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에 생각합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하는 놀이가 있습니다.

두 사람 혹은 세 사람 정도가 마주 앉아 가운데 작은 모래무덤을 만듭니다.

그 가운데 나무젓가락 같은 것을 꽂습니다.

그리고 번갈아 그 모래를 (가에서부터) 걷어갑니다.

모래무덤은 점점 작아져서 나중에는 나무젓가락을 지탱하기 어렵게 됩니다.

조심조심 걷어가지 않으면 젓가락이 쓰러지는데 그 쓰러트리는 사람이 지는 놀이입니다.

친구와 이 놀이를 하다가 한 번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바로 이 젓가락처럼 지탱되는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나’란 곧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망의 중심이라는 것이지요.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살과 피를 받았습니다.

부모들도 그들의 부모로부터 몸을 물려받았으니

나는 네 사람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나의 몸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또 그 위, 또 그 위,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형성과 관련됩니다.

부모님이 주신 것은 살과 피만이 아닙니다.

나는 그분들과 체온을 나누면서 나의 생명을 느꼈고 그분들과 밥상을 같이 하면서 몸이 자랐습니다.

그분들을 통해 말을 배웠고 생각을 키웠습니다.

그분들은 내가 그분들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지탱해 주셨습니다.

나의 정신과 마음을 만들어 준 이들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몇 선생님들이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옆 반 선생님,

그분은 단 한 번 우리 반에 와서 음악수업을 하셨지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음악을 깨워 나를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데 충분했습니다.

고문(古文)을 재미있게 가르치시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그때 배운 두보(杜甫)의 시는 내가 동양의 고전을 좋아하게 된 첫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전통음악이 아름답게 들려온 것도 그때쯤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의 넋을 흔들리게 했던 슈베르트는

내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나에게 생생한 사람입니다.

때로 나는 그를 옆에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낍니다.

 나의 휴대전화에 전화번호가 들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보다 더 친근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또 삼국지도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도 있고 성경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음악, 많은 글, 많은 생각들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거기에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문학취미를 일깨워준 형, 삶과 예술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친구들,

같이 음악 활동을 했던 동료들, 내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한 학교에서

고락을 함께 하며 일했던 분들입니다.

 

정신의 양식만 먹고 자란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루에 두세 번씩 빠짐없이 육체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갓난아이일 때는 어머니의 젖을 먹었을 것이고 그 후에는 그분이 지어주는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아내가 지어주는 밥을 40년 가까이 먹고 있습니다.

쌀을 비롯한 곡식과 배추 같은 채소들, 여러 가지 생선들, 소와 돼지, 김과 미역,

사과와 포도와 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먹은 결과가 나의 몸입니다.

이 모두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거두어 먹는 것입니다.

내 나이만큼 오랫동안 먹어온 이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은

나를 이루는 모래무덤의 한가운데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그 기슭의 넓은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생명체들은 결국 물과 공기와 햇빛을 먹고 자랐겠지요.

그러니까 나의 모래무덤을 이루는 제일 밑바닥은 결국 스스로는 생명이 없지만

생명에게 꼭 필요한 물과 공기와 햇빛들에 닿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모래무덤도 생각해 봅니다.

나로부터 멀리 떨어진 모래무덤들이 많겠지만 가까이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가족들의 것처럼 많은 부분 겹쳐지는 것도 있겠지요.

사하라 같은 큰 사막의 그림이 상상됩니다.

무수히 많은 작은 모래무덤들이 물결을 이루면서 함께 구릉을 만들기도 하고

 또 아주 큰 모래 산맥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삶을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모래무덤에서 나무젓가락을 뺍니다. 그래도 그 작은 모래무덤은 그대로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삶의 관계망에서 나를 빼 놓아도 그대로 내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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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었습니다.

평소 4월 중순이나 하순초 쯤인데 올해는 조금 늦었습니다.

그래서 사월은 제게 유난한 달이기도 하였는데...

 

모친이 계시는 광주 본가에 모처럼 온가족이 모였고

그 속에 아내와 아들이 함께하였고 난 전화만 넣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서 다른 사람들과는 연결없이 그냥 끊었습니다.

서운히 여길 수도 있겟지만 마음이 그리 내키지 않은 탓입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명절이 아니라 제삿날이어서 그랬던게 아닌가 합니다.

저화를 끊으면서 잠시 망설엿던 것을 보면... ...

 

시간이 어려울 것 같다던 아내에게 말했던 아들 녀석이

부탁한다는 카톡 한마디에 주저없이 참석하겠다고 하니 내심 고맙기도 했습니다.

 

윗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대목이 있어 옮겨 놓습니다.

 

                     <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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