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려면 그 곳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알고가면 행복한 여행이 되어준다.  그 아유는 그 곳의 히스토리 속에 내가 물들어가면서  동화되어 함께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독일 방문은 엄밀히 말하면 기업적 용어로는 에너지와 4차산업 우수기업을 방문하는 산업연수의 하나였기에 평소와 달리 미리 보는 준비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가이드 하시는 분이 이동 도중에 자세히 들려주는 정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가 주체가 아니어서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보는 여행이기에  나중에 보니 아쉬움 살짝 남는다.

말로만 듣던 독일의 과거 모습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뉘른베르그 성에 들렸다.
참고로 독일 지명 이름에 붙는 "베르그"는 성(城)이라는 의미이다.

 푸링크푸르트에서 아오반을 타고 가는 길에...
참고로 아우토반은 차를 의미하는 아우투에 도로를 의미하는 반이 붙은 일반명사로 속도무제한 도로의 의미가 아니란다.  다만 독일의 고속도로도 속도제한이 있는데 3차선 도로 이상의 맨 1차선은 속도 제한이 없으므로 가능하지만 도시주변은 80키로 제한이 있어 실제 고속도로의 70%만 우리가 생각하는 아우투반이 가능하단다.  그러나 평일에는 고속도로 교통사정상  무제한으로 달리기 어렵고(맨 마지막 차선은 트럭이 전용선으로 달리므로. 트럭은 지정된 이 차선만 달려야 함) 주말에는 이게 가능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주말에는 고속도로에 트럭등이 달릴 수 없기에 한차선이 비게되므로 막히는 차량이 없어서 부담없이 달리며 속도르류만끽할 수 있단다. 그러나 기름값이 비싸서 경제관념이 투철한  일반 독일사람은 달리지 않고 외국인이나 돈많은 사람들만 달려본다고 한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옛 해자였을 것으로 추정.. 사진상 오른쪽은 새로 지은 성벽.

뉘른베르그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뮌헨 다음가는 제2의 도시. 페그니츠 강이 프랑켄 고지로부터 흘러나와 모습을 드러내는 곳에 있다. 이 시는 1050년 공식기록에 노렘베르크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되었지만, 기원은 그보다 10년 앞서 바이에른 공이자 독일 황제인 하인리히 3세에 의해 세워진 성에서 비롯된다. 그 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취락이 발달했으며, 1219년에 최초로 자치시 인가를 받았다. 그후 곧 완전한 독립을 얻어 자유로운 제국의 도시가 되었다. 13세기 후반에 이르러 요새화된 취락으로만 머물지 않고, 수공업자들과 귀족들이 사는 시로 발달했으며 제조업과 상업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 되었다. 1471년에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뒤러와 그의 동시대인들인 구두공이자 시인인 한스 자크스, 뒤러의 스승인 화가 미카엘 볼게무트, 목판조각가인 바이트 슈토스, 황동 주조공인 페터 비셔, 석공이자 조각가인 아담 크라프트 등, 그 당시에 전무후무한 예술이 이곳에서 꽃피었다. 이 시는 1525년 종교개혁 교리를 채택했고 1526년에는 학자이자 신교 지도자인 필리프 멜란히톤이 독일 최초의 김나지움 중의 하나를 설립했는데, 이 학교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따서 불리고 있다. 인문주의자 빌리발트 피크크하이머, 천문학자 레기오 몬타누스, 우주구조론 학자 마르틴 베하임 등과 함께 최초의 지구본 설계자인 멜란히톤은 이곳이 발전하는 서구의 학문적 중심지로 명성을 얻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곳은 17세기초에 경제와 문화발전이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1806년에 이르러 자유제국도 시의 지위를 잃었고, 많은 빚 때문에 바이에른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로 가는 해로가 발견된 후 세계 교역로가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진 것과 30년 전쟁으로 인한 황폐화가 이곳이 몰락하게 된 최초의 원인이었다. 1835년 12월 7일 뉘른베르크와 퓌르트를 연결하는 최초의 독일 철도가 개통되어 산업시대의 막이 열리고서야 근대 공업중심지로서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나치당의 중심지가 되었고, 1935년에는 이 도시의 이름을 딴 반(反)유대주의적인 뉘른베르크 법령이 발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크게 파괴되었던 이 도시는 미군이 점령하여 연합군에 의해 독일 전범들의 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그 이후로 시의 많은 지역이 재개발되었다. 페그니츠 강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는 도시 내부는 1452년에 완성된 성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1140년과 1320년부터 유래한 더 오래되고 안쪽에 있던 요새선의 흔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2차 세계대전말에 가해진 대대적인 폭격으로 역사적인 건물들은 그 일부가 복구되긴 했지만 겨우 몇 개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장크트제발트·장크트로렌츠 고딕 성당들과 장터에 인접한 프라우엔키르헤(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페그니츠 강 위쪽에 서 있는 하이리그가이스트스피탈(성령교회병원)은 현재 양로원 으로 쓰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쾨니히슈트라세에 있는 마우탈레(세관), 바인슈타델(포도주 저장소), 르네상스풍의 시청, 쇤네부룬넨(분수), 펨보하우스(옛 시의 박물관), 이 모든 것들의 위로 솟아 있는 탑, 웅장한 성 및 그 성의 축사와 곡식창고 등이 있는데, 이 성은 현재 유스 호스텔로 쓰인다. 이곳은 정밀기계, 광학제품, 전기기구의 주요생산지이다. 또한 자동차·인쇄·화학·목재·제지·섬유업 등도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장난감 박람회가 열려 이 도시는 장난감 제조산업의 세계적 중심지가 되었다. 수많은 도로의 결절점이며 뮌헨-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쾰른 고속도로에 연결되어 있다. 이 곳은 오래된 루드비히스-도나우-마인 운하를 끼고 있으며, 또한 마인-도나우 운하와 연결된 현대적인 항구가 있다. 마인-도나우 운하는 1990년대 초반에 완공되면 라인 강과 마인·도나우 강들을 연결하게 된다. 시 북쪽에 있는 뉘른베르크 공항은 특히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국제공항을 비롯하여 각지로의 항공연결편을 제공한다. 시내와 시 주변에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있는데, 옴 응용기술전문대학과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학 일부를 포함한다. 1662년에 설립된 예술원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밖의 다른 기관들로는 1644년에 설립된 문학협회인 페그네지셰블루멘오르덴과 600년이 넘은 시립도서관이 있다. 이곳은 1852년에 허가된 독특한 독일 국립박물관의 소재지인데, 이 박물관은 뒤러의 인쇄된 그래픽 작품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수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구 493,553.(2003 추계) (출처- Daum 백과사전)

 관광객...유럽의 냄새가 물씬

 성당입구.

 성당내부... 들어갈 수 없어서 인터넷에서..

 광장

 성당 외벽 모퉁이 장식

 성모성당... 내부는 개방시간이 아니라서...

 시내 사이로 흐르는 강. 운하였을듯

 평일에만 열린다는 전통시장(식료품. 주로 과일 꽃)

성당주위 풍경

왕궁지정 비어하우스였다고 한다.

 점심식사

뒷골목을 걸었다ㅡ

 어디가나 있는 이런 낙서는 웬지 멋(?)스럽다

  성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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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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