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28. 00:50 아름다운 문화(차와 문화)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주말마다 영화를 보게된다.
지난 주에 본 영화 소감의 얼개를 적어놓았다가 살을 붙혔다.
어제밤 자정넘어 본 영화는 감독의 저의를 잘 몰라 한번더 보고 느낌을 적으려 한다. "꿈의 제인"이라는 한국 영화인데 응사 1988 에 나온 이민지가 주인공인데 역할에 맞춰 연기는 잘했다는 느낌이지만 쉬 공감을 하지못해 다시 한번 보고서 결정하려한다.
어찌되었든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대한 소감을 시작한다.
영화는 슬프다.
항상 화려한 곳. 아직 나는 가보지는 못했지만 잡지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라스베가스는 일단 화려하다. 이렇게 이미 정형화되어 고착된 라스베가스가 우리에게 주는 화려한 이미지처럼 이 영화 속 라스베가스 특히 밤거리는 화려함으로 넘실댄다. 늘상 영화에서 보여주는 유흥가처럼 밤거리의 유혹하는 짙은 화장을 한 창녀들, 그리고 도박장으로 향하는 남자들로, 분주한 라스베가스.
그러나 알고보면 밤거리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로 빛나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감춰진 어둔 골목길이 보이듯 군데 군데 어둠이 보이고 마치 전봇대 아래 어지러진 쓰레기와 함께 술주정꾼의 토사가 숨겨져 있듯 이곳 역시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초라함과 술로 찌든 어둠 속 그늘이다. 영화의 분위기도 이렇다.
술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세상!
이 영화는 화려함과 대비되는 어둠이 더 드러나는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마치 맨살로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영화다.
이 미국배우 니컬러스 케이지(발음상)의 표정연기는 늘 압권이다.
남자 주인공은 할리우드에서 극작가로 살았으나, 오랜 알콜 의존증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남은 것을 팔아 이곳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 우리에게 있어 소중한 인연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듯 그렇게 이 영화에서도 함께 한다. 술에 절어 거리를 배회하는 벤 앞에 거리의 여자 세라(엘리자베스 슈)가 등장한다. 벤은 싸구려 가죽 치마에 낡은 액세사리를 휘감은 금발 머리 세라에게 혹할 돈을 제시하며 하룻밤을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술이 그득한 벤의 호텔방에 들어선 세라. 여느 때 처럼 옷을 벗고, 벗기고 벤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는 순간 벤은 그냥 술이나 마시며 대화를 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그제야 세라는 벤의 눈을 처음으로 바라본다. 이미 술에 절은 그의 총기 없는 눈에서 세라는 무언가 모를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아마 그 눈동자에 비춘 자신의 모습과 그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낯선이에게서 자신을 본듯했을 때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아마 연민이 그에게 마음을 열게한듯 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창녀와 시한부 인생 알콜의존자의 사랑은 너무나도 보잘것 없고 의미도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부여잡고 싶은 숙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고 따돌림 속에 소외된다.
그 소외 속에서 이 둘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법칙을 정한다.
벤은 세라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자신에게 종용하지 말 것을, 세라는 벤에게 자신의 직업을 용인해 주기를 요구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은 서로를 자신의 툴에 가두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유 속에 있는거라고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평범한 삶인 서로의 치명적인 결점 아니 일종의 장애를 덮고 이들은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뜨겁게 사랑한다.
벤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쪼개서, 세라는 밤마다 몸을 팔아서 이들은 하루하루를 연명해 간다.
그러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에서 기대하는 건 두 사람의 섹스 신이다. 예전 이유영이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받았던 한국영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 "에서도 그랬다. 이 영화는 그 영화와는 조금 다른 각도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벤은 알컬 중독자로 섹스불능(不能)이기 때문이다. 세라는 사랑하기에 늘 벤의 몸을 원하지만 취해 있는 벤과의 섹스는 번번이 실패한다.
섹스가 부재한 커플이지만 이들에게도 애틋한 에로스가 존재한다.아마도 요즘 햔대인의 섹스리스에 대한 또디른 배경아닐까? 사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벤을 간절히 원하는 세라는 벤의 온몸에 위스키를 붓는다. 세라의 목덜미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위스키를 벤은 숨도 쉬지 않고 핥아댄다. 세라는 그렇게 자신의 몸에 벤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만 늘 그랬던 것 처럼 거기 까지였다. 둘의 섹스는 늘 술에게 밀린다. 현대인의 욕망이 늘 돈이라는 권력 앞에서 무기력해지듯, 영화 내내 세라가 바라는 섹스의 끝은 늘 미완이다. 벤이 쓰러지거나 잠이 들어 한 번도 세라는 그의 몸을 온전히 가져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세라는 행복하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참 사랑이 무엇인지 슬며시 관객들에게 답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늘 그렇듯 처음 생각과 달리 세라는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 가는 벤을 참지 못하고, 벤은 세라를 떠난다.
