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도 글이니 십년이 훌쩍 지난 글을 예전의 내 다음 블러그에서 보았다.
비록 이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닌 그 당시 스크랩한 글이지만 다시 보아도 의미심장한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야생화 우리 꽃을 알게 해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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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왜 앙숙일까? 

[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 며느리밑씻개

'며느리'자(字)가 들어간 꽃을 보면 슬프다. 고부간의 갈등을 표현한 꽃에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에미'라는 이름으로 시작되는 꽃이 없는 것을 보면 대체적으로 며느리는 한 가정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었기에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며느리밑씻개에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한 시어머니가 밭에서 김을 매다가 큰 일을 보게 되었다. 남이 볼세라 두리번거리며 일을 치르던 시어머니는 뒤처리를 위해서 손을 뒤로 뻗어 풀을 한 웅큼 잡아뜯어 밑을 닦았다. 그런데 무척이나 따가워 뭔가 보니 줄기에 잔가시가 송송 박힌 풀이었단다. 그때 시어머니 왈 "에잇, 이거 며느리면 밑 닦을 때나 걸려들지"해서 그 이름을 얻었단다.

왜 그 미움의 대상, 질투의 대상이 며느리일까? 어쩌면 어머니들의 심리 속에 며느리는 아들을 빼앗아간 경쟁대상이 아닐까 싶다. 아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독점했는데 장가를 가고 나니 그 독점권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같은 여자로서의 경쟁심리 같은 것이 고부간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위사랑은 장모님'이라는 말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자신의 남자(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던 딸을 가져간(?) 사위가 예쁠 수도 있겠다. 물론 상상이다.

실제 '사위질빵'이라는 꽃이 있다. 사위가 지고 일할 지게의 질빵을 툭툭 끊어지는 줄기를 가진 풀로 만들어줘 처가에 온 사위가 쉬엄쉬엄 일하도록 배려해 준 장모님의 사랑이 배어 있는 꽃, 그래서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 며느리밥풀꽃
김민수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빼앗아간 며느리가 보기도 싫을 정도로 미웠다. 자기만 바라보고 살던 아들놈은 장가가더니만 며느리한테 푹 빠져서 헤어나올 줄을 모른다. 아들이 멀리 여행을 떠나니 며느리와 시어머니만 집에 남았는데 어느 날 며느리가 밥을 하다 뜸이 들었나 보려고 밥알을 두어 개 집어먹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시어머니는 '네 이년 잘 걸렸다' 생각하며 몽둥이 찜질을 했다. 죽이려는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그만 며느리가 죽고 말았다. 아들이 돌아오자 어른이 먹기도 전에 밥을 혼자 먹어서 그랬노라고 변명을 하고, 며느리의 무덤가에는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은 꽃에 밥알 두 개가 얹혀 있는 듯한 꽃이 피었단다.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가 '나는 결백해요'하며 피어난 꽃이라 하여 며느리밥풀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이 정도면 위의 추론을 억지라고만 몰아세울 수도 없을 듯하다. 이렇게 꽃에 담긴 사연들을 하나둘 알아가다 보면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이 참으로 풍부해서 감탄하고, 그저 붕뜬 이야기들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들이 들어있음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더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서 고부간의 갈등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여성들에게 있어서 '시'자(字)는 반가운 글자가 아닐 수도 있다.

▲ 며느리배꼽
며느리배꼽에 관한 전설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단지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하게 동그란 이파리 위에 배꼽같이 둥글둥글 둥근 것을 맺고 있으니, 그 유사성에서 며느리배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하고 상상할 뿐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모양새가 마치 임신한 며느리의 배 같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파리가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오면 영락없이 임신한 여인내의 배다.

설마하니 아무리 못된 시어머니라도 임신한 며느리까지 미울까? 그러나 아들이 귀한 집이거나, 딸만 줄줄이 난 집에서는 그 사정이 달라진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식을 낳지 못하면(無子) 칠거지악의 하나로 쫓겨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임신한 기간 동안은 그 여느 때보다 평안(?)한 날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며느리'라는 이름이 들어 있는 꽃보다는 덜 슬프게 다가오는 꽃이기도 하다.

그런데 배꼽을 닮은 것이 보랏빛으로 익어 가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며느리배꼽의 꽃을 본 적은 없다. 그게 꽃인지도 모르겠다. 보랏빛으로 익어가면서 안에 까만 씨앗이 맺힐 뿐, 피지 않는 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미와 아가의 생명을 이어가게 했던 탯줄의 흔적이 배꼽이고 보면 활짝 피지 않고도 넉넉하게 씨앗을 맺어 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복중의 아기를 잉태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간혹 들꽃들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이미 꽃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꽃들은 그 이야기가 상상력을 가로막을 때도 있지만 꽃말도 상징도, 이야기도 없는 꽃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만들어주고, 의미 부여를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꽃을 보기 위해 꼬박 일년을 기다리면서도 지루하지가 않고 그 이전에 만났던 그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에는 또 다른 곳에 피어 있음이 감사하기만 하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서 이불을 끌어당기기 시작하는 요즘, 며느리밥풀꽃이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들을 만났던 오름은 30여분 땀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는 곳이기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평지에서 화들짝 피어버린 그들이 지천에 깔려 있음을 보니 횡재를 한 듯한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종류가 그렇게 많지도 않은 '며느리'자 들어가는 꽃이 한 계절에 피어 있다. 한 맺힌 며느리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신세를 털어내면서 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왜 앙숙일까?' 참 궁금하다.

/김민수 기자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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