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4. 21:07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영화 몬스터볼...
요즘 시간나면 케이블티비에서 영화를 본다. 영화를 고르다보면 늘상 거기서 거기인데 간혹 이렇게 수작을 건지곤 한다.
오늘 본 영화는 「몬스터볼」
영화는 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무거운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처럼 영화 스토리 흐름도 내내 무겁다.
그럼에도 2시간이 훌쩍 흘러 지난다.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삶에 대한 진실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74년 아카데미 역사상 흑인 여배우로서 처음으로 여우 주연상을 선사한 영화 <몬스터볼>
내가 생각하기에 그 당시 심사위원들도 아무리 흑인이 주인공이라지만 작품과 연기가 너무 뛰어나서 기존 통념을 버리고 여우 주연상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행크], 상처 깊은 미국 경찰관의 전형.
영화는 미국의 내재된 아픈 상처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 어렸을 때 부터 동경해온 나라이기도 하다. 물질적 풍요와 우리가 누리지 못한 자유로 인해서 미국은 늘 부러운 나라였다. (어렸을 때 자가용을 가진 집이 거의 없을 때 미국은 시골 농부도 차가 두세대라 했으니 ... 현재 우리나라도 이렇게 변해 후진국에선 예전의 내가 그리던 미국일게다)
잘 살면서 부러울 게 없는 아름다운 나라
우리는 늘상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 왔지만 겉으로는 제 아무리 세계 초일류 강대국이라며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위해 적을 물리치고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자부하는 것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잘 사는 나라. 미국에도 우리네 일상처럼 외로움과 상처들이 가득하다.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바로 경찰관 행크(빌리 밥 손튼)의 모습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주인공), 아들 3대에 걸쳐 경찰 가문에 살고 있지만 어머니(여자)가 없는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삭막 그 자체다.
교도관으로 일하는 행크, 그에게는 역시 교도관으로 일하는 아들 소니가 있다.
직업상 감정을 배제하고 담대할 필요가 있지만 행크의 눈에 소니는 여리디 여린 감성쟁이 같다. 아들이 좀더 강해지길 원하기에 그런 여린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하고 늘상 차가운 충고만 하는 아버지 행크, 그리고 28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가 행크의 아들역으로 짧게 나오는데, 아버지처럼 냉정하지 못하고 감성적이어서 가슴이 여리다. 마치 나와 아들의 모습이 짧은 시간이나마 투영되는듯 하다.
여주인공 레티샤의 남편을 사형하는 교도관으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행크, 소니 부자가 담당 교도관이 된다.
몬스터 볼, 사형수의 마지막 날
그의 파티는 교도관을 그려주는 것이었다. 사형수에게 감정이입을 한 소니는 결국 사형 집행을 하러가는 길에 구토를 하고 마는데, 그런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아버지. 그는 좀 더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화를 낸다.
그런 아버지에게 늘 상처받았던 아들,
그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나를 미워하세요?"
그러자 행크는 말한다.
"네가 밉다. 정말로 밉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에게 마지막 말을 한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었다."고
그리고 자신의 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소파에 남은 아들의 피를 행크는 닦는다. 하지만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듯이 잘 닦여지지 않아 이내 포기하고 만다. 이 장면은 슬픔과 외로움이 투영되지만 현실적으로 이해는 안되었다. 아들에 대한 생각과 사랑을 결코 지울수 없다는걸까?
사형수의 아내, 레티샤
사형수 로렌스를 면회하면서 사형이 곧 집행될 것 같은 예감으로 사형수의 아내로써 그녀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서적으로도 힘이 든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아들은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아들이 뚱뚱한 모습이 더욱 싫다. 아들이 부족한 아버지의 사랑 대신 초코렛을 즐기고 그로 인해 90키로의 뚱뚱한 흑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하여... ... .
그로인해 아들의 삶이 더욱 고단해질 걸 잘 아는 엄마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때론 걱정을 뛰어넘어 아들을 학대로까지 이르게 된다.
곧장 후회하면서도...
레티샤는 남편이 사형으로 세상을 떠난 후, 어느 비 오는 날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들이 죽어가게 되자 빗속에서 "도와달라"고 울부짓는다.
그리고 그곳을 우연히 지나치던 행크가 그녀를 도와 다친 아들을 병원으로 옮기지만 결국 레티샤의 아들은 죽게 되고 홀로 남겨진 레티샤와 외로운 행크 둘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어느 순간 레티샤가 묻는다.
