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성당 미사중에 신부님이 예를 든 말이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천진의 본 성당이 다른 곳으로 옮겨 미시가 진행될 예정인데

아직 가지를 못해서 철거( 리모델링 ? )예정인 풍림빈관에서 마사를 진행하기에

현재의 상황을 빗대어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이곳의 모든 상가 사람들이 다 나가고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노회한 정치가 "김종필" 시의 신년 주제어로 더 알려져 있다.

자신의 정치적 상황을 빗대어 한 말이다.

 

실제 이 곳 천진의 날씨는 아지곧 봄은 아니다.

 

이 곳의 난방은 중앙 공급식으로 일괄 공급하는데

11월 15 일 부터 이듬해 3월 15일 까지 만 난방이 공급되고

그 날이 지나면  난방 공급이 중단되어 겨울 보다 더 썰렁하고 춥다.

그래서 전기 장판을 사용하여 긴밤의 추위르 달래고 있다.

 

이럴 때, 봄 날의 기온은 오히려 밖이 건물 안보다 더 따스하다.

이 곳 아파트 역시 난방은 꺼져있어 ( 중국 사람들은 침대 문화다.)

온돌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추위는 더욱 클 것이다.

 

이러다 갑자기 여름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오늘 역시 방 안은 바깥보다 더 춥다.

 

아직 이 곳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다.

 

      <130414>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유래

 

전한(前漢) 말기, 절세미인 궁녀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의 선우(왕)에게 시집갔다.

흉노를 달래기 위한 화친 혼인이었다.

훗날 시인은 모래로 뒤덮인 오랑캐 땅에서 삭막한 삶을 살았을 그를 노래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
모래 땅에 화초와 풀이 없을 테니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한 것이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한나라 원제 때 16세 왕소군(王昭君)이 궁녀가 되어 입궁했다.
한나라의 왕 원제는 어느 날 궁에 앉아있는 왕소군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한나라에는 황제를 위해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놓는 제도가 있었다.

이에 원제는 궁녀 그림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왕소군은 없었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의 침입에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호한야의 도움으로 한나라는 반군 세력을 물리쳤다.

호한야는 대가로 공주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원제는 공주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한 대신

후궁 중 한 명을 그에게 넘기기로 결정했다.

원제가 그 댓가로

선우께서 고르시지요.”
그러자 호한야가 외쳤다.
“바로 저 후궁입니다.”
원제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런 미인을 몰랐을까?’

호한야의 눈에 들어온 후궁은 다름 아닌 왕소군이었다.

원제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왕소군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랐다.

가난한 집안의 딸이던 왕소군은 궁녀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공에게 뇌물주지 못해 미운 얼굴로 그려졌던 것.

당시 원제가 화공(畵工)이 그린 화첩에서 후궁을 골라 불러들이자 후궁들이 화공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쳤다.

그러나 미모에 자신 있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모연수는 이를 괘씸히 여겨 왕소군의 그림의 뺨에

검은 점 하나를 그려 넣었다.


결국 원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중국 4대 미녀인 왕소군에게 한 눈에 반한 호한야에게 그녀를 보냈고

왕소군을 알아보지 못하게 그림을 그린 화공 모연수를 극형에 처하는 것으로 분노를 풀었다.

원제는 왕소군을 향한 사무침과 그리움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3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중국 4대 미녀라 불린 왕소군 또한 북방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다 운명을 달리했다.


“후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 )가 왕소군의 심정을 대변하는 시를 지었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봄이 와도 진정 봄을 느낄 수 없는 왕소군의 서글픈 심정을 묘사한 이 시에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 유래하였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돈을 쓸 일이 있어서 은행에서 돈을 찾게 되었는데

저의 급여 계좌는 농업 (农业nóngyè) 은헹입니다.

 

일단 이번에는 혼자 가기로 하였습니다.

조금 작은 지점에 가닌 기다리는 인원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안내하는 인원과 창구 인원의 수가 비슷합니다.

 

인민폐로 오만원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사전에 내가 중국은행 직우너에게 할 말을 연습하여 

창구에서 오만원 인출을 요구하였습니다.

 

창구 직원이 오만원 뭐라하더니 "이콰이"하고 말을 합니다.

"이콰이"  즉 일원이라는 말은 알겠는데 다음 말을 몰라 당황하니

그 직원이 일원 짜리 지폐를 들고 흔듭니다 

 

속으로 "아니 수수료도 없는데 웬 1원" 하고 있는데

정말 극적으로 우리 회사 여직원이 와서 1원을 창구직원에게 전해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아 1원을 달라는 얘기였구나 하고서 돈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도움준 직원에게 고마움과 함께 1원을 돌려 주었습니다.

 

"왜 1원이지.. 오만원 수수료인가 ?" 하면서 궁금해 하다가

우연히 출금 영수증을 보고서야 그 아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출금액이 "49,999 원" 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오만원 이상 출금은 사전 신고하고

십만원 이상은 당일 출금이 안됩니다.

그래서 고객 편의를 위해서 49,999원을 출금하도록 한거죠

물론 오만원을 주면서 내게 1원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알리 없었으니...

나름 상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런 규정이 있다면 창구 직원이 그리했겠지요.

참, 아직도 중국은행도 예전 우리나라 은행 처럼 약간의 공무원 냄새(?)가 납니다.

 

중국어가 안되니..

그래도 즐거운 에피소드 였습니다.

 

  

 

 

Posted by 한글사랑(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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