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4. 14:22 좋아하는 시

전화 마종기

몇년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도

아버지의 핸드폰을 해지하지 않고 일년을 놓아두었습니다.

당신을 여윈 후 중심이 안계셔서인지 아내와 저는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아직도 아내에게는 생채기로 남아서 그 생채기가 간혹 아주 간혹 고개를 들드러내곤 합니다.

 

핸드폰을 해지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마음 놓고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호가 가는데 못받으시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전화 연결음이 들리는 동안은 마음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어 그냥 말했던적도 있었습니다.

 

근 일년이 지나서 드디어 전화를 해지했습니다.

어쩌다  무심코 전화흫 걸었는데 한동안 결번이라더니 어떤 분이 전화를 받으셔서

그 뒤론 전화를 걸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 시를 보면서 그 느낌이 되살아났습니다.

요즘 유행어로 "그 느낌 아니까!" 라는 말이 딱 들어 맞습니다.

 

                          <130914>

 

 

 

 전   화

                             마종기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변경의 꽃 , 1976,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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