현실에서 우리는 대부분 서로가 정한 약속을 잊는다. 아니 잊는 게 아니라 잊게 만드는 것이다. 그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 그 벽을 넘는 방법이 없다는 절망의 벽에 마주하면 그 절망이라는 흡입력에 소중한 약속이 빨려들게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현실에 타협하는 '약속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절망 앞에서 잠시 잊혀졌던 사랑이 다시금 기억되듯 벤은 다시 세라에게 전화를 건다. 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생사를 오가며 연인을 기다리고, 벤의 전화를 받은 세라는 한달음길에 그에게 달려간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세라와 완전한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세라는 간신히 그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의 흔적을 온몸 구석 구석에 새긴다.
벤과 세라의 사랑은 화려한 라스베가스를 닮았다. 이 곳을 찾는 이들은 신기루를 쫓는다.
현대인이 가지는 욕망의 출구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 곳은 결코 출구가 아니다. 단지 신기루일뿐이다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우리는 그 결과를 예견할 수 있다. 허상이다.
중국에서 잠시 살면서 뜻글자즉 표의문자인 '한자(汉字)를 보면서 중국 한자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특히나 회의문자에서...
그 한자 자체에 숨겨진 그러나 자세하 살펴보면 살며시 드러내는 감추인 의미를 스스로 알게되면서 였다. 욕망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유한(有限)한 시간과 돈으로 행복과 쾌락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섹스 조차 할 수 없는 두 사람이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은 욕망으로 가득찬 라스베가스가 보여주는 허상의 그림자에 대한 조소이자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종의 정신적 에로스의 실천이기도 하다.
"창녀와 성녀"
똑 같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영화의 OST 는 정말 영화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스팅의 몽환적인 노래는 영화 OST 명곡 100위 안에 꼽히는 곡들이다. 더군다나 연출자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직접 참여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허상뿐인 라스베가스에서 절실한 정신적 사랑을 너무나도 절절히 그렸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술을 통해서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기에 술을 함께 마실 뿐이다. 그럼에도 술로 인해 죽는 주인공 벤을 보면서도 슬픈 영화로 난 집 찻장에서 술 한병을 꺼내들었다.
한잔 따르고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는 술잔을 보았다.
마시면 취할 것이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내게 라스베가스는 무엇일까?
쉬 떠오르지는 않지만
지금의 내처지가 아닐까 한다.
이젠 화려함도 사라진지 좀 되었지만.
어느새 세 잔을 연달아 마셨다.
잠은 오지 않는데
술이 나를 잠으로 안내할 것이다.
지난 주에 본 영화 소감의 얼개를 적어놓았다가 살을 붙혔다.
어제밤 자정넘어 본 영화는 감독의 저의를 잘 몰라 한번더 보고 느낌을 적으려 한다. "꿈의 제인"이라는 한국 영화인데 응사 1988 에 나온 이민지가 주인공인데 역할에 맞춰 연기는 잘했다는 느낌이지만 쉬 공감을 하지못해 다시 한번 보고서 결정하려한다.
어찌되었든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대한 소감을 시작한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영화는 슬프다.
항상 화려한 곳. 아직 나는 가보지는 못했지만 잡지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라스베가스는 일단 화려하다. 이렇게 이미 정형화되어 고착된 라스베가스가 우리에게 주는 화려한 이미지처럼 이 영화 속 라스베가스 특히 밤거리는 화려함으로 넘실댄다. 늘상 영화에서 보여주는 유흥가처럼 밤거리의 유혹하는 짙은 화장을 한 창녀들, 그리고 도박장으로 향하는 남자들로, 분주한 라스베가스.
그러나 알고보면 밤거리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로 빛나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감춰진 어둔 골목길이 보이듯 군데 군데 어둠이 보이고 마치 전봇대 아래 어지러진 쓰레기와 함께 술주정꾼의 토사가 숨겨져 있듯 이곳 역시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초라함과 술로 찌든 어둠 속 그늘이다. 영화의 분위기도 이렇다.
술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세상!
이 영화는 화려함과 대비되는 어둠이 더 드러나는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마치 맨살로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영화다.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년)의 주인공 벤(니콜라스케이지)
이 미국배우 니컬러스 케이지(발음상)의 표정연기는 늘 압권이다.
남자 주인공은 할리우드에서 극작가로 살았으나, 오랜 알콜 의존증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는 남은 것을 팔아 이곳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 우리에게 있어 소중한 인연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듯 그렇게 이 영화에서도 함께 한다. 술에 절어 거리를 배회하는 벤 앞에 거리의 여자 세라(엘리자베스 슈)가 등장한다. 벤은 싸구려 가죽 치마에 낡은 액세사리를 휘감은 금발 머리 세라에게 혹할 돈을 제시하며 하룻밤을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술이 그득한 벤의 호텔방에 들어선 세라. 여느 때 처럼 옷을 벗고, 벗기고 벤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는 순간 벤은 그냥 술이나 마시며 대화를 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그제야 세라는 벤의 눈을 처음으로 바라본다. 이미 술에 절은 그의 총기 없는 눈에서 세라는 무언가 모를 연민과 사랑을 느낀다.
