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향기
소태산 대종사 법문에 “사람이 세상에 나서 할 일 가운데 큰 일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바른 법을 실천하는 스승을 만나 스스로 부처의 경지에 오르는 일이요,
둘은 대도를 성취해 중생을 건지는 일”이라 했다.
우린 늘 남이 어떻게 사는지, 또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뭐가 좋다 하면 곧바로 유행을 따르고, 하다 못해 비슷한 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네 인생사다.
30년 성직자 생활에서 체득한 것이 있다면 어떤 일이 닥칠 때
한발짝 뒤로 물러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일 게다.
이는 ‘내가 스승의 입장이라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반사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스승과 도반(道伴)은 하늘과 땅처럼 항상 우리의 마음 곁에서 편안한 거울이 돼 준다.
종교가 세상에 전하는 향기로움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늘 말없이 정진하는 성직자들의 모습,
그리고 계율을 지키려는 수행자 개개인의 끝없는 노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자기의 본분을 지켜 가고자 하는 우직함과 꾸준함이
그들에 삶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니네.” 남도 지방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 중 하나다.
음식이 기대와 달리 별 맛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고유의 깊은 맛을 지녀야 맛난 음식이라 인정받을 수 있지, 이도저도 아니면
미식가들의 관심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온갖 고난과 불행을 인내하며 극복해 가는 과정을 통해 쌓은 내공,
그에 따른 온유함과 평안함이 자연스레 그 사람의 맛과 향기가 되어 주변에 전파되기 마련이다.
얼마 전 허리병이 심해져 동네 의원을 찾아가 물리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나이 많은 의사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수영 좀 해보시지 그래요. 허리에 그 이상 좋은 게 없어요.
” 순간 2년 전 큰 맘 먹고 수영을 배우러 갔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레슨 도중에 물을 잔뜩 먹고는 너무 힘들어 한 달도 못 채우고 포기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되살아났다. 맞다.
기계도 자꾸 고장나면 결국 폐기처분돼야 하듯 우리 몸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싶으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나.
그 전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에 최근 다시 수영교실에 등록한 뒤
못다 한 개구리 헤엄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안 좋은 법. 수영만 하고 나면 몸살이 날 정도로 식은땀이 났다.
약골인가, 허약체질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우리 반에서 남자 중학생이 수영을 제일 잘 하는데,
그 학생을 롤 모델로 삼아 계속 쫓아다니다 보니 금세 지치곤 했던 것이었다.
뱁새가 처음부터 황새를 따라가려 했으니, 나의 오만이 나를 힘들게 한 셈이다.
지난해 늦여름 남도에서 그림 잘하기로 소문난 스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의 화실에 ‘청정’이란 글씨가 담긴 편액이 눈에 띄었다.
누구의 글씨냐고 물으니 “우리 스님이 내게 잘 살아 가라며 써주신 글”이라고 했다.
청정이란 무엇인가. 맑고 개운하게 사는 모습이 타인에게 거울이 되라는 뜻이다.
우린 늘 맑고 청정하며, 말이 없으면서도 행실이 곧은 사람을 찾아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인생의 참 스승은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이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맬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수양하고 다듬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나의 이 작은 몸 안에 모든 가르침이 있다.
<정은광 원광대학교 미술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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