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어머니, 연약한 心性

 

여자는 강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욱 강하다.

요즘 드세다고들 하는 ‘알파 걸’들을 보면 정말 그렇다. 초·중·고교에서도 여학생 성적이 더 좋다.

여학생의 대학 학점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좋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회 진출도 더 빠르게 한다. 그야말로 여성 전성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결혼도 포기하고 승진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은 맹렬 여성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당찬 여자들도 여린 구석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무서운 ‘타이거 맘’이었다.

1950년대 약대를 졸업한 약사이고 정부 지원으로 독일 유학을 앞두고 결혼을 하게 됐다.

 나를 낳게 되면서 모든 커리어를 접고 아이들 키우는 일에만 매진했다.

내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다. 우리 셋은 요즘도 모이면 엄마만 아니었으면

우린 공부 않고 놀았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했을 텐데라고.

우리 삼남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내비쳤다간 엄마한테 죽을 만큼 혼이 났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해야 했다.

어머니는 특히 맏이인 나를 완벽히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갔다.

 현재 우리 셋은 모두 대학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요즘도 이게 뭔가 답답해서 몸을 비틀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중·고교 시절을 완벽한 ‘범생’으로 보냈던 내가 대학을 가면서 엄마의 감시가 조금 소홀해졌다.

엄마의 관심이 수험생이 된 동생에게 온통 기울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갈구하던 시간인가. 난 이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놀아 보기로 했다.

수업은 거의 땡땡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 사회대 연극부, 학교 신문사 등등을 기웃거리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다. 운동권에 매력을 느껴 쫓아다니기도 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어찌 보면 얼마간의 보상심리도 있었던 것 같다.

끼가 있는 나로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보낸 그 어린 청춘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


당시 여학생 숫자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적었던 서울대 캠퍼스에서

나는 여자 친구보다 남자 친구가 더 많았다.

남자를 사귀면 안 된다는 구태의연한 연애 관련한 엄마의 잔소리는 매일 계속됐지만,

친구가 좋고, 특히 남자 친구는 더 좋은데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휴대전화가 없던 당시 집으로 걸려오는 남자 친구들의 전화는 걸려오는 즉시

엄마에게 막혀 전달이 안 됐다

. “학생, 무슨 과야? 공부를 해야지 왜 이렇게 매일 몇 번씩이나 전화를 하고 그래?

공부해” 하고는 확 끊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무례한(?) 전화에 짜증이 난, 한 남자 친구가 어느 일요일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댔다.

어머니를 직접 만나서 자기가 그렇게 엉망은 아니며,

공부도 열심히 잘하는 사람임을 설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초인종을 계속 눌러대던 남자 친구와 옥신각신하던 중 결국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다.

친구가 인사드리고 싶어한다고 전하자 엄마는 예상 외로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대문을 지나 정원 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 친구의 모습을 거실 창문으로 보고 있던 엄마는

갑자기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어느새 친구는 들어와 소파에 앉아 있건만 엄마는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왜 그러지, 화가 나셨나? “엄마 내 친구 지금 거실에 와 있는데”라고 하자

 “그래 됐다. 다음에 이야기하자. 너희들끼리 이야기하렴.”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엄청 화가 나셨구나. 남자 친구 사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집에까지 끌어들였다고

단단히 화가 나신거구나. 애고, 난 죽었다.

그러나 그 후 엄마는 화를 내기는커녕 그 일에 대해 그 어떤 언급조차 없었다.

며칠을 눈치만 보고 있다가 어떻게 잘 넘어갔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흘러 내가 아기를 낳고 그 아이가 대학을 가자 문득 엄마가 한말씀 하셨다.

“너도 딸 키워보면 알겠지만 딸의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게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아니?

무얼 말해야 할지, 어떻게 보일지가 무척 신경 쓰이니, 너도 미리 준비를 해둬야 할 거야.”
그러면서 그 옛날 건장한 청년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내가 어떻게 보일까,

초라해 보이거나 늙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래도 우리 딸을 생각하면 예뻐 보여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지 등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로 힘들어서 안방으로 숨으셨다는 이야기를 20년이 훌쩍 지나서 문득 하시는 거다.

그제야 엄마의 그날 행동이 이해가 됐다.

그때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신 건, 화가 난 게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수줍고 어색해서였구나!

언제나 야단치고 무섭기만 하던 우리 엄마도 그렇게 강한 것이 아니었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햄릿은 그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비난과 원망의 독백을 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20여 년 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모습을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면서 그 마음을 새삼 헤아리게 된다.

무서운 호랑이 엄마, 강인하기 그지없는 엄마도 결국 여자였다. 연약한 심성(心性)의 수줍은 여자였다.


곽금주/서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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