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백제의 수도 부여를 다녀와서 2

2004.05.20 21:47 다향 한글사랑

앞선 부여 답사기에 이어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앞서 말한 공원은 구드래 공원 ( 백마강의 나루터 명칭이지만 구드래의 본래 뜻은 지금도 궁금합니다. 국어 사전을 찾아 보았지만 .. ) 이었습니다.

선착장에서 내린 후 현재도 발굴지로 지정되어 발굴이 한창인 곳을 지나서 주차장까지 이동을 했습니다.
 
남는 시간에 마지막 여행지는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이 말년에 스님으로 사시던 곳인 무량사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그 호젓한 길을 걷고 싶었지만 부소산성의 산길은 그당시의 아픔을 느끼고 되삭이기에 충분하였지만

평소의 운동이 부족한 아내에게는 조금 부담이 되어 근처의 성흥산성을 답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외딴곳의 문화유적은 이정표가 부실해 항상 헤매이기 마련인데 이번에도 역시 그 평범한 진리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헤매다가 들린 성흥산성은 헤맨던 기분을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한 보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성흥산성은 백제 동성왕 때 왕명으로 좌평 백가가 지은 성으로 백가는 동성왕을 공산성에서 시해했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 사연을 지닌 성입니다.

깍아자른듯한 절벼의 단애와 함께 천헤의 요새로 당나라장수 유인괘가 두려워 했던 이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상 말미에 도도하게 서있는 노거수는 옛사람들의 자취와 함께 역사를 자연스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중에 고려개국공신 유금필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어 어리둥절 했으나 안내문에는 유장군이 임천을 다스릴 때 굶주린 백성들을 도와서 그 때부터 산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는 안내문은 옛 민중들의 수탈과 그 고마움에 대한 순수함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10 m 위에 있는 인위적인 팔각정은 아쉬움이 그득했습니다.
 
이 산성에 들리면 반드시 대조사를 들려야 합니다.

커다란 새가 날아 들어서 그 터에 지어 그래서 대조사 라는 절이름이 범상치않게 느겨집니다.

조금 유명하다 싶으면 으례 새로지은 건물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는데 이 절은 아직도 새건물이어도 다소곳함을 느끼게 하여 아내와 함께 그 절의 아늑함과 그 호젓함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다만 틀어놓은 불교방송소리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미륵을 모신절이고 절 뒷편의 미륵 부처는 익산의 은진미륵처럼 심한 불균형이지만 보면 볼수록 나도 그에 동화되어 옛사람들이 친근하게 의지하고 빌었을 그마음으로 되돌아 갑니다.

흡사하였지만 그 높이가 십미터 정도로 옆에 서보니 참 친근하게 느껴져서 아이들과 함께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최근들어 이 대조사를 다시 가보고 싶은 절에 하나 더 추가하였습니다.
 
이어서 시내들러 고드래 돌쌈밥집... 그이하는 동일합니다. 

       2003.  04.02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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