아마 그 눈동자에 비춘 자신의 모습과 그가 닮았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낯선이에게서 자신을 본듯했을 때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아마 연민이 그에게 마음을 열게한듯 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창녀와 시한부 인생 알콜의존자의 사랑은 너무나도 보잘것 없고 의미도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부여잡고 싶은 숙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고 따돌림 속에 소외된다.
그 소외 속에서 이 둘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법칙을 정한다.
벤은 세라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자신에게 종용하지 말 것을, 세라는 벤에게 자신의 직업을 용인해 주기를 요구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사랑은 서로를 자신의 툴에 가두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유 속에 있는거라고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평범한 삶인 서로의 치명적인 결점 아니 일종의 장애를 덮고 이들은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뜨겁게 사랑한다.
벤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쪼개서, 세라는 밤마다 몸을 팔아서 이들은 하루하루를 연명해 간다.
그러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에서 기대하는 건 두 사람의 섹스 신이다. 예전 이유영이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받았던 한국영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 "에서도 그랬다. 이 영화는 그 영화와는 조금 다른 각도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벤은 알컬 중독자로 섹스불능(不能)이기 때문이다. 세라는 사랑하기에 늘 벤의 몸을 원하지만 취해 있는 벤과의 섹스는 번번이 실패한다.
섹스가 부재한 커플이지만 이들에게도 애틋한 에로스가 존재한다.아마도 요즘 햔대인의 섹스리스에 대한 또디른 배경아닐까? 사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벤을 간절히 원하는 세라는 벤의 온몸에 위스키를 붓는다. 세라의 목덜미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위스키를 벤은 숨도 쉬지 않고 핥아댄다. 세라는 그렇게 자신의 몸에 벤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만 늘 그랬던 것 처럼 거기 까지였다. 둘의 섹스는 늘 술에게 밀린다. 현대인의 욕망이 늘 돈이라는 권력 앞에서 무기력해지듯, 영화 내내 세라가 바라는 섹스의 끝은 늘 미완이다. 벤이 쓰러지거나 잠이 들어 한 번도 세라는 그의 몸을 온전히 가져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세라는 행복하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참 사랑이 무엇인지 슬며시 관객들에게 답을 던져준다.
현실에서 늘 그렇듯 처음 생각과 달리 세라는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 가는 벤을 참지 못하고, 벤은 세라를 떠난다.
현실에서 우리는 대부분 서로가 정한 약속을 잊는다. 아니 잊는 게 아니라 잊게 만드는 것이다. 그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 그 벽을 넘는 방법이 없다는 절망의 벽에 마주하면 그 절망이라는 흡입력에 소중한 약속이 빨려들게되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현실에 타협하는 '약속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절망 앞에서 잠시 잊혀졌던 사랑이 다시금 기억되듯 벤은 다시 세라에게 전화를 건다. 벤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생사를 오가며 연인을 기다리고, 벤의 전화를 받은 세라는 한달음길에 그에게 달려간다.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세라와 완전한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세라는 간신히 그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의 흔적을 온몸 구석 구석에 새긴다.
벤과 세라의 사랑은 화려한 라스베가스를 닮았다. 이 곳을 찾는 이들은 신기루를 쫓는다.
현대인이 가지는 욕망의 출구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 곳은 결코 출구가 아니다. 단지 신기루일뿐이다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우리는 그 결과를 예견할 수 있다. 허상이다.
중국에서 잠시 살면서 뜻글자즉 표의문자인 '한자(汉字)를 보면서 중국 한자가 참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특히나 회의문자에서...
그 한자 자체에 숨겨진 그러나 자세하 살펴보면 살며시 드러내는 감추인 의미를 스스로 알게되면서 였다. 욕망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유한(有限)한 시간과 돈으로 행복과 쾌락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섹스 조차 할 수 없는 두 사람이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은 욕망으로 가득찬 라스베가스가 보여주는 허상의 그림자에 대한 조소이자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종의 정신적 에로스의 실천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현실을 삶으로 표현하는 한 창녀의 독백이자 고백이다. 세라가 몸을 팔아 알콜 의존자(중독자)인 벤을 지키는 그녀를 보면서 창녀가 아닌 또 다른 성녀로 바라보게 한다.
"창녀와 성녀"
똑 같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영화의 OST 는 정말 영화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스팅의 몽환적인 노래는 영화 OST 명곡 100위 안에 꼽히는 곡들이다. 더군다나 연출자 마이크 피기스 감독이 직접 참여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허상뿐인 라스베가스에서 절실한 정신적 사랑을 너무나도 절절히 그렸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술을 통해서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기에 술을 함께 마실 뿐이다. 그럼에도 술로 인해 죽는 주인공 벤을 보면서도 슬픈 영화로 난 집 찻장에서 술 한병을 꺼내들었다.
한잔 따르고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는 술잔을 보았다.
마시면 취할 것이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내게 라스베가스는 무엇일까?
쉬 떠오르지는 않지만
지금의 내처지가 아닐까 한다.
이젠 화려함도 사라진지 좀 되었지만.
어느새 세 잔을 연달아 마셨다.
잠은 오지 않는데
술이 나를 잠으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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