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흐름!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은 그흐름에 순응하거나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시대이건간에 그 시대가 갖는 "시대 정신"이라는 게 있다.
그 시대 정신이라는 것은 그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일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대가 지향하는 가치를 향해서 가는 것을
사람들은  순응이라 하지않고  거스른다고 표현을 한다.

 

엊그제 한 삼십분 동안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도 과대포장된 나 자신에 대한

분에 넘치는 은혜인데도 ... 

난 이직까지도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 것이다..

 

이제는 서서히 내려놓을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도도한 변화의 흐름에 내 자신이 몸을 실어야 한다는 게 

조금은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순응하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기도가 더 간절한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이 한없이 낮아져야 했던 옛 기억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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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요절 암송의 기억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아마 너다섯살 즈음부터)  신앙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때는 믿음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제가 하나님의 자녀라는게 마냥 좋았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에 대한 경우로 두 가지를 말씀하는데

저는 첫번째인 알고 믿는게 아니라 믿음으로 알게되는 신앙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 체험적 신앙(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으로 믿음이 깊어지던(?) 때

특별히 대학원생 시절 연구 실험으로 몇날 밤을 지새고서야 집에 오는 날

그날은 웬지 집보다는 교회가 더 그리워서 지하실에 있는 기도실에서 남 몰래 두 손을 모을 때에 "믿고 아는 믿음이 더 큰 은혜이기는 하지만 그를 통해서 알고서 믿으면 그만큼 신앙이 성숙해진다"는 말씀이 제게 전해졌습니다.

그 당시 기도의 응답을 통한 체험에서 주님이 주신 은혜를 조금씩 알아가던 때 이었으니

그 기쁨은 남달랐다고 지금도 감히 고백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되돌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에 가장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한 것 같은데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저의 전공 때문에 실험과 연구로 어찌보면 가장 시간에 쪼들릴 때 임에도 자투리 시간까지 헌신했던 때 였습니다.

그래도 학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특권이 저에게 헌신의 마음과 함께 특별히 전도의 기쁨과 은혜를 만끽하게 해주던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육개월 단위로 분반을 하는 은혜를 주셨는데 그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는 한반에 12명이  넘으면 바로 반을 반으로 잘라 분반을 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두신 이유가 제자를 양육하기 가장 좋은 제자수가 12명이라 가르치고 배웠는데 실제 가르쳐 보니 16명도 가르쳐봤지만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12명이 한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때를 다시금 되돌아 보면 매주일 일상의 반복처럼,

금요일 저녁은 청년부 집회(대학생과 청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으로)

토요일에는 주일학교 교사(반사라 합니다)들이 모여서 공과 공부 (일종의 주일학교 수업 교과서,공과공부 목적은 아이들에게 일치된 신앙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를 마친 후 

성가대 대원들 모여서 연습...(저는 베이스 파트로 ...)

 

그래서 매주 토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시간되는 아이들과 함께 지난 주에 결석한 아이들 방문해서 관심을 표하고 (간단히 두손 모아 축복기도와 함께) 내일 보작 ㅗ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에는 웬지 안나올것 같은 촉이 오는 아이들 데리러 가서 함께 교회로 출석하다 보니자연스레 아이들이 넘쳐나서 자연스레 분반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날은 아침 일찍 초등부 (저는 어울리지않게 유치부 교사를 지원해서 3년 동안 가르치다가 더 중요한 6학년을 담당하게 되었지만...그런데 저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유치부를 가르치면서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이십분 정도 쉬었다가 고등부 학생들 예배를 인도한 후 어른 예배에 참석하게 되지요

예베 후 크고 작은 행사 준비가 있었고 그러다 보면 집에 들릴 사이 없이 저녁예배 참석

그 때는 나이가 한창 때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온 종일 봉사와 함께 헌신하면 그 주의 일들은 술술 풀렸습니다. (작년 이맘 때  집 근처에서 어머님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그 때 그 제자들 여러명을 동시에 만났습니다. 얘기를 나누던 중 제가 개종했다하니 깜짝 놀래고 몇몇은 비난(?)하더니 마지막 헤어질 때는 "선생님 죄송해요" 라는 사과의 말도 들었습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느 처지임에도 아직도 선생님 하고 부르니 낯 간지럽기도 했지만.ㅎㅎㅎㅎ)

