰 아이는 속칭 십년 이상을 버텨야 먹고 살든지 아니면 다른 방향을 찾든지 결정을 낸다는 밥빌어먹는다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으니 다른 부모들과 비교해서 직접적인 말은 안하고 있지만 늘상 이런 장래 기상도와 젊은이들 취업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있고, 그에 따른 상대적인 걱정은 다른 아이들의 두배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나도 예전 나의 선배들 같으면 직장 생활을 서서히 마무리할 나이가 되어가고 있기에 여러가지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기실 걱정만 하고 있지 마땅한 대안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젊을 때에는 회사 일을 통해서 내 스스로 비젼을 이루고자 열심히 일을 하였고 그에 따른 성과도 이뤄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한계선에 다닿았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부끄럽게도 예전만큼의 열정은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즉 마땅한 동기 부여가 부족하고 비젼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미이기도 하다.  

 

 

그래도 내 세대는 직전 세대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은 세데로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은퇴를 들먹일 나이에서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안타갑기가지 한다. 더군다나 만연된 신 음서제도의 현실에서 더 조절할 것이다.

나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노력해도 꽉 막힌 터널 같은 현실에서 절망하고 실망하면서 때로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에 깃대기도 하면서 힘들게 보낸 시간이기도 했으니 ... .

그럼에도 현실은 냉정했다.

한동안 아침에 눈뜨기가 두려운 날들도 있었으니...,,,

그래도 원하는 직장을 얻고 지금까지 나름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고 자부한다.

 

어제 한국에 있는 아들 녀석과 통화를 했다.

간밤에 아는 형과 맥주 한잔 하느라 새벽에 들어와 자고 그러다 보니 오후 한시 넘어 일어났단다. 엄마가 사좋은 포도로 가볍게 곡기를 때운 후 그 동안 진행해 오던 과제 "조각 마무리" 하러 작업실에 가는 도중이라 했다.

 

가볍게 얘기를 나눈다.

말미 부문에 얼마전 녀석이 소개 받은 여자 후배를 만나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아내는 뭐 그런 것을 묻느냐고 핀잔아닌 핀잔을 주지만 간혹 남자들끼리는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이것도 역시 그 통하는 하나일게다. 군제대 전까지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았기에 여자에 대해서는 다소 쑥맥같고 순진(?)한 녀석이라 그리고 성격도 예술하는 특유의 성격도 있고 해서 좀 걱정스럽기도 한 심정은 꼭 부모로써만은 아닐게다.

어찌어찌 얘기하다가 살짝  "요즘 만나니?" 하고 물어보니 직설적인 답변이 온다.

"용돈이 부족해서 통화만 해요"라고 ...

갑자기 그 사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35년전 일이니 참 격세지감이다.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갖는 사랑과 연애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난 무척 가난했다. 아버지게서 전년에 사업에 실패하셔서 대학 학비도 여의치 ㅇ낳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감히 용돈 달라는 소리도 못했었다. 친구들은 지금아이들처럼 월 얼마라고 약속된 용돈을 받아서 나름 계획성(?) 잇게 사용하고 있었는데 난 드문드문 필요할 때 마다 타쓰는 입장이었으니 늘 돈이 부족했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돈에 대해서 씀씀이가 구두쇠처럼 변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스쿨버스를 타려고 15분 이상 걸어가서 탔고 나중에 그 스쿨버스 운영이 중지되자 버스 두번 타는 게 아까워서 그곳 까지 걸어가고 멀리 정문에서 십분 이상 떨어진 승강장에서 내려 정문을 지나 구석진 단과대학 강의실 까지 걷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승차권이나 토근을 사서 타던 시절이었으니 (보통 10장단위로 팔았다)  그 때 만나던 여자 친구의 버스 승차권을 대신 내주는 게 내가 그녀에게 해주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본 기억도 별로 없고 증심사나 산장엘 가서 숲길을 걸었고 공원으로 자주 데이트를 다녔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살던 집 근처의 초등학교 벤취에서 데이트를 즐겼었다.  학교 내에서는 별로 만난 기억이 없고 수업을 마치면 시내에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전 대학 동기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내가 그녀와 즐겨 가던 다방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음악 다방에서 즐겨듣던 음악도 기억하고 있어 놀랬다.

대학 일학년 크리스마스 날 헤어졌으니 일년 반의 짧은 시간이었다

 

얘기가 좀 빗나가기는 했지만 애초 이이야기의 출발정은 아들 녀석과 통화 중에 용돈이 떨어져서 만나고 싶은 여자 후배를 만나지 않고 있다는 말과 아무래도 만나면 적어도 이삼만우너 정도 쓰게 된다는 말과 함께 용돈을 받으면 만나야겠다는 녀석의 지나가는 듯한 말에 옛 시절 내 추억이 되살아나서 몇자 적어 보눈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내석이 좀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를 바래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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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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