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 13일 제주도 세화에서 

<이생진>

 
 

해마다 여름이면 시집과 화첩을 들고 섬으로 돌아다녔다 . 안면도 황도 덕적도 용유도 울릉도 완도 신지도 고금도 진도 흑산도 홍도 거제도 제주도 내라로도 와라로도 쑥섬 거문도....

이렇게 돌아다니며 때로는 절벽에서 때로는 동백 숲에서 때로는 등대 밑에서 때로는 어부의 무덤 앞에서 때로는 방파재에서 생활이 뭐고 인생이 뭔가 고독은 뭐고 시는 무엇인가 생각하며 물위에 뜬 섬을 보았다. 그 때마다 나는 섬이었다. 물 위에 뜬 섬이었다.

그러나 통통거리면 지나가는 나룻배 벙 벙 울며 떠나는 여객선 억센 파도에 휘말리며 만년을 사는 기암절벽 양지바른 햇볕에 묻혀 조용히 바다를 듣는 무덤, 이런 것들은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낙원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살아서 낙원을 다닌 셈이다. 그 낙원에서 맑고 깨끗한 고독을 마실 때 나는 소리치고 싶었다. 그것을 시로 쓴 것이다.

 

 

 

 

 

 

바람 같은 얼굴 

        (마라도 5)            

                                이생진

 

오늘 수평선은
네 눈썹처럼 진하다
너도 네 눈썹을 갈매기처럼 그리지 말고
수평선처럼 그려라
그러면 네 얼굴도 바다가 되리라

 

   <199512>


 

오늘 아침 이생진님의 시가 그리워졌다.

잘 알려진 [그리운바다 성산포]에서 [거문도] 까지

 

마음 가까운 이에게 시집을 선물하려면

맨 먼저 파란색 표지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선물했다.

아내에게도 역시 ...

 

최근에는 선물한 기억이 드물지만

 

   이 아침 문득 시 한편이 그리워졌다.

 

 

     혼자 사는 어머니
            ( 여서도 ·14 ) 

                                              이생진

 

           나이 70.
           1929년생
           일제 강점하에 태어난 것도 얼울한데
           말년엔 남편 중풍으로 쓰러져
           3년 동안 간병하느라 다 죽어가던 세월
           영감을 산언덕에 묻고 나니
           휘휘 방안엔 찬바람만 그득하다고
           그래도 아침엔 동백꽃처럼 단단하다가
           저녁엔 호박꽃처럼 시들해진다며
           아랫목에 누울 무렵
           뭍으로 간 자식들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니 저예요"
           "음 부산이냐"
 
           "어머니 인천예요"
           "음 너냐"

           "어머니 안양예요"
           "음 애들은 잘 놀고"

           "어머니 저예요"
           "음 목포냐"

           그 다음엔 산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바위를 치는 갯바람 소리
           그 밖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방
           문풍지 우는 여서도
           나이 70.
           아직은 차돌같이 강하다만
           "음 걱정 마라"
           막내의 전화를 끝으로 자리에 눕는 어머니

           여서도에서 태어나
           함께 초등학교 다니던 남자를 부모가 맺어줘
           아들 다섯에 딸 하나
           부산으로 인천으로 목포로 안양으로
           다 내보내고 섬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
           음 걱정 마라, 나는 예가 좋다"

 

                   <0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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