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4. 00:19 좋아하는 시

산 김광섭

"처음처럼" 이라는 시집을 샀다. 

신경림 선생이 마음에 와닿은 시를 모은 시 모음집이다.

 

요즘 세대에게 시란 멀기도 하고 사치이기도 하다.

보다 빠르고 보다 가볍고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원하는 세대에게는

당연할 것이다.

 

시집 한권을 빼어 들어

 

그 많은 시 중 한 편만 감동해도 책 값은 다한 셈이다.

나이 들수록 그 한편을 만나기가 싶지 않은데

시 한편의 한 대목을 만나 옮겨 본다 .

 

                                            <110108 나의 고향 무등산 장불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

아마 예전 내 다음 블러그에는 이시 외에도 정희성님의 시도 함께 올려져있다.

말이 필요없다.

두어번 그냥 읽어 보면 마음에서 저절로 느끼는 시이다.

그런 시가 난 시라고 말한다.

감성적인 언어로 미사여구로

내가 그 시의 주인공과 같을 때만 반짝 울리는 시는 싫다.

한참이 지나서도 마음이 가는 시가 좋다.

 

그런 시중의 하나이다.

그냥 함께 나눈다.

소리내어 읽어보면 더 좋은 시라는 것을 금새 알게 된다.

 

         <130422> 

 

 

       산

                                 - 김광섭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뎄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놓고 먼 산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스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 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 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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