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를 읽고 그 시가 머리 속을 지나 가슴에서 숨쉬고 있다면 그 시는 바로 자신의 시가 된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시는 많지 않다. 어렸을 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 교과서를 통해서 배운 시들은 우리들과 함께 성장해서 잊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사로잡지는 못한다.어떠한 시를 만날 때 자신의 생활이나 환경이 그 시와 일치감을 느낄 때에야 그 시는 비로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이 시가 내게는 그런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에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채 한달도 못되어 유명을 달리하신 이모님(이모님은 모친의 유일한 혈육)을 기억해 내고, 더구나 유난히 기력이 약해진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더욱 더 다가왔던 시이기도 합니다.
<131022>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사,2006) 중에서
1970년 경북 김천에서 출생하였으며 1995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4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 「處署」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
'2005 오늘의 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좋은 시인으로 선정이 되기도 하였으며 제 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론 『수런거리는 뒤란』『맨발』 등이 있고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중에 있다.
---------------<내 느낌>-----------------
참고로 이 시는 2005년 시인과 평론가 120인이 그해 "문예지에 실린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되었으며 문태준 시인은 2004년과 2005년에는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인"으로 뽑혔으며 거의 모든 문학상을 수상해 왔던 시인이다.
가재미는 표준말로 가자미이다.
토요일, 회사에서 목표 달성을 위한 필달행사로 38Km 걷기행사를 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광주 부모님댁에 다녀오려고 마음먹었는데
사는 곳에서 여수 터미널로, 터미널애서 광주 터미널로 그리고 시내버스로.
이동하는 경로에 마음이 먼저 질린거일까?. 그렇다하더라도 애초 마음먹은 대로 출발했으면 부모님과 점심을 함께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저런 생각으로 어찌 어찌하다보니 시간이 조금 지나서 함께하고픈 점심이 어려울것 같았다. 결국 사택에 주저않고 말았다.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이동하는 것이 조금은 귀찮아 진 것이다.
얼마 전부터 이 시가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나날히 수척해지시고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떠올릴 때 마다
이 시의 한구절이 그렇게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평소와 달리 당신이 예전의 그 의욕을 어느 정도 잃으신 것 같지만
나는 아직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서 더욱 더 꽉 잡고 있다.
내가 만일 끈을 놓아버리면 멀리로 놓쳐버릴 것 같아서 더욱 더 강하게 쥐어본다.
이 시는 저자가 저자의 큰어머니의 병문안을 모티브로 해서 시를 지었다고 한다.
사실적 이미지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압축해서 표현했기에 내 마음을 더욱 더 울리는 것 같다. 이 시집의 제목이 '가재미' 이고 그 안의 2부 첫번째 시가 "가재미"이고 이어서 "가재미2" 이다.
죽음의 얘기는 늘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더군다나 이 시는 말기암으로 투병중인 환자를 방문한 느낌을 옮겼기에.
하지만 나조차 그 끈을 놓을 수 없고
아버지께서 내개 바라는 소망을 잘 알기에
한번 더 읽고 옮겨 본다.
어제 다녀오지 못한 대신에 예전과 달리 하루를 그곳에서 더 머물다 내려올 수 있어 다행입니다.
<080204>
다음블러그 "차향이 우러나는 향기로움으로"의 '좋아하는 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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