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돌아가신 부친께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묻지도 않았는데 

"그냥 걸어봤다"라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활짝 웃으시면서 멋쩍어하시는 모습이 보이는듯 했다.

요즘도 별반 다를게 없지만,

그당시엔  멀리 광주 본가 전화번호나

모친의 전화번호가 뜨면 가슴이 덜컥내려 앉았다.

그 당시의 아버지는 폐암 수술 후 회복 중이었기에 더욱 그랬었고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내게 전화를 걸지 않으시는 성품이시라

만일  내게 전화를 거실 정도라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게  회사 근무시간에 방해가 되거나

전화로 인해 주위에 누가 될까봐 더욱 전화를 삼가하셨을게다.

내 기억으론 당신께서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던 횟수는 열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곤 큰 용건이 없으신 날에는
"나다. 잘 지내지? 그냥 한번 해봤다" 라고 말씀을 하셨다.

대개 부모가 자식애게 거는 전화는 자식이 멀리 떨어져 살 때 걸고 말하기 멋쩍으니  "그냥 걸었다" 라는 말로 통화의 첫마디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내 경우에도 대학생 아들이 멀리 떨어져 혼자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혼자서 어찌사는지 궁금해서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띄워놓고도 "통화"보턴을 바로 누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한참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그 궁금하고 보고픈 마음이

그 망설임을 이기면 그때서야 통화 보턴을 길게 눌렀다.

그때는 그려려니 했는데 이제서야 이런 내마음을 통해서 아버지의 어쩌다 걸으신

그러나 통화시간은 짧은 그 통화의 깊디깊은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내 경우를 봐도 내가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속칭 심심해서 녀석의 전화번호를 누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대부분 내 나름 정해놓은 소식의 때를 넘어서면 "한번 걸어 봤다"라는

상투적인 시작어로 말문을 열었던 것이다. 

나의 부친 역시 그랬을 것이다.

안본지 오래되었거나 통화간격이 좀 뜸해졌다 싶으면 참다 참다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내맘처럼 " 안본지 오래되었구나.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라는 깊은 속 마음이 오롯하게 녹아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마 아들 녀석도 나와 똑 같은 생각의 전철을 밟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끼리의 "그냥" 이라는 말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의미는 더이상 아니다. 
어느 순간 부터 내게 전화를 걸어 "그냥 했다"  라고 말하면 눈물이  난다.

굳이 이유를 대지않아도 상대의 속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이 "'그냥' 이라는 말은 사랑한다. 보고 싶다" 라는 말이 살짝

숨겨져 있는 사랑의 단어라는 것을 너무 늦게서야 알았다.

강원도 신흥사 유물관에서 딸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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