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7. 10:23 차한잔 나누면서
진짜 차 한잔 나누고 싶을 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은 ‘맑다’가 아닐까.
생을 종교에 헌신하며 단순하게 사는 사람의 얼굴은 해맑기 그지없다.
정리된 가난함을 스스로 택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맘때 하동 매화마을에 갔을 때도 섬진강변 매화꽃을 바라보며
비구니 스님 두 분이 정답게 소곤소곤 얘기 나누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꽃은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가 더 아름답고,
사람은 머물 때보다 떠날 때가 더 멋있으며,
공부하는 종교인은 무심할 때가 맑고 깊은 법이다.
누군가는 ‘쉬는 게 깨달음’이라 했지만 마음이 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쉬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직 헛 살았구나’라고 고백하게 한다.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번뇌이며 쓴 나물 뿌리를 씹듯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요즘 녹차를 달여도 맞이할 친구가 없다.
이것이 나에게는 맑은 가난함일지…. 침묵보다 더 좋은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 정은광 원광대 미술관 학예사. 미학 전공>
원불교 교무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간혹 잊을만 하면 누군가에게서 이 분의 글이 내게로 전해져 온다,
어떤 경로를 밟아서 내게 전해지는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작은 인연의 끈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 그 경로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 경로를 모른다고 이 글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아니기에...이것을 굳이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례라고 봐야되나 자문하면서 스스로 웃어본다.
늘 잔잔하면서도 삶의 여운이 그려지고
읽다보면 이 분을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도 어느새 내게는 친근하다.
언젠가 처럼 내가 존경하고 감명깊게 읽은 시인을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만날 때 처럼 내게 있어 그렇다.
내가 기억하는 원불교 여교무님들의 난안한 한복과 머리 매무새에 대한 기억으로
더 새록하게 만들고 친근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일게다.
물론 차 모임으로 만난 남 교무에 대한 기억도 ... ...
나보다 두어살 어렸으니 그도 엊그제 처럼 벌써 오십줄에 접어둘었을 것이다.
오육년 동안 만나다가 익산에서 춘천 원불교당 교무로 적을 옮긴 후
한동안 못보다가 서울 인사동 찻집 다경향실에서 차 한잔 나눈 후 십오년이 지났다.
칠년 전쯤에 목소리로만 안부를 나누었으니 그 친구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다.
그 친구의 닉네임이 "네덕내탓"이니 원불교 교무로써 썩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다.
사람이 이름따라 얼굴과 마음이 그대로 따라간다 했으니 상상만으로도 그 이름처럼 변해있을 녀석의 얼굴이 정겨워진다.
옮겨온 이 글의 앞에도 두배 정도의 두 단락 글이 있는데 난 싹둑하고 베어냈다.
글의 내용이 나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늘은 내가 기억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글만 살짝 들어내어 이리로 옮긴 것이다.
굳이 속 마음을 고백하자면
글 말미에 있는 "고백하건대 요즘 녹차를 달여도 맞이할 친구가 없다."라는 글귀에 내 마음이 꽂혀서.........
우리는 글을 읽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글귀에 마음이 아려지고
마치 속 마음을 들킨 듯 할 때 더 감동이 오고
몇번이고 그 글귀 언저리를 사랑하는 사람 어루만지듯 그렇게 몇번을 더 읽게 된다.
오늘 아침 이 글귀가 내게는 그런 셈이다.
그렇다고 글귀 그대로 느껴지는 "쓸쓸함"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연휴 동안 선물받은 철관음을 우려내었다.
차야 혼자 마셔도 좋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차를 통하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마실 때 차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일수록 함께 나누는 차 향기가 서로를 감싸안아
자리를 비워도 오랫동안 잔설처럼 그렇게 남아 있게 된다.
다시 차 한잔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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