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아침 KBS 1TV ‘다큐공감’ 을 아내랑 둘이서 보았다.

요즘 볼게 없는 TV이지만 ...

 

이 프로를 보게된 계기는 자막에 막내 여동생이 살고 있는 전북 고창군 아산읍의 한 조그만 공소의 장면을 보고서 막내에게 전화를 걸면서 보게되었다.

 

아침 근 아홉시라서 아내에게 잠시 핀잔을 듣기도 했다. 휴일아침 너무 일찍 전화를 하는건 실례라고...

 

그 마을은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예전에는 음성나화자 촌으로 불리는 마을의 천주교 공소에서 봉사하는 한 수녀의 일상얘기였다. (공소는 천주교의 교회 성당보다는 작은 공동체로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는 작은 교회로 보면 된다.)

 

 

 

올해 74세이신 할머니 수녀이신 강칼라 수녀는 19살에 수녀가 되어 한국의 한센병 환자마을의 얘기를 듣고서 196825, 꽃 같은 나이에 지구 반대편 먼 이탈리아에서 한국의 작은 시골마을을 찾아왔고 단 한 번도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50여년의 세월을 사는 동안 그녀의 등은 구부정해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었으며, 발가락은 고되고 힘든 걸음걸이에 옹이진 생강처럼 변했다. ( 두 무릎다 10년전과 5년전에 인공관절로 걷기조차 불편하고 발가락은 변형성 관절염으로 많이 불편하실텐데도... 늘웃고 계셨다.)

 

그녀의 이름은 그녀의 지극한 돌봄에 고마움을 표한 한센인이 선사한 ‘강’씨 성에 세례명 ‘칼라’를 더해 붙여졌다

전쟁의 폐허 속 가난한 시절엔 사회가 경시한 수많은 한센인들의 누이로, 할머니가 된 지금도 늙고 외로운 이들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강칼라수녀.



전북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호암마을. 60여명 주민 대부분 노인들로 모두가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해 살아가는 한센병 환자 마을로 (이미 그 병은 나은지 오래지만 ). 기초 생활자로 살아가는 가난한 이 마을에서 이들과 함께 반평생을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강칼라수녀.

 

할머니가 된 지금도 병원에 입원한 할머니 방문해 위로하고, 각종 감기약에 영양제 챙기고, 하루가 멀다 직접 운전해 읍내 마트에서 대신 장봐주고, 각종 고지서 정리에 이르기까지. 올해 나이 74세의 강칼라, 수녀의 섬김과 헌신은 한결같다.

 

마을사람들에게 강칼라 수녀는 수녀이기 전에 모두의 친정 엄마요, 고된 인생 짐을 덜어주는 벗이요, 존재만으로도 반갑고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서로엄마라고 부른다.

 

고국 이탈리아에서 19살에 수녀의 길을 선택한 강칼라수녀. 이후, '작은 자매 관상 선교회'에 들어가 전쟁고아들을 돌보며 수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던 중 한국의 전쟁고아와 한센인 소식을 듣고 운명처럼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후, 선교회를 따라 호암마을에 온 25살의 강칼라수녀. 전쟁 직후, 가난과 차별에 밀린 한센인들이 모여 정착한 한센마을은 전국에 100여개가 넘었다. 호암마을도 그 중 한 마을이었다.

 

당시 200여명 한센인들이 모여 살았던 호암마을에서 강칼라수녀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긴 세월을 보낸다. 지금은 한센인은 거의 돌아가셨지만, 강칼라 수녀는 여전히 마을을 떠나지 않고 마을 노인들의 손발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호암마을에서 강칼라수녀의 기도는 날마다 새롭게 성장한다. 단순히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불편함을 거드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무료한 삶의 시간을 보내는 마을 분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기위해 재능기부와 후원으로 마을에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그분들의 지친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시기도 하신다. 

 

그 재능 기부 중 오랜 농사일로 거칠고 투박해진 손이지만, 마을 할머니들이 용기 내어 곱디곱게 도자기를 빚게 만들면서 서로 즐거워 하는 모습과 올해 완공된 공소의 부속시설의 마을명상원에 영롱하고 신비한 대형 스태인드 글라스 십자가도 공동 작업을 통해 그 빛을 통해서 느끼는 하느님의 사랑과 아름다운 선물에 대해서 감사하시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반복되는 일상지만 매일 모든것이 심지어는 상대방 까지도 늘 새롭다고 생각하고 그리 느껴진다는 말씀에 나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졌고 빨래하시는 모습이나 생강발가락이고 불릴정도로 변형된 발가락에서도 웃으시고 더 아픈사람들을 돌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씀에 엄지손가락 첫마디만큼 작은 몽당연필로 수첩에 기록하실 때에는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도 자신의 사랑이 부족하시다고 고백을 합니다.

 

 요즘 시국에, 어렵다하면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세태 속에서 더욱 더 그분의 사랑이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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