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입원한지 3주 정도 되었을 때 마치 본디부터 환자였던듯 자연스레 환자로서의 생활이 일상화 되었을 때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기도 전에 팔에서 피를 뽑고 혈압과 체온을 재고 항생제와 해열제를 정맥주입하면 아침식사 시간이다.
○ 참고 : 식사시간:.. 조식(7:30), 중식(12:30), 석식(18:30)에 나옴.

팔에 정맥 주사바늘이 꽂혀 있기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 머리를 감고 가볍게 몸을 씻고 담당 주치의를 기다린다. 주치의 진찰 전에 전공의의 사전 검진이 진행된다.  간밤의 상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데 이 전공의 표정이 늘 밝아서 좋다.

일분짜리 주치의 진찰이 끝나면 잠시 멈춘 아침운동을 다시 재개한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의 일상이 왕복 시계추 마냥 반복된다. 네시간마다 체온과 혈압을 재고 떼어지지않은 정맥 주사 바늘을 통해 늘 꽂혀있는 수액관에 하루 네번 어김없이 항생제가 투여되고, 온도가 38도를 넘으면 즉시 해열제가가 투여되고 어김없이 피를 두군데에서 뽑는다.

어느새  난 이런 일상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러다 문득 창밖의 햇살에 굶주려 어렵사리 내 자리까지 새어든 햇빛에 고마워하는 나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햇살을 쫓아 창가로 나아가면서  세브란스 암병동의 11병동이 내게는 마치 호텔처럼 여겨졌다. 

처음 이 병원에 들렸을 때에는 전문간호사와 요양사가 상주하는 병동(15병동인가) 에 머물렀다. 그래서 보호자는 상주할 수 없고 하루 두차례 정해진 시간만 면회가 가능했다.
(평일 18:00~20:00  주말공휴일 1회추가  10:00~12:00 , 18:00~20:00)
물론 전화등울 통해 병실 밖에서 면회등은 가능하지만 원칙상 면회시간외에는 보호자라도 병실출입이 금지되어있다 )

그 병동에 입원하여 머물수 있는 기간은 최대 14일만 가능한 곳이었는데 아쉬운 점은 다른 병원시설에 가려서 햇살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입원해 있을 때에는 수액 주사바늘을 꽂은채 수액이 매달린 이동세트를 손으로 끌면서 자주 병실을 벗어나 햇살이 내리쬐는 곳으로 가곤했다.

여의도 쌍둥이 빌딩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출장이 잦았다.  출장길에 하루 머물던 숙소에서 간밤의 숙취도 없앨 겸사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튼과 암막을 걷어내면 환하게 창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모습과 함께 느껴지는 고혹적인 새벽 풍경에 넋을 잃고 멍하니 정신을 빼앗기곤 했었다.

그리곤 이내 창문을 열고서 쏟아져 밀려들어오는 새벽 햇살 속 신선한 공기를 기분좋게 심호흡으로 깊이 들이마시곤 했다.

비록 보이는 창문 너머 풍경이 변함없이(?) 매번 같아도 이곳 세브란스 병원은 근처의 안산자락 풍경이 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어도 조금씩 달러져가는 (짙어가는) 단풍이 매일 달라 보였다.

병원생활이라는게 애초 낭만을 즐길 여유는 없겠지만 그나마 이 바깥풍경을 통해서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병실 생활이 마치 깊은 산속 호텔에 투숙해 서비스를 받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무렵에 오전에 병실을 돌면서 운동을 하다가 본관 1층에 있는 실내정원 '우리 라운지' 에 들려 쉬곤 했다. 누군가 병문안 오면 병실내 옆 환자들에게 불편으루끼치기 싫고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곳으로는 제격이었다. 함께하는 병문안오는 분들도 병원같지않게 느껴지지는 그 곳으로 안내하여 담소릏 나누기도 했다.

간혹 운동겸 휴식차 들린 라운지 의자에 홀로  앉아 멍하니 유리창을 통해 부서지는 햇살에  눈을 감고 있어본다. 그리곤 유리창 너머 하늘을 보곤했다.
나도 모르게 맺히는 눈물방울에 누군가에게 눈물자국이  있는 내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오랫동안 눈을 감고 하늘을 보았다.

오해는 마시라!
결코 내 처지가 슬퍼서 눈물 흘린건 아니었다.

"내가 무얼 상상하면서 울었을까?"
 
내 입장에서 되물어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그리곤 우리 라운지내에 있는 전시실 ( Art Space) 의 작품들을 마치 눈에 새겨놓듯이 그렇게 질리도록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았다. 그냥 전시된 작품을 잘 몰라도 그냥 보기에 좋았다.

나의 마음이 그럴진데 비록 세브란스 병원에 있는 동안 체중이 10키로 정도 빠질 정도로 금식이 일상화되고 매일 피를 뽑느라 혈관이 스스로 숨어버릴 정도로 하루 하루를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켠에는 세브란스 병원은  그렇게 호텔이 되어주었다

오늘도 항암치료차 병원에 들려 채혈을 하고 아트갤러리에 들려 마음을 놓고 왔다.
마침 우리라운지 무대에서는 연세대 의과대학 피아노 동아리에서 세브란스 환우들과 함께히는 피아노 연주회를 열고 있었다.
맨 뒤의 좌석에 앉아 감상을 했다.
고마운 마음에 먼저 사진을 올려 놓는다.

 피아노 연주모습. 본과 1년 학생.

오늘의 전시회  [ 깊이의 단서 ,  임정은]  Feb. 1-28, 2019

 
신촌 세브란스 병원(본관)에 들릴 기회가 있으면 꼭 우리라운지를 들려보시고 시간내어 Art Space 의 전시작품도 감상해 보시길 기대한다.

물론 병원에 올일 없기를 바라지만...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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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상을 통해 사람사는 이야기와 함께, 항암 관련 투병기록 및 관련 정보 공유를 통해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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