" 사고 난 그날 밤 왜 도와주었냐?" 라고
레티샤가 묻자 행크는
"그냥..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서.." 라고 말한다.
아들을 잃은 두 남녀,
서로의 상처와 상처가 만났을 때!
또 다른 삶이 그들 앞에 놓여진...
그러나 둘은 담담한 희망을 이어간다.
처음에 만나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흑인과 백인, 남자와 여자, 무언가 국적 대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서로 각자 가지고 있는 상처를 통해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벽들을 조금씩 허물게 된다.
그러나 서로는 만나는 것에 너무 조심스럽다. 그리고 둘은 자연스레 사랑을 나누게 된다.
레티샤가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슬픔을 웃으며 울며 얘기할 때, 행크는 홀로 듣는다. 이 둘의 갑작스런 사랑은 어쩌면 둘이 가지고 있는 과거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시작처럼 보인다.
행크와 레티샤,
사랑은 상처를 딛고 함께 있을 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이들의 사랑이 아직 시작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이말은 앞으로도 더 어려움에 마주칠 것을 예감하게 한다.
레티샤가 고이 간직한 반지를 팔아서 하얀 모자를 선물로 안고 늘 도와주던 행크의 집으로 갔을 때 처음 만난 행크의 아버지로부터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상처를 받게 된다.
백인인 아들이 흑인 여자라 한번 그냥 즐기려 사랑을 나눴을거라고.
마침 집에 온 행크가 그간 사정을 말하려 하지만 이미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은 레티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떠나게된다.
행크가 레티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찾아가 사정도 해보지만 매몰차게 거절해 버린다.
행크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긴다.
그 동안 아버지라는 이유로 모셨던 이유가 이를 계기로 없어진 것이다.
요양원에서 작별인사 도중에
"행크, 나 이곳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라며 애원해보지만, 아들의 단호함에 이내 체념하고
행크는 아버지와는 다른 희망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돌아와 집안을 정리하면서 방의 내벽을 하얀색으로 칠한다.
아마 조금은 칙칙함에서 밝은 하얀 색으로 방을 칠한다는 건 무언가 변화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
영화 서두에서 사형수 남편을 면회하면서 말한대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압류 집행관에 의해서 짐 몇 가지와 함께 길가로 쫓겨나게 되는데 이때 행크가 그 곳에 오고 어쩔 수없이 그녀도 행크의 집으로 오게 된다. 집에 오자마자 복선으로 깔린 도배 색을 새로 칠했다고 말하면서 서로의 본심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행크의 집에서 행크의 죽은 아들 방을 살펴보면서 두 사람 모두 아들을 잃은 상처가 있기에 누구나 서로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마치 우리에게 보여 주는 듯 하다.
사랑을 나눈 후 행크가 초코 아이스 크림을 사로 간 사이 우연히 보게 된 초상화에서 남편이 죽기 전에 그려준 초상화란 걸 알게되고 자신의 남편의 사형 집행관이 행크라는 걸 알고 흐느낀다. 이 후 레티샤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행크와 함께 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면서 행크의 눈과 밤하늘의 별을 동시에 본다.
행크의 눈과 밤하늘의 별
레티샤의 가슴에 새로운 삶의 희망을 대변해주는 건 아닐까?
영화는 둘이 함께 별을 보는 뒷모습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어둔 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마지막 자막이 흐르며 끝난다.
아마 이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과거의 상처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아니라 그 상처를 딛고 함께 걸어 갈 현재의 사랑이 훨씬 가치있고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레 보여주려 했던건 아닐까?
흑진주, 할리 베리
그녀가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력은 정말로 뛰어나다. 흑인이 갖는 깊디 깊은 슬픔이 저절로 베여나는 그녀의 연기였다.
은근히(어쩌면 드러 내놓고) 여배우의 미모로 흥행을 노리는 우리 나라 영화계의 아픈 현실이지만 이렇게 깊이있는 연기를 할 수 있는 한국 여배우들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한국이 갖는 역사적인 어둠이 짙게 물들어 있는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 영화는 너무 남성 중심이어서 대부분 여자는 조연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뭐 어찌되었든 간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74년의 역사를 이 작품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고 흑인 여우 주연상을 받은 그녀가 미국의 오랜 관습과 통념을 한번에 깨트릴 수는 없었겠지만 역사적인 첫 출발점으로 하나의 이정표로 중요했고 특히나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아름다운 흑진주로 불리우는 배우인 이유를 저절로 알게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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