 

이제는 그 시절에 겪었던 하느님의 제게 향하신 사랑과 은혜의 시간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주일날 저녁 예배에 교회 초등학교 반사들의 헌신 예배를 드리는 때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주일학교 반사들을 대표해서 교사 헌신 0예배의 사회를 맡았지만 반사로써 별도로 준비한 프로그램의 하나인 아이들의 요절 암송과 함께 남녀대표 반사로 저도 시편 중 한편을 암송하도록 순서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교중 어른 예배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에 그날 저녁 예배 때 암송하도록 되어 있는 시편을 두세번 읽고나서 암송을 하니 놀랍게도 토시하나 안틀리고 바로 다 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저의 머리를 믿고서 당연히 다 외웠다고 생각하고 다른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저녁 헌신 예배 전에 다시 그 시편을 암송하면서 확인하니 이전과 같이  "OK "였습니다.

 

헌신 예배는 (저의 본임무는 예배의 사회)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순서에 따라 아이들 재롱잔치도 마치고

어느새 요절 암송 순서가 되어 아이들이 요절 암송하는것을 지켜보면서

제가 암송해야 할 시편을 되뇌이는데 "이런" 갑자기 머리가 하애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그 멍한 상태!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그 당황스러움을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
그 당황스러움 속에 어느덧 제 순서가 되었는데

첫머리 한줄 암송하고서는 앞이 꽉 막힌듯 더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잠시 숨을 가다듬는 척하며 그 구절을 떠올렸지만 이미 하얗게 비워버린 머리는

더이상 설명하지 아낳아도 잘 알겄 입니다..

 

평소 저를 잘 아시는 경험 많은 집사님 한 분이 보다 못해 그 다음 구절 첫머리를 

앞 자리에서 살짝 불러 줌에도 저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제게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 이었지만...)

나름 그 구절이 떠오르기를 기다렸지만 그것은 단지 저의 바램일 뿐 이었습니다.  

그 상황의 당혹스러움을 감추고서 저는 있는 그대로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유치부 아이들도 준비한 성경 요절을 잘 외웠는데 반사인 제가 못오운다 생각하니 부끄러움으로 몸둘 바를 모르다가 문득 하느님이 제게 전하시는 말씀을 고백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저는 헌신 예배를 준비하면서 두세번 읽고서  이 시편을 다 외울 수 있었고 예배 시작전 다시한번 확인해도 암송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서 안심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시간에 갑자기 머리가 하애지면서 아무 것도 기억나질 않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통해서 저의 교만함을 보시고 제게 사람들 앞에서 지극히 겸손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 구절을 머리로 암기하지 말고  가슴으로 이해하라" 고 특별히 제게 은혜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


갑자기 여기저기서 "아멘" 하는 소리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가득찼습니다.
지금도 되돌아 보면 제가 왜 그시간에 성도님들 앞에서 갑작스레 뻔번스레 그런  고백을 하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예의상일 수도 있는데 많은 분들이 암송보다도 더 큰 은혜의 시간이 되었다고 위로 겸 격려의 말씀을 제게 전해주니 저는 더 당황스럽기 까지 했던 가슴 아픈(?)  기억입니다.

 

그 후론 성경 암송 프로그램이 있을 때 마다 겸손함으로 준비하다보니

긴 시편이나 잠언도 술술 외우게되고

그 성경 구절들은 순간 순간 제게 삶의 지표가 되어 주었답니다.

 

그 때 제가 놓쳤던 지금도 기억이 새록한 시편 121편입니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성경은 번역에서 약간 뉘앙스 차이가 있지만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문어적이기는 해도 개신교 번역이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그 때 못 외웠던 시편 121 편입니다.

굉장히 짧은 시편인데 왜 생각나지 않았는 지 지금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니다.

시편 23편과 함께 잘 알려진 시편중 하나입니다.  

 

 

 

시편 121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확신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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